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x Arabesques (Harpe ver.) - Debussy
https://www.youtube.com/watch?v=hWTe3C_RoDo
*오늘의 글과 어울리는 음악은 <Debussy - Deux Arabesques (Harpe) - Héloïse de Jenlis>입니다.
(컴퓨터/아이패드/Youtube premium 환경에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3월로 미뤘던 약속을 다시 4월로 미루는 날들이 이어진다. 코로나19는 오늘도 조금씩 일상을 좀먹고, 동선을 좁힌다. 무기력증의 장기화, 원래의 일상은 어땠더라. 정말로 힘들 사람들을 생각하면 덤덤해야 한다. 그런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입술을 바르지 않는 일상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슬픈 감정이 드문 일이라 특별했는데, 이제는 기쁜 감정이 특별해진 기분이다. 마음 놓고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여름이 찾아와 버리면 어쩌지. 프리랜서 생활에 처음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규칙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쉽게 우울해질 수 있구나. 아침의 요가와 저녁의 헬스가 그리웠다.
춘분이 찾아오고 꽃이 제법 피기 시작했다. 낮에 엄마랑 빵을 사러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화단에 피어있는 매화나무를 한참이나 봤다. 재잘거리며 동영상도 남겼다. 눈부셨다. 밤에는 그 나무를 확인하려고 다시 나왔다. 벤치에 앉아서 밤하늘도 봤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어지러웠든 간에 계절은 부지런히 잎을 피우고 싹을 틔우는구나. 기분이 조금 뭉그러졌다.
화이트데이, 플릿커피로 가는 길목에서 라넌큘러스 한단을 만 원에 판다는 꽃집을 지나쳤다. 사볼까? 욕구가 사라지지 않아서 결국 꽃을 안았다. 워터 포켓이 마르기 전에 집으로 왔다. 갑작스럽게 화병을 방 안으로 들였다.
이틀에 한 번씩 가지를 사선으로 잘라내고, 깨끗한 물을 담아 주세요. 일상에 움직임이 생겼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매일 꽃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창을 열어 방을 환기하는 아침이 기다려졌다. 꽃을 돌보는 일이 매일의 루틴이 됐다. 테이블에 꽃가지들을 펼치고 무른 가지를 잘라냈다. 생생한 가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찬 물을 담았다. 만개한 꽃은 져버리기 전에 여러 방법으로 말렸다. 책 사이에 끼워두거나, 그늘에 매달거나. 그렇게 2주가 지났다. 흰 라넌큘러스는 모두 드라이플라워가 됐고. 봉우리였던 재패니즈 라넌큘러스의 노란 꽃망울들도 제법 피었다.
짧게 두고 보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꽃보다는 오래 사는 화분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병을 곁에 두고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지켜보는 것에 취미를 붙이게 됐다. 시간을 쏟은 만큼 지는 모습까지 반갑고 애틋하다. 열심히 피었다 지는 꽃의 시간처럼 모든 것들은 언젠가 멈추지 않을까. 잠깐 정체된 날들을 보내는 나와는 상관없이 부지런히 지나가는 계절을 아쉬워하기보다,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 화병에는 생화보다 말린 꽃들이 더 많다. 그 점이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