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dom akin to feral Nov 21. 2023

한국형 카스트 제도?

인도의 힌두교 카스트제도는 전통적인 오래된 사회 계급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부터 도시에서는 그 제도가 흐릿해져 가는 반면,

아직도 지방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진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접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새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보이지 않는 카스트 제도가 

오히려 도시로 가면서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부터 그 격차가 더욱 공고해져 가는 것 같다.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이라 모두가 나 같을 수는 없겠지만,

학교에서의 같은 반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고 멀어지는 무수한 과정을 거친 뒤

결국에는 결이 비슷한 아이들이 친구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결이라는 것은 큰 카테고리로 보자면 부모의 부와 지위였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혹은 용돈이 비슷한지 등

대개는 취미나 관심사에 따른 친구 맺기가 아닌, 가계의 비슷한 소득 수준을 따라 친구를 맺었다.


내가 나왔던 학교는 크게는 두 지역의 아이들이 오는 학교였는데,

대체로 그 두 지역은 약간의 소득 격차가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점을 재빠르게 눈치채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물론 집에 가는 방향이 다르니까, 자연스럽게 덜 친해진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도 봤지만,

그것만으로 이 큰 물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흘러 내 발길이 닿는 물리적 범위가 넓어지면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강남에 사는 친구는 서초에 사는 나를 인정하면서도, 은근하게 본인의 동네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들만의 요새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날이면, 그들이 본인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어 대체 이 사람들이 왜 나를 친구로 두는지에 의문이 들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송파에 사는 친구는 서초에 사는 나를 부러워하며, 송파도 강남 3구에 들어가지 않냐는 얘기를 했다.

송파의 학교에서는 송파 아이들과 성남 아이들이 분리되어 논다고 한다. 친구는 본인의 학창 시절에 많은 이들이 거짓 주소이전을 통해 강남구 학교로 배정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강남에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된 뿌듯함을 늘어놓는 이야기에 나는 맞장구를 치지도, 반박을 하지도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지 몇 년 뒤면 20년이 되어 간다. 20년 전의 이야기는 죽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져서 전국구로 퍼져버렸다. 신문에 아파트 갑질, 동네 갑질, 직업 갑질 등이 나와도 엄청난 충격이 아닌 시대가 됐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보이지 않는 동네의 차별이 계속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그 끝이 이어지는 건지.

그리고 누가 대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그런 생각을 주입시키는 건지 궁금해진다.


어떤 이가 소득으로, 직업으로 누군가를 하대한다면, 그 사람보다 나은 소득, 혹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본인을 막 대해도 괜찮다는 뜻일까?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졌지만, 안타깝게도 배금주의가 만연해지고,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끝없는 비교와 멸시의 기차놀이에 빠지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얌체 포비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