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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Aug 19. 2019

안내 물고기

이집트 - 다합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당시 나는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이십대의 치기 어린 생각이었지만, 그 때만큼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나를 완벽한 고독 속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 관계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이집트의 다합.

마음 나눌 수 있는 여고 동창과 조용히 밤 바닷가를 걸었다.


해가 뜨고, 잠수에 능한 친구는 다이버들과 폐조선을 보러 사라졌다. 나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나 스노클링만하기로 했다. 물은 살갗마저 하얗게 보이게 할 만큼 투명하고 맑았으며, 굴절된 빛줄기에 발 밑 물고기들은 자유로운 크레파스처럼 선명했다.


물빛 고요.

침묵.

숨.

들이 쉬고, 내쉬기.


정신 팔려 한참을 참방거리다가, 문득, 내가 떠 있는 곳에서부터 저 밑바닥까지가 확 와 닿았다. 지면이 꺾이듯 갑자기 깊어져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경계. 굴곡점. 해안가에서 유유히 스노클링 하는 사람들로부터 꽤 많이 멀어져 있었다. 여기선 살려 달라 물장구 쳐도 아무도 못 볼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이 들었다.


침착하자, 한 순간 바로 당황했다.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수경에 찬 물을 빼내려고 -배운 데로- 숨을 들이켜서 공기를 내뿜어야 했는데, 반대로 바닷물을 들이켜 버렸다. 눈이 맵고 짜고. 콜록대고 허우적대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다에 부유물처럼 둥둥 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디까지 밀려 온 건지. 가늠하지 못 했다. 그냥 내 몸체가 떠 있구나. 그 느낌만 기억한다.


뒤집어진 상태로 멍청하니 바다 밑바닥을 보고 있는데, 눈앞으로 새끼 손가락만한 은빛 물고기 떼가 지나갔다. 한데 뭉쳤다가 퍼졌다가. 무리의 몸집을 키웠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하며.


그 물고기들을 따라 갔다. 천천히. 발끝을 움직였다. 지금은 길도, 방향도,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그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흐름을 쫓아 보기로. 적어도 내 눈엔 그 물고기 떼가 눈부시게 찬란하고 아름다웠으니.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홀로 남겨진 인간을 보호하듯 감싸는. 이상하리만큼 따스한 그 흐름을 타고. 발장구 쳤다.


어느덧 나는 처음 물속으로 들어갔던 갈라진 바위 틈 다이빙 포인트로 되돌아와 있었다. 물고기 떼는 그대로 나를 그 근처에 흘려버리고 저 멀리 사라졌다.

그 기묘한 경험은 아직도 몸의 감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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