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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 코치 Oct 13. 2019

처음으로 얹혀살아 본다는 것

철없는 장녀의 홀로서기

  남이랑 같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얹혀사는 입장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셨던 부모님과 평생을 살면서 야식 만들어먹고 늦게까지 불 켜놓고 내키는 대로 목욕하면서 내 멋대로 살다가 처음으로 남이랑, 그것도 외국인들이랑 한 지붕 밑에서 반년 동안 살게 되니 생각보다 부딪히는 점들이 많았다. 어쩔 땐 내가 생각이 짧아서, 또 어쩔 땐 서로 배려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다.

  불행한 유학생이나 쉐어생들로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집주인과의 심한 갈등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나랑 내 전 호스트 정도면 사이가 무난한 편이었는데도 내가 느꼈던 부담감이 상당했으니 갑질 심한 집주인을 만나면 얼마나 더 불편할까. 가장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 할 집이 그야말로 지옥이 되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내 전 호스트는 보스의 부모님들로, 연세가 지긋한 전형적인 중산층 백인 노부부였다. 지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차라리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겠지만 당시 시골에 차도 없는 내가 가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하우징을 도와달라는 나의 요청에 보스가 소개해줘서 별생각 없이 덥석 물었고, 두 분의 첫인상도 나무랄 데 없이 좋았기에 처음엔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아들이 부탁해서 마지못해 받아줬던 것 같다. 그들이 제시한 저렴한 월세와 직장과의 가까운 거리 덕분에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 월세가 정작 당신들 마음에는 들지 않아서 그런 건지 그냥 원래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건지 내가 없을 때 내 방에 맘대로 들어오거나 예고도 없이 방문 공사를 해서 온 방을 먼지 구덩이로 만들었던 것 등 종종 나를 난처하게 만드셨다. 물론 지금까지 눈치라곤 없었던 나도 실수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바닥에 배수구가 없는 미국 화장실에선 물을 흘리는 것을 몹시 예의에 어긋난 행위로 보는데, 한 번은 서두른다고 바닥에 물을 흘렸었다. 또 세면대만 덜렁 있던 한국에선 물을 많이 튀겨도 티가 안 났는데 세면대 옆에 타일이 붙어있는 미국에선 한국에서 하던 대로 세수하면 물이 그대로 고이게 된다.

  저 두 개는 당연히 지켜야 할 사항이었지만 사실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할 정도로 엄청 사소한 규칙도 많았다. 그리고 재키는 항상 내가 잊지 않도록 조목조목 짚어줬다. 프라이팬도 멀쩡한 거 놔두고 일부러 다 벗겨진 것만 쓰라고 하고 렌트비도 어련히 줄텐데 날짜가 다가오면 언제 줄 거냐고 은근히 닦달하니 하도 눈치가 보여서 입주 전에 친구를 재워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단 이틀 밤만 데려와 재울 수 있었다. 이런 것은 전적으로 집주인의 마음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너그럽게 대해줬으면 내 미국 생활의 반은 훨씬 맘 편하게 보냈을 텐데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현지 호스트와 살면 가끔 함께 요리하고 대화도 많이 하면서 값진 정신적인 교류를 경험하고 미국 생활 적응에 도움받을 수 있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그들은 하숙생을 한 명 들인다는 것 이외엔 별 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환상이 많이 깨졌다. 결론적으론 그들 덕에 눈치 하나는 엄청 늘었다.

  전에는 남의 집에 살면 요리를 너무 오래 해서도 안되고 목욕은 당연히 안되고 샤워도 되도록 짧게 끝내야 한다는 것을 몰랐었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저 걸 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그릇은 쓰면 안 되고 저 건 하면 안 되며 정말이지 생각보다 제약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월세 한 번을 내 손으로 직접 벌어서 낸 적 없는 자의 무지였달까. '내 집'에 대한 애착이 이때부터 생긴 것 같다. 내 한 몸 편히 뉠 곳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였다.


  이렇게 나름대로 험난한 객식구의 삶을 체험하고 지금 집으로 이사오니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좋다. 현재 집주인은 P.A라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의사만큼 바쁘고 돈을 잘 벌어서 그런가 거의 터치를 안 한다. 게다가 취미가 집수리와 리모델링이라 항상 휴일엔 뭔가 뚝딱뚝딱 만들거나 청소를 하며 집 관리에 열중한다. 덕분에 나는 이미 새집 같은 2층 집에서 매일 조금씩 더 살기 편해지고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심지어 스탱이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강아지(강아지라기엔 좀 크지만 내 눈에는 마냥 아기 같다.)까지 있다니 이 것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것이나 다름없다. 노부부랑 살 때는 그들이 나랑 같은 공간에 있든 말든 같은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위축되었는데 이번 집주인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이렇게 아무런 제한 없이 나를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니 내가 먼저 아무 말도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한 번 까다로운 호스트를 겪었더니 뭘 조심해야 할지 이제 척척 알게 되어 불을 알아서 끄고 공용 공간에 내 물건 안 놓고 최대한 깨끗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판 남인 나를 받아주고 배려하는 그가 고마워서 월세는 꼬박꼬박 봉투에 담아서 칼같이 낸다. 그러나 그런 그도 문화 교류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미국에 온 후로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깨닫고 조금씩 다른 사람이랑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웠지만 어쨌거나 굳이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고 싶지 않다. 지금 집주인 정도면 모를까. 근데 이런 집주인은 아마 상위 1% 정도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는 그냥 맘 편하게 혼자 살던지 아니면 친동생이랑 둘이서 살면서 주말에 같이 놀러 가고 내키는 대로 생활하고 싶다. 간장을 찍어먹어도 맘 편한 게 최고라는 엄마의 말이 사무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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