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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 코치 Sep 07. 2019

이탈리안과의 요리 대결

파스타국과 쌀국의 만만치 않은 자존심 대결

  포틀랜드에 사는 친구의 플랫 메이트들은 대부분 대학생으로 자주 바뀌는 편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크로아티아에서 온 이제 갓 20살이 된 이탈리안 남자애였다. 처음엔 하도 버르장머리(?) 없이 멋대로 굴면서 내가 태닝 하면 옆에 있던 스리랑카 친구처럼 된다느니 하는 엉터리 같은 말을 하길래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뇌까지 근육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악의 없이 웃기려고 장난친 거고 나름대로 재밌는 친구였다.


  처음으로 아파트에 놀러 갔을 때 그가 이탈리안인 줄도 모르고 (정확히는 어머니가 이탈리안, 아버지가 크로아시안이다.) 크림이 들어가지 않는 이탈리안 정통 까르보나라를 요리해줬는데 장난기 많은 그가 장난으로라도 악평을 할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그러나 그 날은 처음 만나서 그런가 그나마 가장 젠틀한 날이었고 다들 맛있게 잘 먹었다.


  알다시피 이탈리아, 한국 둘 다 반도라서 국민 정서나 성격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그가 떠나기 전까지 두 달간 아파트에 줄기차게 놀러 가면서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 다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성격이 불같은 것이 똑같았고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만날 때마다 한국 음식이 최고다 이탈리안이 최고다 티격태격했다. 당연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아서 어느 나라 음식이 최고인지 요리로 직접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 한국인인 나를 놀리려고 합장을 하면서 '김치, 삼성, 기아' 따위를 웃기게 발음하는 어린놈의 자식에게 도저히 질 수는 없었다.


  대결을 위해 같이 장을 볼 때부터 신경전은 시작되었는데, 내가 요리 재료를 고를 때마다 시비를 걸길래 너는 오늘 질 준비나 하라고 응수해줬다. 돌아가는 길엔 장본 것에 맥주 6팩까지 함께 드니 너무 무거워서 그에게 좀 들어달라 하자 그는 지금은 평등한 시대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럴 때 힘 안 쓸 거면 헬스장에서 근육은 대체 왜 키우는 거냐고 뭐라 했더니 나보고 드라마 퀸이라길래 할 말을 잃었고 그의 신경을 건드림으로써 복수하기로 작정한 나는 그의 메뉴 선정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꼭지를 돌게 만들었다. 그가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드는 줄 알고 샐러드 따위 누가 최고의 음식으로 치냐고 엄청 비아냥거렸는데 알고 보니 카프레제 파스타여서 좀 머쓱해졌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하도 까면서 요리를 해대는 통에 잠자코 듣던 플랫 메이트가 둘 다 똑같이 유치하지만 독설은 내가 이겼다고 평가(?)했다. 거기엔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따로 적겠다. 비좁은 주방에서 키가 멀대 같은 놈이랑 각자 3인분 정도의 음식을 만드려니 모든 게 부족했고 결국 인덕션을 차지하려는 싸움으로 번졌다. 떡볶이를 요리하는 나는 냄비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그는 파스타를 삶을 냄비뿐만 아니라 토마토를 볶을 프라이팬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비키라며 계속 몸으로 밀었고 나는 질세라 다듬고 남은 파뿌리를 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지만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즐거운 추억 중 하나이다. 평가단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요리가 다 되길 기다렸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모짜렐라 치즈까지 얹어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떡볶이와 카프레제 파스타를 시식했다.




  결과는 보나 마나 떡볶이의 승리였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한국 음식을 이길 요리는 없다. 심지어 나는 H마트에서 산 요구르트까지 디저트로 내놓았는데 어떻게 파스타 따위가 이기겠는가. 자존심 센 그조차도 맛있다며 인정했다. 진 사람은 끔찍한 앱솔루트 피치 맛을 승자가 따라주는 대로 다 마셔야 해서 한 컵 가득 따라주었더니 나 보고도 마셔야 한다며 우기길래 그냥 같이 마셔줬다. 쓰디쓴 보드카도 승리의 맛이 더해지자 달콤했다.


  그는 이제 본국으로 돌아갔고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지만 가끔 SNS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다. 언젠가 포틀랜드에서 다시 만나서 한 번 더 요리로 겨뤄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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