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중요한 것은 파트너십과 마인드
바야흐로 '개발자의 전성기'라고 합니다
작년(2021년) 초부터 많은 기업들의 사례가 화제가 되었는데,
개발자들의 연봉이 출혈경쟁 속에 치솟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401001171
https://www.etoday.co.kr/news/view/2006797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31810163215343
왜일까요?
첫 번째, 시대에 따른 공급과 수요의 변화입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2000년대 IT버블 세대에서 많은 IT 인력들이 양산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보았던 대학교 선배들은 학점이 거지 같고 해 놓은 것이 없어도 3-4학년 반짝 공부하면 취업이 되는 시기였죠. 하다못해 제대로 된 개발은 배우지 못했어도, 학원에서 몇 달만 배우면 스킬을 익힐 수 있는 포토샵 / 일러스트 / html 기본 기능만 배우고도 디자이너나 코더로 (아무런 준비 없이 졸업했던 선배들도) 어렵지 않게 취업이 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습니다.
수요와 공급, 수요가 너무 많아 공급이 부족한 시기였다고 할까요. 또는 IT의 수준이 높지 않아 장벽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될까요.
하지만, 2010년대에는 경기가 어려워지고, 신입보다는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면서, 말 그대로 '취업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경기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고 고 스펙을 갖추고도 서류전형조차 뚫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제가 신입사원 이력서를 검토할 때도 내가 이 시기에 취업을 했다면 아마 계속 백수로 남았겠다 싶을 정도의 변화였습니다.
수요에 비해서는 공급이 너무 많았고, IT인력도 세분화되면서 그 수요는 특정 영역, 특정 직무에 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대가 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네카라쿠배당토'라고 불리는 기존-신생 회사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정점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가 최고의 직장처럼 생각하던 IT인력들은 상당수가 카카오, 배민 등으로 이탈하기 시작했고, 토스가 이직 시장을 선도하면서 또 한 번 정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유니콘을 꿈꾸며 대규모 투자를 받은 쿠팡, 당근 마켓, 등도 인력 쟁탈전에 가세했고, 그렇게 많은 기업들이 영입 경쟁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공급에 비해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처우의 회복입니다.
그간 IT업계의 전반적인 처우는 타 업에 비해 좋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초기 수요가 많았던 2000년대의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수요는 많았지만 막상 뽑아놓고 보면 할 줄 아는 게 없는, 적어도 3년 이상은 공들여서 키워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때는 회사에 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이야기가 많았죠. 자연스럽게 초봉이 높을 수가 없는 시기였고, 취업을 하는 게 더 중요한 학생들은 낮은 임금에도 직장을 들어가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현재는 대학의 교육이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산학협력 등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할 기회들도 주어지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빠르게 인재 육성이 가능한 편입니다.
그렇다면 워라벨은 어땠을까요. UX도 그렇지만 IT서비스의 전반적인 영역 대부분은 품질의 limit이 없습니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죠. 앞선의 기획/전략 단에서 조금 더 좋은 품질을 만들고자 했을 때,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건 모든 IT 담당자들의 몫입니다. 자연히 야근이 많아지고 워라벨이 좋을 수가 없었죠. 특히 SI 위주의 납기를 중시하는 회사들은 기한을 맞추기 위해서도 좋은 워라벨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워라벨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유행하면서 처우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당장 하루아침에 워라벨을 개선할 수 없었기에 조금 더 많은 돈을 제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52시간제를 통한 노동계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워라벨이 기업 선택의 중요 지표로 등장하면서 처우를 개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전문인력의 희소성입니다.
IT 영역은 비슷한 레벨이 모여서 시너지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서 리딩 하는 사람의 퍼포먼스에 따라 서비스의 품질이 큰 폭으로 결정됩니다. 웬만큼 경험도 있고, 레퍼런스도 가지고 있으면서, 회사의 성과를 가져와 줄 수 있는 인력은 매우 한정되어있습니다. 20:80의 비율로 설명하는 파레토 법칙을 빗대어 보면 20%의 핵심인력이 80%를 먹여 살리고, 이들이 일할수 있게 이끌고 있습니다
취업난 시기를 겪으면서 많은 IT 인력들이 육성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재능을 가지고도 타 업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으며, 가능성 있는 인재들이 좋은 회사의 육성 프로그램을 거쳐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전문인력은 희소한 상태이고, 이들에게 더 좋은 처우를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직 시즌이라고 불리는 ( 보통 기업의 상여금이 제공된 바로 다음 월 ) 시기에는 연쇄이동이 일어납니다. 가장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회사를 이동하면, 기업은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회사의 인력을 빼오게 되고, 또 그 인력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또 다른 인력이 이동하게 되죠. 이렇게 연쇄적인 움직임이 벌어지면서,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더 좋은 처우를 제시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과장급 정도 되어야 5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정도였고, 인상폭도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많았기 때문에 기업의 인사팀과 대적하면서 연봉 협상을 하는 건 일부 인원들에게만 있는 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연봉에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 반항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돈을 요구하는 문화가 변했습니다. 이제는 카운터 오퍼 ( 회사를 옮길 때 이전 회사에서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 )를 먼저 요구하는 시대이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회사를 떠난다는 말을 합니다.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이력서가 지저분해지더라도 더 좋은 회사를 찾아 몇 년이라도 좋은 처우를 받는 게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 과거에는 이력서에 5개 이상 회사가 찍히는 것만으로도 취업길이 막힐 수 있다고 만류하던 분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런 현상이 있을까요? 계속 이런 기조가 유지될까요.
한쪽에서는 계속 이럴 것이고, 개발자를 모시기 위해서는 더 좋은 처우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목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무리한 임금인상의 여파로 회사의 타격을 받기도 하고
https://www.sedaily.com/NewsView/268CQAIBV9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실적 악화나, 엔데 믹의 여파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61613230004889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205043736g
1년 전(대략 1년 반 정도 되는 거 같네요) 과는 다른 분위기들이 감지됩니다
기업은 냉정한 조직입니다. 대우를 했다면 그만한 결과를 요구하죠. 그동안 주목받는 업계와 부서 담당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회사 내 더 좋은 위치를 주거나 투자를 했을 때는 그만큼의 결과들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지 못하면, 빠르게 다시 변화하는 것이 조직입니다
그리고, 최근 현장에서는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집니다.
요즘 SI외주를 쓰는 PM(프로젝트 매니저) 들은 한결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공통된 의견은 '요즘 개발사와 일하기 너무 어렵다'입니다
일 예로 개발자들이 워라벨을 너무 생각하는 나머지 일반 현업부서 / 발주사 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 게이트 앞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더라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수정사항을 이야기하니 개발자가 '야근하면서 일하라는 거냐' 라거나
일정을 미뤄야지 개발자를 야근시킬 수 없다, 워라벨을 깨면 인력이 퇴사하니 양해해라
이런 이야기들이 실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발주사-수행사 간의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자주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물론 기업 내부에서도 실무 부서와 - 개발부서간의 트러블이 있습니다. ).
워라벨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와 논리적인 이유를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52시간 제라는 법적 근거도 있고, 정의되지 않는 일들을 더 해야 하는 건 각 담당자의 마인드가 결정할 일이지 법적인 또는 제도적인 구속력은 없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업이 성장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라는 틀로 많은 업무가 진행되는 현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수용되긴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십 년간 진행돼온 업계의 관행과 방식이 단 1년 남짓한 기간에 변화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던 대로 개발자들은 야근을 하고 워라벨이 나빠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업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첫째, 충분한 리소스를 확보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업무 리소스를 산정하는 관리체계가 부족한 회사들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리소스는 마지막 단에서 일을 하는 개발자들이 떠안는 경우가 많았죠.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프로젝트 관리 / 리소스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리소스를 확보하고 그 리소스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둘째, 상호 간의 충분한 협의가 필요합니다.
'문화가 바뀌었다'는 말로 하루아침에 상대방(현업 또는 발주사)을 인지 시킬 수는 없고, 이는 분쟁만을 유발합니다. 중간관리자들이 그동안의 업무방식과 변화하는 문화의 중간점에서 양쪽을 조율해야 합니다.
이것이 잘되는 회사일수록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회사들 일수록 일감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배려하는 마음과 책임감 있는 자세
현업부서(또는 발주사)의 입장에서는 변화하는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파트너십 기반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개발자들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업에 임해야 합니다.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상호 간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충분한'입니다. 기존에도 리소스를 확보하고 협의하며, 배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런 노력들이 '충분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인식을 변화시키고 공유하고 가꿔나가야 합니다.
IT분야에서 15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과거에 돈을 좇고 자리를 쫒던 사람들보다
확고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분들이 결국 더 좋은 성과를 만들고, 더 큰 일을 하게 되시는 것을 많이 지켜봐 왔습니다.
PM으로 Uxer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개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최근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한 사람들도 있고, 그대로 갈길을 가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물론, 최근에 같이 일한 파트너 중에는 워라벨을 내세우며 자로 잰 듯 일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본인의 일의 범위를 넘어 서비스의 성공과 성장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이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고, 더 큰일을 하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답은 없으니까요. 어떤 방향이 궁극적으로 맞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희망 사항이라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프로젝트를 해나가고, 같은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는 좋은 파트너 또는 개발자를 만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한 개발 외에도 아직도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영역들 ( 특히 퍼블리셔나 QA 같은 ) IT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워라벨을 지키면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와 인식의 변화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