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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입가경 Jun 01. 2020

양화대교 위를 걷는 사람들

9와 숫자들 - 지중해

https://www.youtube.com/watch?v=cXsK5-e8OG0&list=OLAK5uy_lxynufQv0YGeEOAkNgMV1kjDhpIOboMbg&index=6

오늘의 글과 어울리는 노래는 <9와 숫자들-지중해> 입니다.


붐비지 않는 평일 낮 시간대, 합정 알라딘에서 계획 없는 책 사기를 좋아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D와 그 소소한 행복을 얘기하다가 대화가 이렇게 흘렀다.


"지금 가볼까?"

"서점까지 걸어갈래?"

"오 좋지. 얼마나 걸리나?"

 

우리가 있던 곳에서 서점까지 거리는 3.7km, 예상시간은 1시간 9분이었는데 길이 어렵지 않아서 잘하면 40분대 안쪽으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편한 신발을 신었다. 무려 양화대교도 지난다. 그럼 걷자. 평소에 버스로만 지나치던 길을 쓱쓱 걷기 시작했다. 그 길에 처음 발견한 좋은 밥집과 카페는 사진을 찍어 기억했다. 초여름의 해가 내리쬐었지만 센 바람이 불어 더위를 틈틈이 가져갔다. 구름 없이 푸른 하늘이었다. 저 멀리 산 봉우리가 뚜렷이 보였다. 산을 보고 걸으면서는 북한산인가? 맞다, 인왕산일 걸. 저 방향에 내가 나온 중학교가 있는데 교가에 '인왕산 정기 어린~'이라는 가사가 들어갔거든. 이런 얘기를 나눴다.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바뀌는 건널목을 몇 개 지나 양화대교 위를 걷기 시작했다. 당산-합정 구간의 2호선 지하철이 지나는 당산철교가 오른편에 보였다.


"저기가 그 당산 합정 구간이지?"


D는 내가 저 구간을 종종 찍어 인스타(@negewaneko) 스토리에 올리는 걸 알아채 주었다. 나만의 풍경도 아닌데 고마워서 기분이 들떴다. 맞아 열차까지 지나가는 거 보면 진짜 예쁘다 하는데 긴 열차가 마침 다리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와! 우리는 감탄했다. 여행하는 것 같다. 그치. 대화의 토픽은 자연스럽게 비슷한 주제로 이어졌다. 성향이 맞지 않으면 여행 내내 괴롭지. 맞아. 날씨에 기분이 좌우되지 않는 게 좋아. 이런저런 경험담과 생각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합정역 교차로였다. 체감상 30분 이내인 것 같은데? 둘 다 목만 조금 말랐을 뿐 몸이 가뿐했다. 얘기하면서 걸어서 그런가?


알라딘에서는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골라 선물했다. 나는 이슬아 수필집을, 친구는 김민식 PD의 책들을 사 계산대 앞에서 교환했다. 내가 좋았던 것이 이 친구에게도 분명 좋을 것이라는 작은 직감이 들었다. 양화대교 위도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건넌다. 그 닮은 점 하나에 하루 종일 배가 불렀다. 언제든 탁 트인 풍경의 좋음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어제는 스무 보를 걸은 내가 오늘은 12,825걸음을 걸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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