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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Sep 09. 2020

임신,  확률을 알 수 없는 변수들의 결과

계획 임신의 성공


[임신 계획하기]


    아이를 갖는 것은 내가 인생을 살며 항상 마음속에 갖고 있던 계획이었다. 작은 손에 아기 인형을 안고 젖병을 물리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결혼 적령기 때, 결혼할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결혼 1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추상적이었던 계획이 점점 구체적으로 완성되었을 뿐, "아이"는 내 인생에서 결코 생소한 단어는 아니었다. 요즘은 딩크족도 많기는 하나 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의 분위기와 가치관 때문에 단 한 번도 아이 없는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새 생명을 낳아 키우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덕분에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는 남자를 만났고, 결혼식 때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키우겠다."는 서약도 했다. 나와 신랑은 임신의 시점을 너무 멀리 미루지는 말자고 결혼할 때부터 다짐했었다. 자연스럽게 결혼 1주년이 지나자 우리는 계획 임신을 시도했다.


    임신이란 참 신기하다. 계획하지 않을 때는 할까 봐 무서웠고, 계획을 시작하니 못 할까 봐 무서웠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었던 임신 계획 전에는 "100%의 피임은 불가능하다"는 말에 매번 불안했었는데, 임신을 계획하니 계속 안 좋은 케이스들만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온갖 난임, 불임의 소식들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쉽게 두려워지고는 했다. 인간이란 바라는 것이 있으면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일단 나와 신랑은 본격적인 시도에 앞서 집 근처 산부인과에 들렸다. 그곳에서 임신 전 기초검사를 할 수 있었다. 피검사로 자궁경부암 여부와 이것저것 항채가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초음파로 자궁 상태 검사와 질 균 검사도 했던 것 같다. "아무 문제가 없으니 임신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임신의 확률은 아무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임신하기에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그나마 월경 주기는 규칙적인 편이었지만, 매달 정확한 난자의 생성 시기는 아무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또한 수족냉증이 있어서 자궁이 차다는 진단을 한의원에서 종종 고는 했다. 그밖에도 나의 몸 상태와 마음 상태, 신랑의 몸 상태와 마음 상태, 그 모든 상태들을 결정짓는 수많은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들, 그리고 하늘의 뜻과 우주의 기운(?)까지 그 모든 것들의 조합으로 임신이 결정된다. 이런 수많은 변수들의 존재는 나의 두려움을 더 증폭시킬 뿐이었다. 그나마 나에게 숫자적으로 안심을 주었던 정보는 인터넷에서 발견했던 "건강한 남녀라면 정상적인 부부관계 시에 6개월에서 1년 내에 임신이 가능하다."라는 문장과, 저명한 의학 학술지실렸다는 "건강한 젊은 부부가 가임기에 관계를 할 경우 임신 확률은 1회당 최대 35%이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정보 여러 다른 변수들을 배재한 확률 기반 추측일 뿐이다.

    

    알 수 없는 임신의 확률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배란 테스트기(a.k.a. 배테기) 사용이다. 보통 임신을 계획하는 많은 이들이 배테기의 도움을 받는다. 배테기는 여자 몸에 난자가 생성되는 시기를 예측해서 임신 확률이 가장 높은 날짜를 알려준다.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임신 계획 시 필수 준비물이다. 나는 최대한 임신의 확률을 높이고자 15개의 배테기가 들어있는 한 상자를 만 오천 원 정도에 구입했다. 배테기 사용법과 해석법은 어렵지 않다. 매일 같은 시간에 소변을 통해 테스트하면 되고, 테스트기의 선이 가장 진해졌다가 다시 흐려지는 때를 배란기라고 해석하면 된다. 이때에 맞춰 준비하면 임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나는 불확실함과 걱정 속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며 그렇게 계획 임신 첫 째 달을 보냈다.




[임신의 성공]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바로 몸의 변화를 느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날인데 어마어마한 피로가 나를 찾아왔다. 자도 자도 졸음이 몰려왔고, 마치 쌀 가마니를 매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오빠,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 평소랑 달라."

라고 신랑에게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설마..'라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남녀도 6개월에서 1년이라고 했는데, 설마 이렇게 바로 임신이 될까. 알 수 없는 확률 속에서 나는 기대감과 설렘을 설레발이라 치부하며 억지로 안으로 삼켰다. 아마 신랑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커뮤니티에서는 이걸 '증상 놀이'라고 표현하더라. 평소와 다른 증상이 계속되지만 알고 보면 임신이 아닌 것. 증상이 나를 놀리는 것 같아서 증상 놀이라고 하나, 정확한 어원은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래도 몸이 정말 이상했다. 그냥 요즘 회사 일이 많아서 피곤하겠거니, 생각하려고 해도 그 피곤함의 느낌도 평소와는 확실히 미묘하게 달랐다. 뭐랄까, 그냥 얕은 피곤함이 아니라 단전에서부터 느껴지는 꽉 찬 피곤함이랄까. 뭔가 내 몸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 매우 이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임신 테스트기(a.k.a. 임테기)를 꺼내 들었다.


    임테기는 배태기와 사용법이 거의 비슷하다. 다만 임테기는 생리 예정일 이후에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생리 예정일 3일 전에 첫 테스트를 해보았다. 보통 한 줄은 비임신, 두 줄은 임신이란 뜻이다. 내 첫 임테기 결과는.. 애매했다.

매직아이.

나중에 찾아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을 하더라. 뚜렷한 핑크 색 한 줄 옆에,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내가 뭘 본 걸까? 내 눈이 이상한 걸까? 테스트기가 이상한 걸까?' 다양한 생각이 들게 하는 아주 흐릿한 또 하나의 한 줄이 보였다.

"오빠, 진짜인가 봐. 한 줄이 더 보여."

라고 신랑에게 말하며 이번에는 '혹시..'라는 생각을 했다. 신랑의 눈에도 매직아이처럼 또 하나의 한 줄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때부터 나는 일주일 간 매일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두 번째 줄은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점점 더 진해졌다. 설마가 혹시가 되고, 혹시가 진짜가 되는 설레는 순간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한 번의 시도로 한 방에 임신에 성공했다. 우리는 다소 놀라고 당황했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정확한 확률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의 조합으로, 우리에게는 지금이 임신의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고, 간절히 바라지만 쉽게 임신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하는 타이밍에 계획하자마자 아이를 갖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평생 계획 하나를 이루었다. 뱃속의 아기를 끝까지 건강하게 잘 지켜내는 일이 아직 남아있지만, 일단 그 복잡한 확률의 세계에서 성공했다. 임신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막상 얼떨떨해서 큰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임신에 대한 감동은 임신 발견 당일보다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차오른다.

계획 임신의 성공, Unsplash


[신비하고 아름다운 40주의 임신 이야기]


    임신을 하고 보니, 내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임신 23주인 지금도 내 배 속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그 생명으로 인해 생기는 나의 몸의 변화도 너무나 신비롭다. 세상을 보는 시선도 바뀌었고, 매일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급격한 변화의 문턱에서 나는 이 시간을 글로 남기고 싶어 졌다. 임신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흔하게 겪을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그 이야기를 나만의 시선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가족에게는 이 글이 좋은 기운이 되길 바라고, 임신 중이거나 예전에 임신 경험이 있는 가족에게는 이 글이 공감과 힐링이 되길 바란다. 또한 임신과 거리과 먼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즐거움이 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현재도 진행 중인, 신비하고 아름다운 40주의 임신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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