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Jan 16. 2020

사진작가 천경우의 작품 그리고 그의 말들

<보이지 않는 말들>

<보이지 않는 말들>에서 사진작가 천경우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천경우 작가의 작품이 있는 공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 옆에는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 작가님도 함께 했다.  '천경우 작업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보이지 않는 말들>은 천경우 작가의 전시회에 대한 기록이자 나만의 도슨트였다. 


사진작가 천경우는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진과 퍼포먼스, 공공미술 작품을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말들>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작가 그리고 현지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의 시작과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업 노트'라는 말처럼 이 책은 2년 남짓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책 속에는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가득 담긴 25개의 포로젝트를 소개한다. 


작가는 에필로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사진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기록사진들 위주로 구성하였으며 혼자서 간직하고 있던 작품과 함께 쌓여간 상념들이 담겨 있다.


설치 미술 작품의 경우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 노트를 읽어서일까? 아니면 작품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애정을 읽어서 일까? 이 책을 읽지 않고 작품을 만났더라면 분명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날 법한 그의 퍼포먼스에 나도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그는 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인도, 파리, 폴란드 등의 대도시 또는 이름 모를 작은 도시에서 그 곳의 사람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함께 체온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으며 매일 지나던 그 길에 뜬금없이 설치된 트랙을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25개의 주제에 따라 늘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져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작가는 작품에 왜 그런 제목을 지었는지, 어떻게 그 작품을 떠올랐으며 구상하게 되었는지 세심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퍼포먼스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작품에 반응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작품에 대한 과정과 설명도 좋았지만 나는 특히 그 모든 과정을 멀찌감치 떨어져 관찰하는 사람처럼 들려주는 작가의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얼굴이다. 


하나를 선택해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25개의 작품들 중 암스테르담에서 전시된 '1000개의 이름들'이라는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퍼포먼스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분간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1분 동안 떠오르는 대로 벽면에 적는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 적어가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이름들. 암스테르담의 붉은 벽면에는 관객들이 적은 이름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그들은 이름을 적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25개의 사진과 그것을 둘러싼 작가의 글은 만족스러웠다. 퍼포먼스를 보고 난 후의 알쏭달쏭함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작품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말들>은 작품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작품 이전의 상황과 작가의 생각, 고민 그리고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하며 쌓아온 그의 노트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향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