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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Apr 03. 2020

수도권 신혼부부에게 부동산이란

30대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요소들

긴 고민 끝에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을 결정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서로 모은 돈 공개하기. 그리고 뒤이어 결정해야 할 것은 '어디에 살 것인가'였다. 그때의 나는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우리 같은 신혼부부는 작은 오피스텔이나 투룸 빌라에서 전세로 시작해야지. 신혼부부는 어렵게 시작하는 것이 맞는 거잖아?


고민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단순히 우리가 신혼부부라는 이유로 작고 어렵게 시작해야 만한다고 생각했다. 둘이 차근차근 저축을 하다가, 아기를 낳고 그러면서 집을 마련하고 대출을 갚아가는 것이 결혼 과정에 있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언젠간 이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꽤나 스트레스였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결혼을 고민했던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대출금을 갚을 자신이 없어'였으니까 말이다.


집값이 참으로 비싼 수도권에서 신혼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생각보다 많다. 내가 공부할 생각을 안 했을 뿐.


물론 가장 쉬운 옵션은 0)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에서 살거나 부모님과 산다. 이거나 0-1) 부모님이 준비해주신 돈으로 맘에 드는 집을 고른다 정도일 테지. 집값이 싼 지방으로 내려 같은 것도 옵션이 될 것 같다. 어떤 선택이든 나에게 맞는 선택이면 된다. 우린 부모님의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직장 때문에 지방에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찾아낸 선택권은 다음과 같다.


1) 모은 돈으로 예산에 맞게 전세를 구한다(필요하면 대출도 활용한다.) 둘의 직장(인천과 강남)과 가까운 서울 내 전셋집을 구한다. 전셋집에 돈을 묻어놓음으로써 헛돈을 쓰지 않고 2년간, 연장이 가능하다면 4년간 돈을 최대한 모아 매매할 집을 알아보고 넘어간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돈을 지인짜 열심히 모은다'이다.


1-1) 전셋집에 살면서 청약을 공부하여 쓴다. 문제는 청약을 공부하다 보면 서울  청약 당첨이 거의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신혼부부 특공 소득자격이 안된다면 서울 청약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래서 청약에 생각이 있다면 분양일정이 많이 남아있고 무주택자 추첨이 있는 경기도 해당 지역에 전세를 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청약은 가점제와 추첨제를 구분하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면서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청약으로 내 집 마련을 노린다면 미리 공부하고 전입할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


2) 회사에서 조금 멀지만 경기도의 저렴한 집을 매수한다. 비 조정지역의 첫 집은 70%, 조정지역은 50%까지 대출이 나오니 지역 공부를 하고 매수하여 시세 상승과 주거안정성을 노린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지역 공부를 지인짜 열심히 한다'이다. 호갱 노노, 부동산지인, 임장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부동산 관련 책을 20권 이상 읽는 것을 추천한다.


3) 모은 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월세를 얻거나, 대출을 최대로 활용하여 전세를 구한 뒤 남은 돈으로 투자 공부를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최소 1년은 공부하여 종잣돈 굴리기를 한다. 여기서의 포인트도 '1년 이상 지인짜 열심히 공부한다'이다.


쓰고 보니, 겪어보니 결국 방향은 같다. 할 수 있는 한 돈을 최대한 모으고, 적게 쓰면서도 행복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내가 가진 자산을 차근차근 굴려가는 방법을 공부해야 했다. 회사를 다니고 내 일을 하면서 동시에 통장의 돈들이 나에게 돈을 벌어다 줄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큰 그림을 그려햐하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아주 많이 있을 필요는 없지만 꼭 필요한 것이다. 힘들게 모은 돈을 공부하지 않은 투자처에 투자했다가 돈을 잃는 것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없다. 내가 열심히 사는데 남들만큼 살지 못한다면 그런 박탈감 또한 없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값이 크게 오를 필요는 없지만 떨어지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안정성을 주면서도 집값이 물가상승분만큼은 차근히 올라줘야 적어도 내 삶이 유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살 때는 공부가 필수적이다.


우리 둘은 얼결에 2번 방법으로 집을 샀다. 계획하진 않았던 일이었지만 다행히 일이 잘  풀렸다. 좋은 부동산을 소개받아 갔는데 사장님이 전세보다는 매매를 권하셨고 우리가 모은 돈으로 충분히 해결될 만큼, 비싸지 않은 아파트였다. 넓고 편한 새 아파트에서 우린 즐거운 신혼을 보냈다. 처음 받아보는 대출의 압박이 있었던 터라 아끼고 모아 대출금을 많이 갚았고 2년을 지내는 사이에 집값도 조금이나마 올라줬다. 덜컥 집을 산 바람에 불안했던 나는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고 그 덕에 첫 집을 팔고 더 나은 입지, 더 큰 평수 집을 매수했다. 그리고 또 공부 중이다. 다음에는 어디로 이사 갈 수 있을지.


함께 산지 2년, 이렇게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니 결혼 전에 내가 생각했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었다. 왜 진즉 결혼하지 않았을까, 아니 왜 진즉 경제공부, 돈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우스푸어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인가. 대출을 받으면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대출을 받아보니 대출도 능력이 안되면 못 받는 귀한 혜택이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내가 느꼈던 삶의 지루함은 대부분 앞길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무기력함에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지금 만나는 남자는 나와 평생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앞으로 잘 살 수 있는지, 지금의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 앞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고 항상 불안했다.


결혼을 해보니, 돈을 벌어 돈을 굴려보니, 새로운 것들을 계속 공부하다 보니 30대의 자존감이 켜켜이 쌓여갔다. 그러면서 알았다. 30대의 자존감은 나의 일과 돈에 있다는 것을. 10대의 내 자존감은 나의 부모와 성적이었고, 20대의 내 자존감이 나의 경험과 좋은 사람들이었다면 30대의 자존감은 앞선 그 모든 것에 기반한 나의 경제력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주 큰 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노후를 대비하고 내 삶의 질을 점점 더 높여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평생을 세워갈 수 있는 계획이 생기니 삶이 또 너무나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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