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글감으로 만들기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것. 남들은 몰랐으면 하는 것. 알더라도 모른 척해줬으면 하는 것. 혹여나 누군가가 그것을 들춰낸다면 한없이 움츠러들거나, 끝없이 열불이 나는 것. 여름밤 귓가의 모기처럼 무시하려 할수록 더 욱 더 신경 쓰이는 것. 이 몹쓸 것을 우린 콤플렉스라 부릅니다.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사라질, 그런 꿈같은 것이었다면, 애초에 콤플렉스라 부르지도 않습니다. 어떤 이는 숨기고 싶은 부분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드러내라고 말합니다. 다른 이에게 떳떳하게 내놓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참 말은 쉽지만, 그렇게 드러낼 용기가 있었다면 애초에 콤플렉스 따위를 갖고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콤플렉스는 어항을 청소해 준다는 까만 물고기처럼 강력한 빨판으로 마음속 어딘가에 딱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끝도 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시시때때로 우린 콤플렉스 공격을 받고, 시시콜콜하게 우리가 가진 콤플렉스에 대해 생각합니다. 왜 나는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지, 그 얘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예민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합니다. 생각은 점점 깊어지고 스트레스도 점점 커집니다. 내가 생각하는 결점들이 질끈 눈을 감았다 뜨면 전부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나의 결점이 꼭 나쁜 영향만 줄까요?
팟캐스트 <듣똑라(들으면 똑똑해지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좋은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게스트는 은유 작가님(<쓰기의 말들>의 저자)이셨는데, 그분이 한 말이 있습니다.
“가장 피하고 싶은 자기 문제가 글쓰기의 광맥입니다.” - 은유 작가
자산이 동네방네 떠들고 자랑하고 싶은 게 아닌, 가장 피하고 싶은 자기 문제가 글쓰기의 광맥이라니... 어쩌면 아이러니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저는 작가님의 저 말에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스스로가 글을 쓰고 싶어질 때는 즐거울 때보단, 항상 힘들고 우울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순간엔 생각이 줄어들지만,
힘든 순간엔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행복할 때는 딱히 딴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그 즐거운 순간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 순간을 만끽하기도 바쁩니다.
반면, 힘들 때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쉽게 끊기지도 않습니다. 잠자리까지 따라 들어와 잠 못 이루게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은유 작가님께서도 피하고 싶은 자기 문제가 글쓰기의 노다지라고 말한 게 아닐까요? 무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고민을 많이 할수록 글을 쓸 거리도 많아지니까요.
그렇기에 콤플렉스는 무한한 글감이 됩니다.
평생을 품고 왔고, 고민해 온 것이기에, 에피소드도 많고, 자신의 생각도 가득합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 44 사이즈 티셔츠도 오버핏으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말랐던 체형이 상당한 콤플렉스였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나잇살이 꽤...) 너무 말라 보여서 당시 유행하던 리바이스 스키니진을 동생한테 넘겼던 기억, 키에 맞춰서 옷을 사면 항상 품이 너무 커서 스트레스받던 기억 등 아직도 생생하게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떠오릅니다. 어디 한번 에세이로 써보라고 하면 막힘없이 써 내려갈 자신이 있습니다.
이처럼 내가 숨기고 싶던 결점이나 아픔이 무한한 글감의 원천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콤플렉스를 노다지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 가치를 모르면 별 볼 일 없지만, 숨겨진 가치를 알고 잘 이용하면 어마어마한 보물을 갖게 된다고. 내가 가진 결점이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보단, 분명 나만의 글을 쓰는데 무한한 글감이 되고, 엄청난 원동력이 될 거라고 믿어봅시다. 지금까지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내 글쓰기에 도움을 준다면, 앞으로 콤플렉스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누구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글쓰기의 광맥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걸리적거리는 돌산일 뿐이지만,
캐내는 순간 엄청난 보물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