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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생이 Sep 23. 2019

저기, 혹시 문구 좋아하시나요?

어느 문구애호가의 기록




문구, 저는 좋아합니다.

이렇게 문구에 대한 글을 쓸 정도로 참 좋아합니다. 연필, 샤프, 볼펜, 노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문구점에 진열된 모든 아이들을 애정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문구점이 보이면 발길을 돌립니다. 일단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올 땐 항상 손에 필기구 한두 개씩은 들고 나옵니다. 그것이 당장 필요한 것인지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저 갖고 싶다는 물욕, 이건 사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합니다. 그렇게 책상 위 연필꽂이의 빈 공간이 차곡차곡 채워집니다.


문뜩 궁금해졌습니다. 보통 쇼핑을 하러 갈 때는 목욕하러 가는 강아지처럼 질색팔색을 하면서, 왜 문구점만 가면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눈이 돌아가는 걸까요? 도대체 문구에 어떤 마성의 매력이 있길래 이렇게 빠진 걸까요? 곰곰이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백화점 명품관의 쇼윈도를 보는 기분이다.



문구는 단순합니다.

단축키를 외울 필요도, 지식iN을 뒤적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노트는 펼치면 되고, 펜은 끄적이면 되고, 지우개는 문지르기만 하면 됩니다. 블록체인, AI, 빅데이터 등 복잡하고 어려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문구의 심플함은 심신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문구는 따뜻합니다.

디지털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날로그 감성을 더 찾게 됩니다. 그곳엔 키보드를 두드릴 땐 느끼지 못했던 종이의 감촉, 펜 끝의 마찰, 페이지를 넘길 때의 사그락거림이 있습니다. 오감을 어루만지는 이 따스한 아날로그 감성은 디지털 입력장치에선 쉽게 느낄 수 없는 온도입니다.


또한, 컴퓨터는 화면 위로 글자를 하나씩 툭툭 던집니다. 필기구는 다릅니다. 한 획에서 다음 획으로 부드럽게 이어갑니다. 그런 이어짐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좋습니다.



문구는 든든한 무기가 됩니다.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면 종종 생각의 변비에 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때 문구는 효과 빠른 변비약이 되기도 합니다. 직사각형 모니터 속 정해진 페이지에서 벗어나 펜을 들고 여기저기 마음껏 휘갈길 때 좀 더 수월하게 생각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펜을 들면 괜히 더 좋은 영감이 떠오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책상 위 굴러다니는 아무 펜이나 들고 아이디어를 짤 때보다 최고로 애정하는 펜을 썼을 때 더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순전히 뇌피셜)



문구와는 권태기가 없습니다.

펜 하나도 생김새가 전부 다릅니다. 같은 종류의 펜이라도 품고 있는 색깔이 다 다릅니다. 기존에 쓰던 필기구에 슬슬 권태로움을 느낀다면 비교적 저렴하게 다른 필기구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모나미 볼펜, 내일은 라미 만년필, 모레는 톰보우 4B연필로, 마치 만수르가 외제차를 골라 타듯 마음껏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종이는 보기만 해도 그 촉감이 상상된다.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기

이처럼 하늘 아래 똑같은 필기구는 없고, 문구를 사랑할 이유도 끝이 없기에, 앞으로도 더 많은 문구들을 사들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쓰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 필기구가 늘어갈수록 기존에 있던 아이들은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꼭 문구만 그럴까요? 내가 자주 쓰던 물건, 사랑했던 장소도 새롭게 좋아하게 된 것들에 의해 점점 소홀해집니다. 그렇게 잊히도록 두기엔 아쉬움이 남기에, 이곳에 차곡차곡 담아두려 합니다. 내가 어느 포인트에 무장해제가 되는지, 어떤 결의 취향을 선호하는지 하나하나 적어두려 합니다.


그렇게 나를 더 잘 알게 되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주변을 채우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곳에 나를 데려다 주기가 더 쉬워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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