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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dom akin to feral Nov 17. 2023

엄마도 강남 엄마가 처음이라서

일하는 엄마는 무책임한 엄마?

엄마는 공부를 잘했다.

베이비붐 세대라 학생 수도 많았을 텐데

지방의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전교생 앞에서 1미터가 넘는 큰 트로피도 받았다.


여자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 시절이었는데,

서울법대 나온 친척 어르신이 할아버지한테

엄마를 공부시키라 말해서

엄마는 어렸을 때 대도시로 유학을 갔다.


공부에 자부심이 컸던 엄마는

본인 자식도 자신 같으리라 믿었을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과 자식을 잘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그것도 정글과도 같은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입시시장인

강남 8 학군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엄마의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는 스스로 뒤질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일념 하에 

본인은 엉덩이 뒷심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그의 첫째 딸은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전혀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지 않던 시절,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우리 엄마는 

나의 교육에 신경을 쓰고 싶어도

다른 엄마들보다 정보력에 한참 떨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교육 1번지에서 살면서도

학원 대신 스스로 학습법을 맹신하던 아빠는

나를 학원에 보내려는 엄마의 교육법을 탐탁지 않아 했다.


되돌아보면 내가 그리 순진했던 건

우리 부모가 매우 순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젊었던 엄마 아빠가 그 동네가 돌아가는 판을 알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90년대 당시에 아이들 공부는

할아버지 경제력, 아빠 무관심, 엄마 정보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전이었는데,

이미 그 동네에서는 저 말이 실현되고 있었다.


당시 동네에서 학원 및 과외 정보가 가장 많고,

학교 일에 마이크로 매니징 하던 엄마들이 있었다.

그 모임은 아주 조직적이고 단합력이 강했고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모임 조건이랄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인인 내가 보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었다.

아빠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 출신, 

엄마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여자 대학 출신이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엄마들은 일을 하지 않는 주부였다.

오직 그들의 관심사는 아이들의 교육뿐이었다.


그리고 이 엄마들은 우리 엄마를 불쌍하게 여겼다.

아니, 다시 말하면 맞벌이하는 엄마들을 무시했다.

단순히 남편이 풍족하게 못 벌어다 주니까 맞벌이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역시 자연스레 그들의 남편들이 무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여자들이 집을 비우니 애들 성적이 안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조언을 핑계삼아 엄마들끼리 서열을 나눈 것이다.


본인들도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공부를 잘해서 본인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들에게

자존심을 짓밟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지금이라면 깜짝 놀랄만한 발언이지만, 

이건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이야기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도 2대째 똑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도

엄마는 그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인사하며 지냈다.


그들은 그룹과외 공석이 생길 때 가끔 엄마에게 연락해서

땜빵으로 과외비를 같이 내 줄 사람을 구했고,

그래서 나는 친구라기엔 이젠 조금 서먹해진 아이들과

(물론 그 어머니께서 맞벌이하는 집 애랑 놀지 말라고 하셨기에 멀어졌다.)

다시 만나 몇 번 과외를 받곤 했다.


엄마는 가끔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말로 흔들어 놓을 수 없는 훨씬 단단한 사람이었다.

본인의 커리어를 끝까지 지켰고, 그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덕분에 나는 전문성이 있고 독립된 경제력이 있는 여성을 한평생 보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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