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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현 Apr 11. 2020

모두의 파도, 모두의 마블

그 모든 발차기

"The Blue Marble" taken by NASA/Apollo 17 crew(either Harrison Schmitt or Ron Evans)


미국항공우주국에서 계획한 아폴로 계획의 11번째 유인 우주선이자, 현재까지 달에 착륙한 마지막 유인 우주선인 아폴로 17호는 1972년 12월 7일 지구를 떠났다. 지구에서 멀어지기 위해 무척 빠른 속도로 다섯 시간이 넘게 날아갔다. 지구로부터 45,000km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때, 승무원은 80mm 짤스 렌즈로 뒤로 보이는 지구를 담게 된다. 이 사진의 NASA 공식 명칭은 AS17-148-22727, 현재까지도 '푸른 구슬(The Blue Marble)'이라는 이름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사진으로 꼽히게 된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에 비하면 무지막지하게 작고, 우리가 아는 가장 빠른 방식으로 평생을 비행해도 갈 수 없는 태양계 끝에 비하면, 그런 태양계가 수도 없이 있을 우리 은하에 비하면, 또 그런 은하가 셀 수 없이 펼쳐진 데다가, 지금도 끝 없이 확장되고 있다는 우주에 비하면 정말 작을텐데, 그 속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작은가, 하고 한번쯤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바꿔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 이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되었을까. 내 경우엔 이런 생각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꼭 잡고 싶었던 것을 끝내 잡지 못했을 때, 내가 도달하지 못한 곳에서 위치한 사람과 나 사이의 차이가 무지막지하게 크게만 느껴져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만 같을 때 이런 거대한 우주를 생각하면 오히려 해볼만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가 이리저리 굴리고 튕기며 놀던 푸른 구슬과 놀랄만큼 꼭 닮았구나, 우리는 그런 곳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던 이 네이밍은 시간이 흘러 다른 곳에도 변주되어 사용된다. 플레이어가 굴린 주사위의 숫자만큼 보드판을 이동하며 부동산을 구입하고, 건물을 짓고, 자신의 부동산에 도착한 다른 플레이어에게 통행료나 임대료를 받으며 지역의 부동산을 독점하는 것이 목표인 보드게임 '모노폴리'는, 한국에 맡게 개량되면서 '부루마블'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부동산을 독점하는 게임의 이름이 지구를 뜻하는 '부루마블'이 된 속사정을 지금에 와서 유추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주사위를 굴려서 혹은 황금 열쇠를 통해서 세계의 여러 나라를 이동하므로 그것을 하나로 묶을 "예쁜" 단어를 고심하다가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쉽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일을 향기로 포장하는 것은 쓰레기장 위에 얕게 모래를 덮고 놀이터를 지어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여행하는 모든 곳에 입장료와 통행료와 임대료가 있는 게 당연시 되는 상식은 '모노폴리'안에서만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 범주가 함부로 우리가 사는 지구 전체로 확장되지 않아도 좋지 않았을까.



안전교육을 포함한, 서핑 이론과 실습을 알려주는 2시간 가량의 입문 서핑 강습이 끝난 후에도 8명 남짓 되었던 수강생 중 그 누구도 옷을 갈아 입거나 보드를 반납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보드와 함께 바다로 안전하게 나가는 방법, 바다 위에서 보드 위로 편안하게 올라가는 법, 그리고 아주 운 좋거나 운동 신경이 좋은 이들만 간신히 아주 짧은 순간 파도를 타는 경험을 했다. 운이 좋게 파도를 탔던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함께 강습을 받은 이들의 슈트는 이미 바다물로 푹 젖어 있었다. 


강사는 원하는 만큼 타다가 반납하라고 했다.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헐렁한 규칙이었기 때문에 갸웃했다. 이럴 때에는 보통 '원하는 만큼'과 '상식적인 수준 혹은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 사이의 적당한 선에서 반납하는 편이었다. '그러면 한 두시간 정도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강사는 오후 6시가 되면 물에서 나오라고 안내 방송이 나올테지만, 우리는 보드라는 안정장비를 가지고 있기에 그건 무시해도 된다면서 그래도 너무 어두워지면 위험해진다는 사실만 알려줬다.


경계 없이 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얼마나 놀아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했던 놀이는 자주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여기 들어가도 되나요?
들어가서 노려면 얼마나 내야 하나요?
몇시부터 몇시까지 놀아야 하나요?


하고 물어야 하는 곳에서만 놀다가 갑자기 '원한다면 얼마든지'라는 말을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매일 집 안에 갇혀서 밖의 자유를 갈망하던 고양이가 막상 잠깐 열린 현관문 밖으로 쏜살같이 탈출하여 문 밖에 자유를 맛보자 어찌할 바를 몰라, 쏜살같이 튀어나간 패기는 온데간데 없이 현관문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주인에게 온전히 잡혀 들어가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서핑을 마치고 해변에 미니 텐트를 쳐서 잠시 누웠다. 오랜 물놀이에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남자 셋이서 조그만 텐트에 누워서 잠시 낮잠을 잤다. 다 큰 어른이 되어버려서 셋 다 허리까지만 텐트에 넣고 나란히 누워 있는 걸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웃고 지나가기도 했던 것 같다. 까무룩 막 잠이 들려고 할때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와서 텐트를 치려면 자릿세를 내야 된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일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다로 들어가면 수상오토바이를 타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바다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한다고 할 수도 있겟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입장료가 얼마가 되든 간에 그때까지는 이 '부루마블'에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후 수업은 없는지 자신의 보드를 챙겨 바다로 나갔다. 오늘 파도가 좋다고 했다. 아직 4시도 되지 않았고, 여름 휴가철 해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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