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살기를 결심하는 과정1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이거였다.
'언제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왜 그 남자야? 뭐가 그리 좋아?'
나는 원래 생각을 어느 정도 이상하고 그 내용이 정리되어야 실행을 옮겼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멋모를 때 결혼해야 결혼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배워가는 거지- 해도 생각 없이 뛰어드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나의 대응과 그에 대한 철학이 서야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결혼은 별 관심이 없었다. 20살 때는 다들 25쯤 연애해서 27쯤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30쯤 아이를 낳고 내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 당연하겠지 했는데 막상 20대 중반에 들어와 보니 결혼은 취업만큼이나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기는커녕 연애에 대한 회의감만 늘어갔다. 가족과 가족이 얽혀야 하는 복잡한 한국 결혼 제도가 알수록 힘들었다. 그래서 누군가 결혼에 대해 물어보면 '뭐, 좋은 사람 있으면 하겠지? 아니면 말고'라는 태평한 소리를 해댔다. 이 말인즉,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이다.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의 결혼이라기 보다 그의 친구들의 결혼.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두 명이 올해 결혼했다. 그는 축가를 부르고 축의금을 두둑이 내기로 했고, 그들의 결혼 준비 소식을 간간이 들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결혼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왔다. 나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내 삶에 결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실제적 결혼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결혼을 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결혼할 상대와 마음 그리고 돈. 그와 살려면 우선 집이 필요한데 나는 집을 구하고 빚을 지고 10년 넘게 그것을 갚아가야 할 거란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다. 10년 넘게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나는 지금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고 내가 쓸 만큼만 벌어 쉽게 산다. 그리고 언젠간 공부도 더 하려 했었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 모아오던 돈을 집을 구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효도와 관련하여, 지금도 가족행사에 매우 자유롭게 참여하는 편인데 결혼을 하면 양가 행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설날, 추석은 길게 여행할 수 있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인데 그 시간이 묶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실질적으로 시간과 행사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 안 했지만 보고 들었던 것이 있어 괜히 나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어버이날에도 양가 방문을 해야 하나. 우리 집은 음력 설마다 여행을 가는데 난 빠져야 하는 건가? 추석엔 우리 집이랑 그의 집을 둘 다 갈 수 있으려나. 온갖 뭉게구름들이 한동안 내 뇌를 둘러쌓다.
그럼에도 나는 그랑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함께 이야기하고 요리하고 운동하는 평소의 모습들이 나는 좋았다. 일상의 행복과 비일상의 불행을 저울에 올린다면 어떤 것이 더 무거울까. 결혼을 위한 그가 아닌 그를 위한 결혼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와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그와 나의 취향이 담긴 집을 꾸미고, 그와 나의 이야기가 담긴 추억들은 내 인생 목차에 어떻게 남을까. 고민을 할수록 결혼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문득 그는 왜 결혼이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무슨 확신으로 나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거지. 그는 불안감이 없나. 미래를 보는 예지력이 있나.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인가. 거꾸로 나에 대한 의심도 들었다. 이렇게 고민 많고 예민한 여자랑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내가 예뻐 보인다지만 과연 내가 계속 예뻐 보일까. 그렇다면 내가 예뻐 보일 때 내가 그를 낚아 결혼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 건가.
결론은 아직 안 났다. 나는 고민 중이고 이제 내 고민에 엄마의 의견이 붙을 것이다. 아빠의 의견도 붙고 그의 의견, 그의 부모님의 의견까지 붙어 우린 결혼이란 실체를 만나게 될지도,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난 그와 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보려 한다. 나의 뇌야. 네가 도와줘야 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