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공들였던 논문을 제출하고 모처럼만에 둘이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오전에 일정이 없기에 새벽 늦게까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이 휴대폰에 누군가 연락이 온 것을 보았고, 내용인즉슨 혼자 사는 친구가 많이 아파 혹시 깨어있다면 같이 응급실에 가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얼마나 아팠으면 연락을 했을까 싶어 걱정되는 마음에 급히 옷을 갈아입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밤늦은 시각 도로를 달리니 차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친구는 아파서 몇 번이고 우리가 어디쯤인지 물었다. 걱정되는 맘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차에 태우고 우리가 예전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다. 남편과 친구가 먼저 내려 병원으로 들어가고, 나는 주차를 하고 뒤따라 건물로 향했다. 친구가 이 병원에 처음 방문한 터라 접수를 하는 직원은 여러 가지 정보를 물어봤다. 아파서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서성대는 친구를 보면서도 안쪽으로 안내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절차는 절차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겨우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한 뒤에야 간호사가 나와 친구와 우리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거기서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기본검사. 키랑 몸무게, 개인 정보, 혈압 등 체크하고 간단히 증상을 말하고 나서야 우리는 병실 침대가 하나 있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응급실이면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미국 병원답게 우리들은 방으로 안내받은 뒤에도 한참을 기다렸다.
거기서도 바로 의사를 보지 않고 간호사가 들어와서 기계를 연결하고 나갔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친구가 물이라도 마시고 싶다고 해서 친구를 대신해서 물을 요청했다. 그것도 오래 기다려서 겨우 작은 물통을 받았다.
한 시간쯤 더 지났을까? 드디어 의사와 쉐도우 하는 레지던트가 따라 들어왔다. 증상을 묻고 여러 가지 얘기 후에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IV(링거)도 하나 맞기로.
그 후에 간호사가 와서 피를 뽑고 수액을 연결해 주고 갔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른 간호사가 큰 기계를 가져왔다. 한국과 다르게 엑스레이를 찍을 때 어디로 이동할 필요 없이 환자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기계를 가져다가 병실에서 바로 찍어줬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흐르고.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친구의 상태를 계속 봐야 했기에 간간히 수다를 떨면서 졸음을 이겨냈다. 혹시나 수술을 받거나 입원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걱정이 되었다.
와중에 행정 직원이 보험 정보를 받기 위해 다녀갔다. 미국에서 응급실 방문은 비용이 많이 나온다고 알고 있지만, 아마도 친구가 학생이고 수입이 적기에 많은 부분 비용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빌지가 나와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우리의 경험과 다른 주변 친구들의 경험은 그랬다.
시간은 어느새 6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의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재방문했다. 결과적으로 친구 건강에 딱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아서 본인들이 해줄 건 없고 퇴원을 하라고 했다. 결과를 듣고 우리들은 다 놀라고 말았다. 분명 몸이 안 좋아 방문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여러 번 되물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다행인 건지?
그렇게 검사 결과지를 받고 우리는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조금 자고 일어나 물어보니 친구가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탈하긴 했지만 그래도 별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혹시나 이번 일 때문에 친구가 나중에 일이 생겼어도 부탁을 꺼려하진 않을까 괜한 걱정도 든다.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미국 생활에서 아는 한국인 친구가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지금 나는 친구들이 거의 다 이사 가고 없는데 그런 면에서는 만약 내가 문제가 있을 때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게 좀 서글퍼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