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빈 Dec 29. 2023

다시 출발점

2023 연말정산


올해의 총평:

이룬 것이 많지만 사실 이루었다기보다 모든 것이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드는 해. 나이 서른여섯에 이제 겨우 시작이라니 조금 허탈하긴 하지만. 이때까지 부지런히 달리기 연습을 하다 처음으로 마라톤 출발선에 선 느낌이랄까. 인생은 마라톤이라더니 진짜로 그런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이런 걸 느꼈다. 하루하루 살다보면 어떤 건 저절로 되기도 한다는 것. 너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어떤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이루기도, 또 간절하던 것을 잃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그저 시간의 힘을 믿고 맡겨보는 것도, 나 자신을 믿고 맡겨보는 것도, 오늘부터 습관을 바꿔보는 것도 사실 다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내년에는 조급해하기보다 시간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올해의 곡:

Edward Sharpe&The Magnetic zeros <Free Stuff>

Little Joy <Don't Watch Me Dancing>

Wallners <In my Mind>


올해의 여행: 보홀과 몽골

올해의 장소: 도쿄의 더그바

올해의 술: 쿨일라

올해의 음식: 청어알젓과 어복쟁반

올해의 사건: 대학원 박사 입학

올해의 책: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백욱인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조건>, 미셸 드 몽테뉴 <에세>

올해의 영화: 크리스티안 페촐트 <어파이어>

올해의 음악영화: 타치카와 유즈루 <블루자이언트>

올해의 저장글:

대화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한다. 서로에게 애정이 있는 대화는 행복하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며 서로의 삶을 궁금해한다. 그 중간에 불행이 끼어있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그 삶을 통틀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며 그렇게 나누는 대화에서 느끼는 감각들을 극대화하고 싶어한다. 개개의 행불행을 가진 우리는 각자의 행불행을 편견없이 오롯이 듣고자 한다.

우리의 대화가 어떤 궤도에 올랐을 때, 우리의 마음이 활짝 열려있을 때, 서로의 이야기들이 뒤섞여 마리아쥬를 만들어 낼 때-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기는 사실 쉽지 않아서 나는 매번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기댄다. 그런 순간들이 나를 살게하는 감각을 주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이 없는 피폐한 날들이 이어지면 나는 파삭 불행해지는 걸 느낀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과 대화의 행복을 더 늘려가는 외향형의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에너지를 아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걸 발견한다.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할 이야기들을 도토리처럼 숨겨두고 하나씩 꺼내놓는 다람쥐 같은 내향형 인간이 되어있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아껴두고 천천히 꺼내먹고 싶어 그렇게 된 것 같기도.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가난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