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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Feb 23. 2024

여자들의 섹스 토크 현장 중계

목  차

여자들은 왜 성에 대해서 별로 말을 안 할까?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게 현명한 여자?
감정의 가장 뜨거운 경합 : 섹스
초대장 :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이야기
섹스 토크 엿보기


오랜만에 섹스 토크를 열었습니다. '섹스 토크'라는 뭔가 이름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섹스에 대해 말하는 자리입니다. 


여자들은 왜 성에 대해서 별로 말을 안 할까?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여자들에게 이런 기회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제 주변 활동가들은 정말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정작 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동료 활동가들 대부분이 성폭력, 가정폭력, 여성 등 성과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는데 불구하고 말이지요! 어느 동료 활동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조차도 너무 성을 너무 터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성에 대해서 모르는 순결한 여자여야 한다고 배우면서 자랐지요. 조금만 성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면 '까졌다'거나 '술집 여자', '몸 파는 여자', '쉬운 여자'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만 들으면 다행이지 일부 남성들은 여성이 성에 대해 말하는 걸 멋대로 상상해서 '나한테 관심 있다'라고 생각해 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런 성폭력은 가해자의 책임이지,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라는걸요.


남자들은 성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예능 프로, 드라마, 유튜브 콘텐츠를 봐도 남성들의 개그는 성적인 개그가 많아요. 그에 비해서 여성이 그런 개그를 사용하면 성적으로 대상화돼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성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아니지요. 그래도, 그럴수록 누군가는 더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게 현명한 여자?


한편으로는 요즘 성교육 관련해서 읽고 있는 여러 성교육 도서에서 여성의 성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들이 참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캐치하고 그 감정을 배려하도록 행동하는 게 '지혜롭고 현명한' 여자로 여겨지는 문화에서 성장하지요.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전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성교육 책을 보고 있는데도 공통된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사람이 타인의 감정을 배려한다는 건 언뜻 들었을 때는 좋은 말 같습니다. 하지만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는 게 항상 그렇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좋은 건 아니지요. 특히 성적 행동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성적 행동에서는 타인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내 욕구에 충실히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타인의 욕구만 '배려'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지경까지도 이를 수 있습니다. 


욕구와 감정은 인간 개인에게 나침반 같은 것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려 주지요. 별로 중요한 선택이 아닐 때, 혹은 인생에서 몇 번 정도는 친구 따라 선택해도 상관없지만 일평생, 혹은 매 순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내 인생이라고 부를 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내 욕구, 내 감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인생을 위한 나의 선택을 내릴 수 있지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내 감정을 잘 모른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느끼는 건 그게 무엇이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좀 슬픈 일이 있어도 '조금 슬프지만 뭐 어때, 아무도 모를 텐데'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태도는 자신을 존중하거나 사랑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타인을 대할 때도 나오게 되겠지요. 다른 사람을 존중하거나 사랑하기도 어려워진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내 감정을 잘 모르게 되고, 내가 느끼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거꾸로 남들의 말과 행동에 더 휘둘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중심'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감정은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우리 중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어느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 성향,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내 감정을 잘 모르게 되면 건 내 중심이 뭔지 모르게 되는 것과 같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건가? 싶어서 혹 하게 되고, 저렇게 말하면 저건가? 싶어서 혹 하게 됩니다. "아, 당신은 그렇게 느끼셨군요. 저는 이렇게 느꼈어요." 이렇게 독립이 잘 안되지요.


타인이라는 존재와 독립이 잘 안되는 것, 분리가 잘 안되는 건 다른 사람의 경계를 침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폭력, 가정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갑질, 학교폭력 등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딱 하나만 더 말하자면, 내 감정에 대해서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내 중심이 비어 있기 때문에 타인의 관심을 갈구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관심에 더 목말라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 것 같은 행동도 서슴없이 해내고, 자신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면서 목숨을 내어 놓겠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한 채로 자극적인 행동이나 거짓말을 반복해서 하기도 하고요.


감정의 가장 뜨거운 경합 : 섹스


이 모든 것은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것입니다. 이 인생 전체에 대해서 말하기는 너무 방대하므로 간단하게 섹스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걸로 줄여보는 게 제가 오픈하는 섹스 토크의 배경입니다. 


나와 내 감정과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성적 욕구를 느끼기 어렵거나 성행위를 하면서도 기쁨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성행위를 할 때 느끼는 감각도 사실은 감정으로 보는 것이지요. '우리가 평소에 느끼고 있는 수없이 많은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다면 섹스라는 고 자극 행위에서는 정말 풍성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욕구가 행동으로 바로 표현되는 곳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다른 섹스 토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비교해 볼 수는 없겠지만 제가 개설하는 섹스 토크는 제가 지금까지 살며 참여해온 다른 모임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책 모임, 영화모임 그런 모임들과 비슷해요.


초대장 :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이야기

일단 간단한 포스터를 만들고 초대장을 보냅니다. 이번 섹스 토크는 익명-온라인 조합이었는데 참여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서 따로 홍보를 할 필요는 없었어요. 


섹스 토크는 한 사람의 역사를 듣는 시간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건 불가능하고요.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2시간의 경우에는 최대 저까지 5명, 3시간의 경우에는 저까지 최대 6명으로 진행합니다.

섹스 토크 초대장


초대장에 내용도 구구절절 있었는데 마실 것, 먹을 것, 가면/선글라스 등은 각자 준비하기 등에 대한 안내와 궁금한 내용이나 기대되는 점, 그날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등에 대한 설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섹스 토크 엿보기

누구나 섹스 토크를 진행해 보실 수 있도록 그날의 화면을 공유해 볼게요. 


주므로 진행했는데 선글라스를 꼈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심지어 밤에!) 심각하고 웃기고 진지한 얘기를 하는데, 그 얘기가 섹스 얘기이고, 근데 선글라스를 끼고 얘기하는 모습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편안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미리 캔버스로 만든 모임용 장표지요. 오르가슴의 느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디자인이 있어서 골랐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대부분의 모임이 이렇게 진행되지요? 오늘 모임 개요 나누고, 모임에서 지켜야 할 약속 나누고, 지금 감정 상태 공유하고, 본격 모임 진행하고, 마무리로 소감 한 마디씩 나누기.


우리는 익명이었고요. 남성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남성보다 이 남성들이 성, 섹스, 욕망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요.


우리의 관심사는 섹스, 자위, 섹스 루틴, 자위 루틴, 오르가슴,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욕망,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 등이었습니다.


오늘 모임의 목표가 있다면 마시고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모임 개설자인 제가 모임을 만들면서 가졌던 개인적인 생각은 "더 많이 말해야 더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힘든 일이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고요. 힘든 일이 있거나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 심리 상담을 받는 것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건 아직 덜 자유롭다는 걸 뜻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성들은 아직 성적 욕구를 느끼고 추구하는 데 있어서 덜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건 구속되어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성들은 어디에 구속되어 있을까요? 어떤 페미니즘 책을 보니 '구속'이 아니라 '예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더라고요. 상관없지요. 여성들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것을 알아차릴 때부터 더 빠르게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안전 규칙은 제가 가안을 만들고 참여자들이 덧붙이거나 삭제하는 방식으로 준비해 봤어요. 예전에 어떤 모임을 진행해 보니 남성 개인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남성을 한 그룹으로 묶어서 비하하는 방식으로 얘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버리곤 하더라고요. 듣는 남성이 없어도, 있어도 참 마음이 복잡해지더라고요.


성폭력 가해자의 95%가 남성이고 가정폭력 가해자의 90%가 남성이고 이런 통계가 말해주는 현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성에게 폭력과 성폭력을 당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신고된 건 이외에 폭력 위험은 정말 수십 배 더 심각한 수준이고요. 이런 개인의 경험과 감정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고요. '진짜'입니다. 


근데 저는 성별로 사람을 갈라서 멸을 붙여 사용하는 건 좀 힘들더라고요.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남성 지인들이 여성들을 멸칭으로 부른다면 속상할 것 같아요. 그래서 사담이 아닌 경우에는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게 제가 제안하는 안전 규칙입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가 섹스라는 예민한 주제인 만큼 오늘 모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준비되어 있을 가능성보다 준비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더욱 수위 조절에 신경 써야 합니다. 오늘 얘기 꺼냈다가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수십 개의 감정 카드 중 지금 감정을 하나씩 뽑아서 지금의 심경을 고백하며 오늘 모임을 왜 신청했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다음부터 본격적인 질문과 생각, 경험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통과하는 질문으로 준비해 봤어요. 시간을 보면서 다 다룰 수 있으면 다루고 아니면 좀 지나가기도 하면서 유동적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매일 워크 라이프 밸런스만 찾아 헤매는 대한민국 청춘들, 이제는 섹스 & 라이프 밸런스도 맞춰 보세요.


섹스에 대해 지금 각자 갖고 있는 이미지를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누군가는 긍정적인 이미지일 수도, 누군가는 부정적일 수도, 누군가는 아직 물음표의 영역일 수도 있겠지요. 


이 질문이나 이 앞 단계 감정 카드에서 현재 자신의 섹스 고민, 성생활 고민에 대해 털어놓게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처음 음란물을 봤던 날, 처음 섹스를 알게 됐던 날, 처음 섹스했던 날 등 다양한 얘기가 나왔어요.





이 다음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채널, 보라체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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