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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Dec 26. 2023

강간과 섹스 사이, 여성들의 첫 경험

오늘은 청소년을 포함해서 이 시대 여성들의 첫 경험이 왜 오롯이 즐거울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함께 되돌아볼 거예요. 그리고 남성은 성을 즐거운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살펴볼게요. 여성이 만족할 수 있는 섹스를 위해서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할까요? 함께 읽어 보면서 나의 욕망과 욕망의 조건을 탐색해 보아요.

<목 차>

(서론 ①) 강간과 섹스 사이, 여성들의 첫 경험
(서론 ②) 남성이 리드하고 여성은 조신하게 따른다?

(본론 ①) 여성의 섹스에는 준비와 조건이 필요해
-[1] 현명하게 배려하는 여성상
-[2] 여성은 조신해야 : 순결한 여자 or 까진 여자
-[3] 새 여자 vs 헌 여자, 그리고 퐁퐁남
-[4]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닐까
-[5] 성폭력에 대한 공포
-[6] 임신, 감염되면 어쩌지?
-[7] 내가 진짜 별로면 어쩌지?- 성적대상화

(본론 ②) 남성이 섹스에 관대한 이유
-[1] 남성의 성적 욕망에 관대한 사회
-[2]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3] 임신 걱정? 전혀 없어!

(결론) 여성이 만족할 수 있는 성관계의 조건
- 안전한 섹스
- 하고 싶을 때 하는 섹스


강간과 섹스 사이, 여성들의 첫 경험


자, 진지하게 떠올려 봅시다. 


첫 성 경험은 어땠나요? 모든 것이 준비된 안전한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진행되었나요?


만약 완벽한 첫 경험을 하셨다면 정말 축하드리고 싶어요. 사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첫 성관계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간 당했다"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100% 원해서 성관계가 진행되지는 않았지요. 강간 100%는 아니었으니 누군가 물어볼 때면 조금 씁쓸하지만 섹스였다고, 첫 경험이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100% 원했던 섹스가 아니었으니 강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100% 준비되거나 원하지 않았음에도 첫 경험이 진행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성관계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남성 파트너가 존재하지는 않았나요? 물론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는 왜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어떤 것을 원합니다. 부자가 되길 원하기도 하고, 유명인이 되길 원하기도 합니다. 밥을 원하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볼 수 있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하는 걸 언제나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때와 공간을 가려서 우리는 욕구를 표현하고 해소합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여성과 남성이 마치 다른 욕구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남성의 성욕은 왕성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중요한 것으로 다뤄지고 여성의 성욕은 없는 것, 또는 불필요한 것, 나아가서는 요망한 것으로 다뤄지지요.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건 우리의 욕구 수준이 아닙니다. 욕구 수준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것이라 몸 밖으로 꺼내어 서로 비교해 볼 수 없지요.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욕구에 대한 표현입니다. 지금 당장 성관계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섹스하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미쳤나 봐! 누가 눈치채면 어쩌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두 사람이 우리 눈앞에 있다고 가정해 볼까요? "섹스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성욕이 엄청난가 봐'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남성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성관계 요구를 받은 여성은 어떨까요? '해 주거나' 헤어지거나 둘 중 하나 사이에서 선택해야겠지요.


지금 청년과 청소년에게는 원치 않는 성관계에 응하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고, 그런 문화도 널리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다행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 한 번도 거절하지 못하고 성관계에 응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한두 번 거절하다가 응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여러 번 계속 거절했지만 내가 뭐라고 말하건 상관없이 성관계가 진행되어버린 경우도 있지요. 나도 모르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관계가 진행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성관계를 거절할 수 없다면 이별하는 방법도 있지만 항상 여성이 이별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여성은 일평생 동안 자신보다 타인의 욕구를 빨리 알아차리고 배려하게끔 교육받으니까요. 성관계를 해주지 않으면 계속 집요하게 요구하는데 그러면 요구를 당하는 쪽에서는 집요하게 거절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계속 거절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경우에는 '성관계를 해주지 않으면 너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라는 등의 이별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겨우 성관계가 뭐라고 이것 때문에 우리 관계까지 망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이기도 하지요.


어쩔 수 없이 내리게 된, 눈 질끈 감고 '한 번 해주자' 결심한 걸 가지고 섹스를 '선택'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본인마저도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이 선택은 '진짜 선택'이 아닙니다. 선택지 자체를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타인, 대부분의 경우에 남성 파트너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별하지 않고 섹스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섹스하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누가 만들어낸 생각인지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이 섹스에 대한 선택지를 제시하고 여성은 그 선택지 안에서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은 누가, 왜,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남성이 리드하고 여성은 조신하게 따른다?


과거에는 더욱 극심했습니다. 실제로 '보쌈'이라고 해서 여성을 데려가 강간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첫 경험을 '빼앗아' 결혼을 하는 커플들도 많았습니다. 첫 경험을 '빼앗긴'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살아가고 있지요.


반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성관계를 제안한다거나 성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면 '혼삿길 막히려고 어디 여자가 그런 얘길 꺼내느냐' 취급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다를까요?


어느 성교육 활동가 선생님이 중고등학교 성교육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귀는 사람한테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어떨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나랑 잘래?


여성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의 답변은 그 결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남성 청소년의 답변을 먼저 살펴보면 "무슨 뜻이야?", "손만 잡고 잘까?" 등으로 성을 말로 꺼낼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었고요. 다른 한편에서는 "감사합니다.", "나는 괜찮은데 너도 괜찮아?"등 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적극적인 모습에 조금 당황한다."면서 성에 적극적인 여성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도 표현이 되었지요.


여성청소년의 경우에도 "무슨 말이야?"라고 되묻는 등 성을 말로 꺼낼 수 있는 능력자가 존재했습니다. 다만 "싫다"라는 경우가 더 많았고 몇 명은 사귄 지 100일인지 200일인지 300일인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관계에 대한 현재 시대의 여성과 남성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볼 수 있는 부분이지요. 남성 청소년에게는 성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가 거의 없었고요. 여성의 경우에는 싫다고 답하거나 사귄 기간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는 등 조심성이 나타났습니다.


청소년 성문화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여성청소년보다 남성 청소년의 사춘기가 1년 늦게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남성 청소년이 1년 빠르게 첫 성 경험을 하고 있는 것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남성 청소년은 성에 대해 조심하기보다 호기심과 적극성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왜 여성청소년은 성에 적극적이기보다 조심스러운 걸까요?


여성의 섹스에는 준비와 조건이 필요해


여성의 섹스는 남성의 것과 다릅니다. 비슷한 욕구 수준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볼 때,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가 잠깐 나왔었지요. 여성의 욕구가 그 모습 그대로 표현될 수 없는 사회문화적 이유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1] 현명하게 배려하는 여성상


여성에게는 자신보다 타인의 필요와 감정을 먼저 읽어내는 현명함을 기대합니다. 남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배려와 양보도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하지요. 이런 사회문화적 기대는 여성에게 자신의 욕망을 후순위로 미루고 타인의 욕망을 우선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표현하면 들어주고 맞춰주려 합니다. 무슨 옛날 조선시대도 아니고 현재 2024년도 그런가 싶으실 수도 있지만 여전히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길거리에서 여자 어린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며 훈육하는 부모는 어렵지 않게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들어 타인의 욕구보다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게 정신건강의학적으로 '건강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지요. 이런 합의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금은 하기 싫고 잠이나 자고 싶다" 혹은 "나는 이런 장소에서는 싫은데" 혹은 "나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좋은데" 같은 표현을 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지요.


[2] 여성은 조신해야 : 순결한 여자 or 까진 여자


성에 있어서 여성은 적극적이기 어렵습니다. 성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나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표현하면 창녀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지요. 


지금은 아니라고요? 


지금도 중고등학생들의 학교폭력 현장을 보면 여성을 괴롭히는 말로 '걸레'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걸요. 여전히 여성에게 "한 번 대줘.", "한 번 줘라" 같은 표현을 하기도 하고요.


창녀가 되지 않으려면 순결하고 조신한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요? 


성에 대해 잘 모르는 여자, 피임도구를 보면 화들짝 놀라는 여자, 좋아도 싫다고 말하는 여자, 한마디로 내숭 떠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남성과 하는 성관계가 아무리 별로여도 좋은 척을 하는 것도 자신에게 기대되는 순결하고 조신한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방법 중 한 가지입니다. 노력하는 상대방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혹은 남성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좋은 척하기도 하지만요.


이렇게 조신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입 밖으로 성에 대해서 꺼낼 수가 없기 때문에 섹스 준비, 피임 준비를 남성 파트너와 함께 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남자 파트너가 "쉬었다 가자.", "여행 가자"라고 대충 얼버무려 말하더라도 '아, 나랑 성관계를 하려고 하는구나, 준비해야지'라는 식으로 혼자 준비하거나 친구들에게 "나 이번에 00이랑 여행 가기로 했어,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며 고민을 털어놓고 준비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지요. 


남자 파트너에게 "우리 섹스할래?" 얘기하지는 못한다고 쳐도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서 "그럼 어디서 할까?" "피임은 어떻게 준비할까?" 같은 얘기까지도 나눌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요한 얘기들을 말로 꺼내서 준비할 수 없고 혼자서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섹스는 그다지 달갑지 않습니다. 걱정하고 준비해야 할것 투성이지요.


준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피임을 위한 콘돔은 남자가 준비해오겠지 기대하면서 패스하는 경우도 봤어요. 오히려 속옷을 고민합니다. 위아래 세트를 맞춰 입을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레이스 달린 섹시한 속옷을 입으면 
너무 기대한 것처럼, 
준비한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그렇다고 너무 귀여운 속옷을 입으면 
여자로 안 보이진 않을까? 

그렇다고 너무 편한 속옷을 입으면 
섹시해 보이지 않을지도...


[3] 새 여자 vs 헌 여자, 그리고 퐁퐁남


여성의 섹스에는 항상 소문에 대한 걱정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파트너와 모텔에 들어갈 때 누군가 내 모습을 발견하는 건 아닌지 의식하게 되기도 하지요. 


이런 걱정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몇몇 남성들은 성 경험 여부에 따라 여성을 분류하고 평가하기도 하니까요. 청소년들이 걸레, 창녀 같은 표현을 쓰듯 20~40대 몇몇 남성들은 새 여자, 헌 여자 개념을 씁니다. 


퐁퐁남에 대해서 아시나요? 


몇몇 남자들은 예쁜 여성들이 20대 젊은 시간은 키 크고 잘생긴 남자들이랑 섹스하고 다니면서 헌 여자가 된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여성이 나이가 들면 돈 잘 버는 순진한 남성을 만나서 경제활동 없이 집안일도 하지 않고 남자 등골을 빼먹는다고 하고요. 이런 여자와 결혼한 남자를 일컫는 단어가 퐁퐁남입니다. 밖에서는 경제활동을 하고 집에서는 설거지까지 하는 남자를 말하지요. 


얼핏 보면 경제활동도 가사노동도 하지 않는 여성과 결혼한 남성을 비하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면 연애를 많이 한 여자, 그러니까 섹스를 많이 한 여자에 대한 비하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섹스하기 전의 여자를 갓 차려진 음식에 비유할 때 소위 '맛있는' 부분은 키 크고 잘생긴 남자들이 젊을 때 다 '먹었고', 순진하고 연애 경험 없는 남자가 '남아있는 음식물', 혹은 '음식물 찌꺼기'를 해치운다, 설거지한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성을 성 경험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로 나눴고, 여성의 성을 음식에 비유했지요. 여성에 대한 비하이고, 여성을 한 사람의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은 채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성적대상화의 결과물입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이러한 시선에 대해서 다는 몰라도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문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심지어 소문이 날까 불안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게 될 줄 정확히는 몰라도 대략적으로는 짐작할 수 있거든요. 섹스 한 번에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참고로 여성의 성 경험 여부를 알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많지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성 경험 여부에 대해서 의사라고 해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질 내부에 상처가 있다고 한들 그게 성관계로 새긴 상처인지 자위하다가 생긴 상처인지 아무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추측만 할 수 있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네요.


[4]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닐까


섹스는 가장 나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옷을 벗어서 나체가 되었다는 것 이외에도 심리적으로도 감당해야 할 부분이 더 있지요. 바로 내가 성적으로 이용되는 건 아닐까에 대한 걱정입니다. 


정말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섹스를 위해 사랑한다고 거짓말하기도 하고요. 평생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처럼 굴기도 합니다. 사실은 성인이면서 청소년인 척 나이를 속이기도 합니다. 결혼한 상태이면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거짓말을 꾸며대기도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진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고학력자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요.


모든 것이 진실이고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아무리 공들여 쌓았다고 해도 얼마든지 단 한순간에 와르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게 신뢰의 속성이겠지요. 이런 신뢰가 단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게 섹스를 강요한다면 여성은 더 많은 것들을 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거운 짐들은 여성의 섹스를 즐거움에서 더욱 거리가 멀어지도록 만들지요.


[5] 성폭력에 대한 공포


매일 뉴스에서 남성의 만남 요구에 불응해서 죽는 여자, 끌려가 강간당하고 죽임당하는 여자의 얘기가 보도되지요. 여성의 주변에는 성폭력 피해로 마음고생하는 여성들이 있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성폭력은 실체 없는 불안이 아닙니다.

섹스하는 그 순간에 
혹시 내 마음이 바뀌면 어쩌지?

그만하자고 했는데도 
상대방이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진행하면 어쩌지?

내 모습을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하지는 않을까? 

그걸 친구들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업로드해 버리면 어쩌지?


여성에게  협박, 강요, 폭력에 굴복할지 저항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성관계 할 때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성이 가장 나약해진 순간이며 어떤 남성들이 가장 자신을 제어하기 싫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내 뇌는 0(생식기)에 있다', '남성의 뇌는 두 개인데 그중 하나는 제어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은 모두 남성이 언제든 여성을 향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만큼 여성을 힘들게 하는 건 죄책감입니다. 혹시라도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면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입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지도록 강요받습니다. 예컨대 "왜 짧은 치마를 입었냐" "왜 늦은 시간에 바깥을 돌아다니냐" 등의 말 말이지요.


우리나라만 동방 예의지국이라서, 혹은 유교사상 때문에 여성에게 조신함을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여성을 향해서 항상 조신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려라." "치마 입을 때는 속바지를 입어라." "남자와 둘이 놀지 말아라" "어깨나 배를 드러내지 말아라." 


이런 가르침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면 그건 다리를 오므리지 않은 여성의 탓, 남자와 둘이 밤늦게까지 논 여성의 탓, 속바지를 입지 않은 여성의 탓을 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여성들은 이런 가르침을 아주 어려서부터 받으며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내 탓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성폭력을 당하면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죄책감을 갖게 되지요. 피해를 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여성들은 사회를 더욱 조심합니다. 밤늦게 걸을 때 뒤에서 남성이 따라오면 무섭고, 계단을 오를 때 밑에 사람이 있으면 치마를 오므리게 되는 것은 성폭력 피해를 여성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회가 여성에게 심어준 불신입니다.


이런 여성이 섹스를 결심한다는 건 또 다른 성폭력 피해의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6] 임신, 감염되면 어쩌지?


여성이 섹스에서 주춤거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임신 가능성입니다.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며, 여성의 인생 전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섹스를 결심할 때 임신 가능성으로 발생하는 모든 위험까지 함께 떠안게 됩니다. 




이 글의 뒷 부분은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함께 살아가는 연습, 보라체]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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