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원망하고

언니

by 마음곳간

3. 언니가 제일 만만했다.


어린 내 눈에 그녀는 말도 느리고 셈도 느리고 생각도 느려 보였다.

나는 그런 언니와 많이 다퉜다.

언니는 나의 경쟁상대이자 친구였지만 종종 내가 짓밟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을 못 다닌 언니는, 겨우 1년 다녀 본 나를 부러워했다.

둘 다 배울 형편이 안되어 한 사람만 피아노 학원을 보내준다는 엄마의 말에,

내가 더 이해력이 빠르다며 조르던 내 모습을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고,

결국 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자 언니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나는 늘 언니와 경쟁했고, 이기려 애썼고, 매번 싸움에서 승리했다.

나로 인해 언니는 말수가 줄었고, 자꾸만 목소리가 작아졌고, 눈물만 늘어갔다.

그런 언니가 사춘기가 되자 성격이 모가 났다고 부모님께 싫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언니가 아빠에게 말대답이라도 하는 날에는 '어디 부모에게 말대답이냐며' 싹수없다는 소리를 들었고,

학교에서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돌아다닐 때는 어디 가서 사고 치지 않을까 부모님의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언니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는 날에는 하나같이 화장을 하고 왔고,

인사도 없이 서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나를 깔아보는 듯했고, 무시하는 듯했다.

어느 날, 언니가 친구들과 방에서 깔깔거리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방문 앞으로 갔다.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다.

방문에 귀를 대었다.


"야, 너 아까 진짜 손 빠르더라. 뭐 훔쳤어?"

"걸리는 줄 알았잖아, 진짜."

"그 주인아저씨 멍청하지 않았어? 너 가방에 넣는 것도 못 봤다니까?"

"근데 자주 가면 의심받을걸? 다음엔 딴 데 가자."


나는 놀라 한동안 멍해졌다.

그날 언니는 평소보다 조금 들뜬 얼굴이었고, 눈빛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언니와 친구들이 나간 후 언니방에는 낯선 인형이 놓여있었다.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끝내 나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게 언니를 대하는 나의 태도였던 것 같다.

외면, 침묵, 무관심....

나는 언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엇이 외로웠는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에 가 의상디자인을 공부할 때도

졸업 작품 패션쇼에 내가 만든 옷을 올렸을 때도

내가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그 사람과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도

언니는 끝끝내 나를 부러워하기만 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단단한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오만했고, 편견 덩어리였다.

언니는 느린 아이였지만,

나는 언니의 느림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조급하고, 이기적이고, 잔인한 동생이었다.


언니는 내가 먼저 결혼하면 안 된다며 결혼을 서둘렀다.

형부는 갖은 건 없지만 허세가 많았다.

착한 것 같았지만 내가 언니에게 그랬듯 나에게만큼은 철저히 무관심했다.

결혼 후 언니는 180도 변했다.

자주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고 쓰지 않았던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서는 더 변했다.

혼자서 씩씩하게 애들을 돌봤고 친청 부모님께 더 많이 신경을 썼다.

나는 변해가는 언니의 모습이 낯설고 불편했다.

사회생활에 바빴던 나는 그 불편함이 싫어서 더 모른척하고 무관심하기로 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정할 수 없었던 우리 사이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과 알 수 없는 경쟁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멈춰서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언니에게 사 준 자동차며 집이며

첫 손자, 손녀에게 주신 애정들이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는 것,

승리자는 내가 아닌 언니였다는 것,

어리석고 모자란 건 언니가 아닌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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