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루미악토버 Dec 06. 2021

관계

20191904


대화 끝 , 서로를 울게 만드는 관계.


맞지않는 걸까,버거운 걸까.

왜 아니라고 계속 말해야하는 걸까.


멀어야 괜찮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잘못된 것도 ,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라 더 슬픈.

단지 대화 속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그런 관계의 사람.


개개인이 모두 다르지만

그 사람과는 더 다른 부분이 많을 뿐이겠지.



-



예전에는 모든 인간관계를 곧이곧대로 소화해내려고 했다 . 나로써는 그게 당연한 거였고, 맞는 거였다.

그래야 내가 나로 이 세상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를 보낸 후 부터인가? 아니면 아파서 틀어박혀있을때 부터였나?


구태여 붙잡고 감당해내려고 참아낼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나를 챙기지않고서는 살아낼 수 없게 되자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져서 힘겹게 잡고 있던 것들을 모두 놓기 시작했다 .



김영하작가님 책의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

정세랑 작가님 책의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라는 구절처럼

여전히 사람이 좋지만 , 사람을 믿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좀 더 자주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먼저 상담선생님의 일을 가끔 도우며 공부하던 내면아이를 만나려고 노력했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날이 매일이던 그 때의 나를 , 용서할 수 없지만 감당해야하는 그 사람을 , 나에게 처해졌던 현실과 죄스러움들을 바라봤다.


그 때의 감정을 자기연민이라 말하기에는 스스로를 측은히 여기지않았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매일이 무서워서 살고싶었을 뿐이었다. 겪지않아도 될 일들로 인해 감당해내야되는 일들이 많을 수록 단지 슬펐다.

 

어찌저찌 버텨내며 자랐다.


스스로를 자주 괴롭히고 싫어하는 사람으로,

다정하지못하고 무심한 사람.

기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

또다시 잃고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선을 자주 긋는 사람으로 자랐다.


누군가를 내 삶으로 끌어들이면 그 사람이 힘든 순간이 나로 인해 늘어날 거라는 넘겨짚음으로 선을 긋고 문을 닫은 후 스스로를 끌어안아 보호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간관계는 더 이상 만들지않기위해 숨었고, 기존의

관계들은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 때 처음 인간관계가 정리가 되었다.


 기다려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에 작은 목표를 정했었다.

 '적어도 피해를 주지않고 , 슬퍼할 일을 만들지않도록 버티자. ' 라는 목표를 .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가 , 상대가, 내가

힘들어하던 많은 관계를 놓았다.


세상 혼자 사는 게 아니기에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건강하지못하면



모든 것이 결국 '나'로 귀결된다.

내 환경이든, 경험이든, 앞으로든.


내가 나로 세상에 존재하는 일은

온전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때로 우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