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바다소녀
시월 1
어지럽게 마당을 지나간 빨랫줄 위로
참새 떼가 날아들더니 부르르 몸을 털곤
목을 어깨사이로 쏙 집어넣는다.
방향 없는 가랑비는
허공에 오래 머물고
빨랫줄은 빨래대신 물방울을 넌다.
비가 되어 떨어지고 싶은 날이
작은 날개 틈이라도 파고들고 싶은 날이
시월에는 가랑비처럼 내렸다.
시월 2
계절은 봄인데
인생엔 봄이 오지 않는다며
집을 나선 엄마
몇 개의 계절을 먹고는
산 짐승의 울음처럼
안부를 전해 왔다.
시월 3
아버지 배꼽에 매달린 태몽이
길에 쓰러진 구렁이라며
할머니는 평생을 불안해했다.
펄떡이는 날들을 두고
아버지가 길에 쓰러지던 날
비 오는 시월이었다.
시월 4
열다섯
교복대신 어머니가 남긴 옷을 입고
부서지는 하루의 문을 열면
손잡이 밖에 잡을 수 없는 손에
닭의 알집처럼 무수한 날들이
희망도 없이 잉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