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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정체성, '남새'를 생각하다

by 서기슬



오늘은 한식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글의 부제목을 좀 거창하게 붙여보자면,
"한식의 정체성을 담기 위한 순우리말 표현에 대한 아마추어적 고찰"
정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는, 얼마 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상태입니다. 미국 출장을 갈 때마다 제일 힘든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식탁 위에 남새가 별로 없어'입니다.


남새는 밭채소를 뜻합니다. 특별한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이 말을 중학교 국어 시간에 처음 배운 것 같은데, 그런데 자라 오면서 생각 외로 이 말을 대체할 국어 표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밭채소라고 써도 거의 1:1로 대응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밭채소라는 말을 자주 쓰진 않으니까요.


단어의 의미는 각 단어의 상호 관계, 그리고 단어들이 위치하는 문맥에 따라 정의됩니다. 그럼 밭채소에 대칭적으로 대응되는 말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걸 산채소라고 부르지 않고 산나물이라고 부릅니다. 산나물도 우리말이지만 '산'은 한자기도 하죠('뫼 산'자 잖아요). 산나물과 거의 동의어이면서, 순우리말 중에 남새에 대칭으로 대응되는 우리말은 푸새라고 합니다.


남새와 푸새는 그러니까 각각 밭에서 기른 식물과, 야생에서 채집한 식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제가 생각할 때에 한식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 재료를 담는 언어로 이 구조가 제일 전체를 잘 담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저희 모친께서 직접 채취한 고사리입니다. 원래는 먹을 수 없는 독성이 있는 푸새도 데치고 말려서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식문화죠.


'나물'은 데치거나 무친 요리나 음식 형태를 지칭하는 표현이면서, 그 재료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산나물이라고 하면 간을 해서 식탁에 오른 음식이기보다는 재료 자체를 지칭하는 식으로 더 많이 쓰이기도 하죠.


우리는 이걸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외국인에게 설명하자면 그들은 조금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에 '나물은 음식의 이름이지만 재료의 이름이기도 해. 야채나 채소는 재료만을 뜻해. 산나물은 보통 재료를 더 많이 뜻하고 야생의 것을 채집한 것을 뜻해' 이런 식으로 설명이 복잡해지잖아요.


하지만, '나물은 식물의 뿌리, 줄기, 잎, 열매를 익히거나 혹은 익히지 않고 간을 해서 요리해낸 것이고, 그 재료에는 남새와 푸새가 있어. 남새는 인간이 기른 식물, 푸새는 야생에서 채집한 식물' 이러면 좀 더 깔끔하고 명확하지 않을까 생각해본 것입니다.


저는 MECE하다거나 그런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왜냐하면 MECE하지 않으면서 그런 척 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논리와 집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그냥 사람들은 '목록의 항목이 충분하다', '전체를 잘 담고 있다'는 정도로 MECE를 남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정확히는 MECE를 남용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겠습니다만), 비슷한 의미로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먹을 수 있는 풀이 있는데, 논리적으로 사람이 길렀거나 야생에서 채집했거나 둘 중 하나겠죠.




제가 국어학에 조예가 있진 않아서 모두 저의 짐작으로 이해해보려고 한 것입니다만, 표현으로는 '마지막 잎새' 할 때에, 그 잎새의 새이고, 남새는 나물새, 푸새는 푸성귀, 이렇게 언어 개연성이 있지 않을지 추측해봅니다. 북한에서 아직 이런 말을 쓴다고 하는데 수도권이나 남도 지역의 기록에서 남새라는 말이 많으니 지방 차이는 아닌 것 같고, 그저 북한의 순우리말 정책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남새와 푸새는 허영만 선생님이 식객이라는 작품에서 다루면서 한 번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남새와 푸새의 조화가 한식의 정체성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축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러면 '한식의 정체성'에 무엇인지 좀 더 들여다 봐야합니다.


저는 '한국 요리'라는 것은 대단히 현대적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조선반도에는 개성 음식, 안동 음식, 한성 음식 등등 뭐 이런 것들이 각기 모여 역사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역시나 계속해서 저만의 방식으로, 현재 우리가 먹는 한식의 줄기를 제가 이해하는 방식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한식의 분류는 1) 궁중 요리와 그로부터 비롯된 음식들, 2) 앞서 언급한 각 지방의 전래 음식으로써 주로 양반가의 잔치나 제사 음식에서 비롯된 음식들, 3) 근현대를 거치며 그 전래와 형성을 현재에도 문헌적 기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현대 한국 음식, 그리고 4) 대한민국 현대 음식, 마지막으로 5) 컨템포러리입니다.


첫 째인 궁중 요리는 기록과 사료가 명확하다는 점과 그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상징성이 있습니다. 탕과 국의 근본이 여기에 많죠. 은근히 떡볶이가 이 분류에 근본이 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고요. 빨간 떡볶이는 아니지만요. 둘 째인 지방 전래 음식은 일상식도 있지만 역시나 잔치나 제사 중심으로 장기간 전래되어 왔고 지방마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묶기 어렵지만, 반대로 '서울 음식'의 여집합을 지칭하는 것은 의미가 있죠. 잠시 세는 얘기지만 저는 '서울의 맛'에 대해 나름 오래 탐구하고 고민해왔는데 책으로 쓰려고 한 7~8년째 묵히고 있지만 도통 틈이 안 나네요.


'서울의 맛' 하면 이러나 저러나 빠질 수 없는 곳 중의 하나는 우래옥인 것 같습니다.


셋 째의 근현대 음식은 예시를 들면 쉬우실텐데, 설렁탕, 해장국, 족발, 뭐 이런 겁니다. 왜 이런 것을 '근현대'라고 지칭하느냐면, 그 이전에 조선에서는 고기 먹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기가 일상식으로 들어온 것은 모두 근현대라고 봐야죠. 꼭 고기가 아니라도 서울에서 먹는 대부분의 냉면의 형태,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이나 밀면, 저는 이런 것도 모두 이 분류에 속한다고 봅니다. 양념에 절인 돼지갈비 이런 것도 마찬가지고요, 과거에도 맥적이 있었고 돼지를 먹는 방법 다양했지만 마포식 숯불 돼지갈비는 근현대 산물이라고 봐야죠. 서울식 불고기도 사실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상당히 전통 한식인 것 같지만 은근히 조선에는 없었고 1900년대 실질로 형성되어 지금도 한식의 정체성을 이루는 음식들이 많습니다.


넷 째 대한민국 현대 음식은, 달리 표현하자면 K food와 가장 일치도가 높은 분류겠네요. 떡볶이, 양념통닭, 김밥 같은 것입니다. 소위 '한식집'에서 이런 것을 팔지 않지만, 저는 당연히 한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산업과 문화에 굉장히 중요한 축이죠.


다섯 째 컨템포러리는 쉽게 말씀드리자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분류되는 '온지음'의 요리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한식이죠. '밍글스'를 당연히 코리안 컨템포러리라고 부를 수 있지만 미묘한 표현으로 '한식'이냐 라고 하면 애매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온지음'은 넣거나 뺄 부분 없이 확실히 한식이라는 데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참고로 저는 대한민국에서 한식 제일 잘 하는 곳이 온지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거창한 얘기가 되었습니다만, 다시 저는 이 모든 한식을 관통하는 정체성이 '남새를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성수동에서 먹은 점심 백반인데요, 사실 한식의 주요한 원형은 이런 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밥, 국, 반찬.


저는 벌써 십 수년 전인 20대 중반에 처음 미국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촌놈이라서 '따로 시키지 않으면 일주일 동안 야채를 하나도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컬쳐쇼크라면 컬쳐쇼크였습니다. 동부와 서부 모두 마찬가지였죠.


한 번도 제가 야채를 좋아한다거나, 야채를 못 먹으면 갈증이 생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편식하여 야채를 걸렀던 어린 시절도 있었으니, 뭐 야채 좀 못 먹으면 어떻겠어,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달 이상 해외에 있으며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정확히 그것은 '갈증', 몸에 특정한 영양소, 그러니까 왠지 어떤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채워지지 않을 때에 느껴지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분명히 물리적으로도 다가오는, 뭔가 답답한 기분이 갈증과 비슷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하게된 것이죠. 나는 한식을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한식은 가만히 있어도 야채를 많이 먹게 되어있는 특성을 갖고 있구나. 저는 밥과 고기를 제일 좋아하지만 실은 늘 야채가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여긴 을지로 보석입니다. 흑백요리사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조서형 사장님은 한식 다운 한식을 트렌디하게 하는 데에 대단한 실력자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반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메인 디쉬에 가니쉬도 줄기콩 정도였으니, 멕시칸 요리나 서브웨이 샌드위치 등에서 야채 추가해서 먹는게 그렇게 감사한 일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샐러드의 인기나 야채 섭취에 대한 인식은 최근 10-20년 사이에 미국 내에서도 크게 발전한 것 같습니다. 감자가 야채 할당제를 채우게 된 덕에 미국 급식에 다른 야채는 더욱이 드물었고, American breakfast라고 하는 나름의 정체성을 지닌 메뉴에는 녹황색 야채의 자리가 없습니다. '균형 잡힌 식단'은 비만에 대한 인식, 건강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90년대나 00년대에 비해 훨씬 더 개선되었죠. Slow food에 대한 무브먼트 같은 것도 확산이 20여 년 전이니 근현대사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하는 식당에 가서, 한끼 식사급의 좌측 큰 샐러드 메뉴를 굳이 시키지 않으면, 우측의 계란, 감자, 고기, 빵만 먹어야 하죠.



자 그러면, 한식의 정체성 중 하나는 '남새를 먹는 것'이다 라고 하면, 비슷한 의미의 다른 표현을 여러 가지로 써볼 수 있습니다. 한식의 정체성은 곡물류에 식물성 반찬을 곁들여 먹는 것, 고기를 먹을 때에도 쌈과 채소 반찬을 자주 함께 먹는 것, 어떤 음식과 먹든 채소로 이루어진 반찬을 함께 먹는 것, 등등으로 표현해볼 수 있죠.


이렇게 보면 '남새를 먹는 것'은 늘 밥이나 탕이나 다른 음식의 주변부에 있는 것 같았지만, 한 번 사고 실험이자 가정법으로 '남새를 먹는 것'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면 한식이 다른 나라의 음식과 차별화되는 많은 지점이 정의됩니다.


이를테면, 저는 일본 라멘을 먹어도, 너무 맛있는 돈코츠라멘인데 고명으로 계란에 차슈 정도가 올라가고, 김이나 미역 정도를 얹어주면서(해조류를 상당히 좋아함에도), 그럼에도 채소 반찬을 주지 않으면 괴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일본 음식의 정체성이 '남새를 먹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일본 음식으로서는 그냥 더할 것 없는 멀쩡한 일본 음식일 뿐인 것이지요.


피자라는 음식에 절인 오이, 무, 고추 등을 곁들여 먹는 것은 굉장히 한국적인 특성입니다. 생각 외로 그 어떤 나라도 굳이 피클 종류를 피자와 함께 먹지 않죠. 요즘은 무 빼고 치킨 드시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양념통닭에 절인 무를 먹는 것도, 떡볶이에 단무지를 먹는 것도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설렁탕, 순대국을 먹는데 석박지를 배제한다면? 한 두 번은 그렇게 먹을 수 있지만, 계속 그렇게 먹어야만 한다면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병에 걸리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남새를 못 먹어서 생기는 갈증이죠.


그럼 '한국인에게는 그저 김치가 필요한 것 아냐?' 라고 볼 수도 있는데, 한 번 더 남새 자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보자면, 김치의 주요 특성인 발효나 이런 부분 이전에 김치의 발달을 '사계절 내내 무나 배추를 먹으려고 했던 노력'이라고 해석해보자면, 결국 한국 음식이라는 특성이 실은 남새를 먹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김치의 어원도 침채, 딤채, 이렇게 해서 '담근 채소'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조상님들은 어떻게 해서든 채소를 먹어야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론적으로 한국인은 익혀서 독성을 없에야 하는 재료를 제외하고 모든 식물로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죠.


이것은 '봄' 집밥인데, 푸새인 개두릅(엄나무순) 튀김과, 겨울을 건너 온 김치의 조합이죠. 김냉이라는 하이 테크놀로지로 겨울을 나도 때깔이 좋은 김치, 우상단은 곰취인가 머위인듯



자 그럼 왜 꼭 지금 제가 '남새'라고 하는 낯선 단어를 꺼내느냐 하는 것에, 약간만 더 깊은 얘기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새와 푸새 얘기를 했지만, 그럼 좀 더 종합적으로, '한식의 주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늘 남새를 먹고, 종종 푸새를 즐기는 것'이라고 써보면 어떨까요. 남새라는 말의 의미가 vegetable이라는 영어 표현 대비 명확히 살아나는 지점은 두 가지인데, 바로 푸새라는 명확한 대칭점이 있다는 것이고, 남새가 재배되고 섭취되는 방식에 있습니다.


일단 많은 문화권에서는 푸새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섭취하지 않습니다. '기른 채소'라는 표현이 필요한 이유는 '야생에서 채집한 채소'가 있기 때문이고, 남새라는 말을 굳이 쓰는 것은 푸새의 존재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반도의 토양, 대부분의 인구 발달 지역이 산을 끼고 있고, 물이 맑다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또 조선반도의 식문화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자급자족 형태의 소규모 농업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점과, 다시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겨울에 풀을 모두 얼어 죽고 뿌리와 씨만 남겨 둔 상태에서 봄과 여름을 거치며 싹을 틔울 때에 부드러운 순을 채집하거나 재배해서 먹었다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남새라는 말을 중학교 때에 배우고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유는, '남새밭'이라는 표현 때문인데요, 요즘 우리가 쓰는 말 중에 가장 동의어에 가까운 것은 물론 '텃밭'입니다. 주로는 집 근처에 있으면서 판매보다는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 짓는 밭이죠.


해외를 나가보면 다시금, 빈 땅이 있을 때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텃밭을 가꾸는 나라도 참 드물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는 다같이 못살던 시절, 그리고 농경이 지배적이었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도 하고, 아직도 베이비 부머 세대에게 남아 있는 자급자족 소규모 농업에 대한 추억은 '남새를 먹는 것'이라는 특성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저는 연관하여 생각합니다. 그렇게 늘 먹어왔기에 농사를 추구하고, 또 농사를 그렇게 추구하기에 그렇게 먹게 된 것이죠.


5-60년 대에 텃밭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중장년은, 다들 귀농 귀촌의 로망으로 직접 농사지은 남새로 음식을 해먹는 장면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그게 또 막상 해보면 현실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심리 보정을 포함해서 해석하더라도 '방금 텃밭에서 따다가 먹는 야채'에는 각별한 맛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 아버지의 시골 남새밭입니다. 쌈장에 밥이면 '땅'의 맛으로 한끼 뚝딱입니다.



이것은 농약을 치지 않기 위해, 흰나비 애벌레를 손으로 잡는 놀랍고 집요한 농법으로 재배해는 저희 아버지 모습입니다. 이런 집에서 자라면 저처럼 입맛이 극한으로 까다로워지죠?


이건 글에 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저는 미식 경험과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이나 언어를 충분히 습득한 후에, 정말로 밭에서 갓 채취한 야채를 먹는 것에는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계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생토마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텃밭 토마토를 그 자리에서 따서 먹어본 첫날, 지금까지 모든 토마토를 오해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실은 당근도 그리 무척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정말 딱 알맞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밭에서 지금 끄집어 올려서 먹는 당근의 맛은 다르다는 것도 정말 맛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죠. 알배추나 상추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야채 대부분은 유통을 감안하여 수확되고, 마트나 시장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도달하지만, 텃밭 채소, 그러니까 남새의 본질은 재배지와 식탁의 물리적 시간적 거리가 극히 긴밀하다는 것이 저는 한식의 특성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텃밭을 가꾸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하우스 재배 야채라 하더라도, 미국 마트의 야채 같은 것에 비하면 한국의 소비는 생산지로부터 물리적 시간적 거리가 극히 가깝죠. 다시 이런 특성에 더하여, 토양의 특성, 바람의 특성, 물의 특성, 사계절의 온도차 등이 엮여서, 우리는 보통은 상당히 부드럽고 수분 함량이 많으며, 그러니까 질기기보다는 무른 야채를 먹고 있습니다. 다시 그런 품종 위주로 더 많이 소비되고, 소비에 따라 그런 품종이 더 많이 재배되는 상호작용이 있었겠지만요,



미국 마트의 유기농 코너. 미국도 야채 많이 먹지만, 식감이 야들야들하지가 않아요!



미국 마트에서 야채를 사먹으면 까다롭기 그지 없는 저 같은 인간은, 뭘 먹어도 질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먹어본 분들은 아시다시피 미국은 딸기도 질기죠. 한국 딸기의 극약한 유통 기한은, 먹으려고 아껴놨다가 곰팡이 핀 딸기를 본 분들이라면 모두가 잘 알고 계실텐데, 물론 그런 한국 딸기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먹기에도 맛있다고 합니다. 대학원 시절 대전에 거주하면서 유성 5일장에 굳이 종종 가곤 했는데요, 딸기 철이 되면 논산에서 그날 아침 5시에 수확한 딸기를 갖고 올라와서 아침부터 파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화점에서 파는 품종이 좋고 브릭스 기준 당도가 높은 것과 다른, 풀 향기의 싱그러움이 남아있는 딸기죠.


딸기는 과일로 분류가 됩니다만, 그 맛의 정수에서는 같은 얘기입니다. 신선함이라는 용어만으로 담기 어려운, 남새의 특성은 그 밭의 토질, 소규모 재배, 자급자족의 경험, 품종에 따른 수분 함량과 과질, 짧은 유통 기한, 모든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애호박을 생각해볼까요. 모 마트에 다니는 친구가 '유통의 실력은 애호박의 품질과 가격이다'라는 말을 해서 끄덕했던 적이 있습니다. 역시나 굉장히 한국적인 얘기죠. 대한민국 사람 붙잡고 '애호박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거나, '애호박이 한식의 정체성일까요?' 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답할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우리 평소에 먹던 모든 된장찌개에서 애호박을 없엔다고 생각하면, 거기서도 '남새를 못 먹어서 생기는 갈증'이 금방 올거라 생각합니다. 일본 여행하면서 미소 장국만 줄창 먹다보면 알게 되죠. 칼국수에 애호박은 아주 조금 들어가는 고명같은 존재이지만, 역시나 그 애호박을 뺀다면? 은근히 그 맛이 아닙니다. 애호박을 얇게 저며서 익힌 요리는 유럽에도 많이 존재하지만 주로 녹진하게 만드는 요리 방식으로 추구되고, 젓갈, 해물, 된장과 어우러지는 그 애호박의 풋내는 굉장히 한국적입니다. 우리는 애호박이나 배추의 소매가가 오르면 뉴스에 나오는 나라에 살고 있죠.


이것은 '솔밤'에서 먹었던 요리입니다. 애호박+해물 조합한 맛은 익숙한 맛이면서도 엄태준 셰프님은 '숙중경미', 익숙한 와중에 놀라운 맛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한식의 정체성은 Vegatable을 많이 먹는 거예요" 라고 하면
그 언어가 담는 내포와 외연이 모두 극히 축소되는 것 같고,
저는 '남새를 생각하다'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해온 것은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왜 꼭 지금 이런 얘기를 글로 남겨보냐면, 역시나 K food가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주목과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것이 그 어떤 특정한 매운맛으로 포지셔닝 된다거나 하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또 현대 문화로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코리안 바베큐로 대표되는 '불에 바로 구워서 즉시 먹는' 육식 문화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한 편으로는 식문화에 대해 고민하며 우리가 남새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채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많습니다. 라따뚜이, 미네스트로네 등 채소가 주인공인 유럽 요리도 다양하고, 인도에도 동남아에도 채식 요리는 많습니다. 그런데 야채가 주인공인 많은 요리가 '푹 익히는 것' 중심이라면, 데치거나 생으로 무치거나, 고기 요리와 어우러지는 남새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한 편 그렇게 남새를 먹으면서도 오히려 한식에서는 채소가 '주인공'인 요리 방법이 두드러지지 않는 느낌도 있는데요, 하지만 반대로 '그 누구도 밭채소를 주식으로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반대로 밭채소를 빼고 한식을 요리해보라고 하면 그 무엇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것이 정체성을 해석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남새의 품종, 특히 토종에 관한 전래나 연구, 발전 등이 더 폭넓고 깊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만, 제가 사업으로 돈 많이 벌면 이런 연구를 좀 지원해보고 싶네요.


저는 쌀밥을 엄청 사랑하는데, 저의 흰쌀밥에 대한 애정과 그에 대한 탐구 얘기는 오늘 꺼내지도 않았습니다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한식을 최고 사랑하는 부분은, 육류, 어류, 곡물과 야채를 항상 어우러지게 먹는 것을 잘 차려 먹었다고 치는 부분입니다. 물론 반찬을 중심으로 한식을 설명하고, 김치나 발효를 중심으로 한식을 설명하는 것도 모두 좋습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분들이 '남새'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먹는지 만큼이나 어떤 재료를 먹는지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결국 품종과 재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을 겁니다. 'Farm to table' 같은 말은 상당히 현대에 활성화된 표현인데, K 방식의 남새 중심 Farm to table의 함의가 한식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에 더 두드러지면 어떨까 생각해보는 부분이죠.



저희 모친이 종종 차려주시는 집밥 모습인데요, 알배추 너무 좋아합니다. 달달 아삭. 어디서 저런 알배추를 구할 수 있냐면, 바로 캐서 먹으려면 농사를 짓는게 확실하죠.




제가 브런치 블로그에는 무척 오랜만에 글을 썼는데요, 글은 원래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쓰고, 세상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으면 쉬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여차저차 좋은 인연들이 닿아서, 한식의 의미있는 세계 확산을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에서 역할도 하고 종종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만, 역시나 제 꿈 중의 하나는 전 세계 어딜 가든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꼭 그래야 하나 싶지만, 이미 세계의 많은 요리들은 세계 어딜 가든 '진짜'에 가까운 것을 먹을 수 있게 퍼져 있습니다. 한식도 앞으로 더욱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는 '문화 승리'는 인구가 많아져서도 아니고 해외 유입 관광객이 많아져서도 아니고, 전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이 한국의 정체성을 흡수할 때에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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