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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an 15. 2020

향수

그가 죽은 지 일 년이 지났다.


다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왜 일 년이나 지난 지금도 ‘남편분이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그 아픔 그대로일까. 언제쯤 잊을 수 있을까. 언제쯤 이 고통에 익숙해 질 수 있을까.     


작업 중 사고로 두 명의 직원이 죽었다. 한 명은 그이고 나머지는 바로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의 남편이다. 여자는 왜 자꾸 나를 찾아오는 걸까. 미망인끼리 연대라도 만들고 싶은 걸까. 그녀는 자신과 같이 울기를 강요하고 같이 힘내기를 원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거부하기도 귀찮았다. 그렇게 여자는 일년동안 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울었다.     


- 지연씨, 오늘 날씨가 너무 좋죠. 이런 날엔 남편과 함께 갔던 카페에 가서 비엔나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말이죠.    

 

드디어 미친 건가. 여자는 늘 나와 눈이 마주칠 때부터 눈물을 글썽였다. 일년 동안 흘린 눈물의 기억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여자는 끊임없이 남편과의 행복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불편했다. 그녀는 미망인의 검은 옷을 벗어던진 듯했다. 사고 나기 직전, 우리 집에서 부부동반으로 저녁을 먹었던 그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영인씨는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지셨나봐요.    

 

나는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 어머, 정말 오랜만에 지연씨 목소리를 들어보네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면 나도 그냥 갈려고 했는데..호호호. 대답을 했으니 나도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비밀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엄청난 것을 알려주려는 듯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지연씨, 향수가 있어요. 내가 너무 울어대니까 안쓰럽게 생각한 지인이 알려줬는데 말이죠. 그 향수를 뿌리면...지연씨가 세상에 둘도 없는 이성적인 분이라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진짜예요.     


그녀는 죽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말도 안 되는 향수가 있다고 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향수라니.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적당히 이유를 둘러대고 카페를 나왔다.


그녀가 뿌렸다는 그 향수가 혹시 내게도 묻어왔을까 입은 옷을 버리고 수없이 샤워를 했다. 잊고 싶었다. 잊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막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웃어보고 싶어졌다. 나도 다시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녀가 말한 그 향수만 뿌리면, 나도 다시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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