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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영 Apr 25. 2016

분실일기 : 런던에서

여행자의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온 지 벌써 251일 째..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정말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언제 잃어버렸나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려 생각하니 처음에는 막막했다. 하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놓쳐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을 가슴에 묻고 산다. (아 어쩌면 일반화의 오류일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아쉬움과 후회 속에 산다.) 그렇기 때문에 몇 월 며칠 몇 시 경이었나는 잊었더라도 내가 마음을 주었다가 잃어버린 '내 것'들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이런 분실의 경험이 나에게 주는 것은 아쉬움 뿐만이 아니다. 가끔씩은 자책감과 우울함에 빠지지만 내가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개를 잃어버리면서 느낀 것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다. 시인처럼 단어 하나 하나에 메타포를 담아 간결한 문장으로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험과 감정을 간직하고 공유하고자 이렇게 길고 지루한 글을 적어본다.





 2015년 8월 19일, 런던에 도착했다. 거의 두 달여의 여행을 계획했고, 그 후에 정착해서 살 것까지 고려하니 짐이 참 많았다. 사실상 첫 해외여행이나 다름 없는데 나는 혼자였고 무서웠고 조심스러웠다. 공항 의자에 앉을 때마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May I take a seat?을 꼭 묻곤 했다. 그러다보니 신경써야 할 것에 신경쓰지 못하고, 그러지 않아도 될 것들에 신경이 갔다. 그 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회색 캐리어를 한 손으로 붙들고 아이폰을 만지작 대던 모습, 중간에 올라 탄 금발의 두 소녀들이 바짝 올려붙인 속눈썹을 깜빡이며 런던 억양이 가득한 영어로 어떤 남자에 대해 떠들어대던 소리, 지하철에서 내려 처음 봤던 큰 슈퍼마트와 그 앞을 지나는 빨간 2층 버스를 보며 우와 정말 런던이구나 했던 그 느낌도 기억에 생생한데 어쩌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수중의 돈을 전부 잃어버렸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우선 나는 호스트와 연락을 해야 했는데, 공중전화를 찾지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또 묻고 하다가 어떤 신사분이 핸드폰을 빌려주셨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호스트는 지금은 자기들이 바쁘기 때문에 일단 마트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거나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릴없이 앉아서 기다리는데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시던 그 신사분이 다가와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 했다. 이러쿵 저러쿵 설명을 하니 화가 나신 신사분은 내가 캡쳐해 놓은 주소를 보고는 다행히 아는 곳이라며 데려다 주셨다. 내 짐이 무거워보이니 대신 들어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문을 열어 준 다른 게스트에게 여기 이 소녀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며 한소리 하셨는데, 든든한 기분까지 들었다. 너무 감사하다며 마이쮸를 한웅큼 건넸다. 안타깝지만 가난한 여행자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그 분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내가 제발 받아달라고 몇 번이나 붙잡으니 포도맛을 하나 집어 가셨다.



 그 뒤로 짐을 풀다가 돈과 카드가 전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마트에 다시 가 보고 지하철역에 다시 가 보았다. 결국 찾지 못했지만 벌써 저녁이 되었고, 피곤했고, 큰 가방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고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도 현실감각이 없었던 나는 몇 번이나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마트와 길거리, 지하철역을 몇번씩 훑어보고 분실물센터를 찾아 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냥 에이 모르겠다 하고 아무데로나 걸었는데 공원이 딸린 전쟁박물관이 나왔다. 벤치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데 글로 쓰다보니 내 상황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왜 하필 들어 온 곳도 전쟁박물관일까'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내심 누군가 레이디 왜 울고 있나요 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말 쓸 데 없는 상상이었다. (겨우 하루 머물렀던 런던이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친절한 사람들에 익숙해졌던 탓이라 변명해 본다.)


한 차례 울고 나니 현실감각이 그제서야 찾아왔다. 급하게 전화로 카드를 정지하고 대사관을 찾아갔다.(대사관을 찾아가는 건 호스텔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의 조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한국에서 일본어를 쓰냐 중국어를 쓰냐 묻긴 했지만 친절한 친구였다.) 대사관에 가서 이제야 뭔가 해결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 곳에 있는 분들은 꼭 한국말만 할 줄 아는 영국인 같았다.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잘 해주시고 친절하셨지만 왠지 모를 벽이 느껴졌다. 나에게 '민원님'이라고 부르며 내 이야기에 차분히 '위임장'에 대해 안내해주고는 내 뒤에 찾아와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공중전화가 어디있냐는 이에게 자연스레 위치를 알려주었다. 동전이 없는데 카드로 전화를 쓸 수 있냐고 난감한 표정을 짓자 거기까지는 모르겠다고 대화를 끝내셨다. 친절하고 업무에 충실하신 모습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전화 한 번 빌려주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과한 기대를 한 걸까.. 하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갖고 찾아올까... 생각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그렇게 안내받은 대로 위임장을 발급 받고 국제 우편을 부쳤다. 여기서 쓸 일이 없을 줄 알고 캐리어 속에 꽁꽁 숨겨뒀던 신한카드가 있어서 비싼 수수료를 내긴 했지만 다행히도 20파운드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대사관에 수수료를 내고 우편료를 지불했다. 우체국에서는 편지봉투가 어디있나, 빠른 우편은 얼마인가, 얼마나 걸리나, 어쩌구 저쩌구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계속 아주머니를 귀찮게 했다. 나의 부족한 영어가 부끄럽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민망했지만, 수중의 돈은 10파운드를 겨우 넘었고 최대한 빨리 일이 해결되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16파운드라는지 60파운드라는지 sixteen? sixty?하니까 한숨을 푹 쉰 아주머니가 직접 종이에 써 주기도 하셨다. 마구 휘갈겨 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이런 내가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일 처리가 우선이었다. 빠른 우편으로 보낼 수는 없었지만 남은 돈으로 우편을 잘 부치고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런던 관광을 즐겼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첫날 나를 도와 준 아저씨가 범인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잠시 의심을 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는 동안 가장 길게 내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인데다 짐까지 들어 주셨으니 혹시... 그렇지만 지도도 없이 무작정 길거리에 나서서는 주소를 물어 집을 찾아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무식한 여행자에게 그 분이 베푼 친절은 참 소중했다. 나의 부주의도 이유 중 하나인데다가 굳이 지난 일을 곱씹으며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그 아저씨는 나에게 런던에서 나를 도와준 고마운 분이다. 이제 와서 돈을 되찾을 수도 없고 아마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없을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스스로도 마음이 편하다.



돈이 한 푼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뮤지컬은 구경도 못하고, 뚜벅이로 길거리나 구경하고 박물관을 관람하고 힘들면 공원에서 누워있었다. 그렇게 5일을 보냈지만 여전히 런던이 참 좋고 그 기억들이 소중하다. 그리고 돈이 없었던 덕분에 오히려 더 여유롭게 구경을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돈 드는 데는 못 가니까 시간이 더 넉넉했고, 오늘 못 보면 내일 보고 내일 못 보면 다음 기회에 또 오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유를 즐겼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그냥 여기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구경하고, 괜히 못 하는 영어로 말도 붙여보고, 때로는 그 곳에 남아있는 역사를 느끼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건축물을 보는 것보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게다가 첫 여행지라 그런지, 내가 여행자로서 마음을 다진 곳이랄까. 여전히 인터넷 없이 여행을 다니지만 최소한 숙소 가는 길은 미리 알아본다던가, 지갑은 안주머니에 넣는다던가, 정말 기본적인 것들인데 역시 뼈 아픈 경험을 통해 익히는 게 가장 좋은가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도움을 받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는 뭐든 스스로 해야 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자신 있게 적기엔 너무 대책없이 다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처음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준다는 것을 세 번이나 거절하기도 했다. 내 짐이니 내가 스스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한 점이 많아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럴 때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그 때의 나에겐 어려웠다.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들 하는데, 내가 잘 배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큰 사건을 겪고 이제 다시는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말자 다짐했지만 그 뒤로도 참 별의 별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다녔다. 그래도 그 때문에 눈물을 뽑는 일은 없었다. 아이고, 또 잃어버렸구나, 하고 넘긴다는 내 얘기를 들은 친구는 무소유의 정신을 배웠다고 웃었다. 그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경지는 결코 아니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보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져야만 했던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고, 니체는 '나를 죽게하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고 했다. 남들이 보면 비웃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는 인생을 배우고 있다.



P.S. 비 오는 날씨로 유명한 런던에 있는 5일동안 운이 좋게도 아주 짧게 지나치는 소나기를 한 번 만난 게 다였다. 그렇게 우산 쓸 일이 잘 없다보니 꺼내 놓은 우산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해서 호스텔에 두고 왔다. 인생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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