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5 Color story
사람을 만나다
포르투의 면적은 한국의 절반쯤된다. 비교적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연계되어 있다는 지형적 이점으로 행정,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대항해시대가 지나고 유럽 경제의 중심지가 옮겨가면서 점차 발전이 지체되는데 이로인해 수백 년의 전통과 문양을 간직한 건축문화는 그대로 보존이 된다. 신고전주의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 포르토 틈새틈새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대한 유재들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척 재밌게 본 '마녀 배달부 키키'(미야자키 하야오)의 배경이 된 곳이 이 곳 포르투다. 애니메이션 안의 작은 마을도 아기자기 평화롭고 고양이가 느릿느릿 걷는 예쁜 동화같은 곳이였다. 또한, 작가 조엔 롤링은 '해리포터'를 쓸 무렵 포르투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 보면 애니메이션의 장면 장면이 연상되거나 영화의 특정한 찰나가 스치는 듯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해리포터의 광팬으로써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망토 형태의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이었는데 -이 학생들의 복장이 호그와트(마법학교)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라 한다-
마치 숨은그림을 찾듯 작은 발견 하나에도 신이 나고 즐거웠던 곳이다.
포르투에서 돔 루이스 다음으로 눈에 쏙 들어온 건 클레리 구스 성당과 탑이었다. 양쪽으로 좁은 골목이 에워싸고 앞으로는 그 두 길이 만나 몇 곱절이나 넓어진 찻길로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우뚝 솟은 성당은 시야 양쪽으로 여러 현대식 상점들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세월의 흐름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의연하고 당당하게 구시가지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두 눈은 성당에 꽂힌 상태로 카메라를 계속 만지작거린다. 적절한 앵글을 생각하는 것이다. 뭔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는데 성당의 왼쪽 길에서 '꺅' 소리가 날만큼 반가운 뭔가가 내려온다.
포르투의 트램이었다!
"쿵커덕 쿵커덕, 휭~~"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트램에 꽂힌 듯했다. 적어도 관광객들에겐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포르투에 트램이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가는 곳마다 구불구불 평행하는 쇳덩이 라인은 또렷한데 정작 그 위를 달려야 할 트램은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강렬한 첫인상으로 남기에 적당한 때를 노리고 있었던 걸까? 백그라운드를 지키는 성당과 탑의 흥건한 시대적인 느낌에 힘입어 마치 시간을 달리는 듯 유유히, 트램은 그렇게 모습을 나타냈다.
트램은 그리 자주 다니지 않았다. 보고 싶어 애타게 했다가 포기할 때쯤 나타나 심술궂게 휭 하고 지나가 버렸다. 그래선지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다.
포르투에는 도우로 강을 따라 달리다 대서양을 만나는 트램 노선이 있다. 강가를 달리다 강이 바다와 합류하면 그때부턴 강이 아닌 바다를 달리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5시쯤.. 우린 트램에 오른다. 바다에 걸린 노을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었다. 덜커덩 덜커덩 강을 따라서 바다를 따라서 그렇게 도착한 종점.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바다 앞에서 가슴이 뻥 꿇리는 기분이었다.
아쉽게도 겨울이 가까워질 무렵이라 해가 짧았고 쌀쌀해진 덕에 다시 트램에 올랐지만 트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평화롭고 따뜻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지금의 현실을 떠나 또 다른 사람들의 현실로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저 여행이 일상인 듯 젖어들려 해도 여행은 여행일 뿐이었던 것 같다. 출근길에 매일 보는 에펠탑과 일부러 에펠탑을 보기 위해 지하철 5~6 정거장을 달려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우린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에 지속되는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다. 아파트를 빌리고 복닥거리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뚝딱뚝딱 저녁을 요리하고 세일중이던 핫한 와인으로 질퍽하게 하루를 이야기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베키오 다리가 보이는 베란다에서 탁탁 털어낸 옷가지들을 살랑살랑 아르노 강바람으로 말려보기도 한다. 결국은, 단지 여행 스타일이 다른 것이지 라는 생각이다. 짧은 기간 그냥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워싱턴에서 온 노부부가 있었다. 참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우연히 길을 걷다 창문 밖으로 빼꼼히 내민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도우로를 걷다'사진 중) 그냥 무심코 지나간 시간인데 다음 날 저녁 어떤 레스토랑에서 다시 마주친다. 테이블이 몇개 되지 않아 예약이 필수인 곳이었다.
사진을 찍긴 했지만 3층 건물 창문으로 잠깐 본 얼굴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했고 레스토랑에서는 등을 돌려 앉아 있은 데다 와인병이 거의 비어 갈 때쯤이라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일어날 때쯤 우리도 모르게 그쪽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눈이 마주쳤는데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나 너흴 기억해! 창문으로 날 찍었던 것 같은데.. 여행은 어떠니? 난 이곳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오늘 또 왔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우릴 대하는 그녀의 행동이 참 멋있고 정겨웠다. 열려있는 마음, 먼저 인사하는 용기. 나에겐 어려운 그것들이 또 새삼스럽게 작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하루가 더 흘렀다. 우린 여전히 도우로 강에 있다. 수증기 같은 비가 바람에 흩날리는 촉촉한 날이었다. 뜨거운 커피 생각이 간절해 잠깐 가던 길을 멈췄는데 우리 쪽으로 걸어오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엊그제 창문에서 봤던, 어제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바로 그녀였다. 미처 몰랐는데 그녀도 남편과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내일 떠난다던 그들,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 선자리에서 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평생 간직할 기념사진을 남기며.
단순히 여러번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정도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여행자들만이 느끼는 묘한 감정들이 소통이 되고 공감이 될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마 포르투가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건 그녀를 만났기 때문도 조금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그녀 사진을 보면 그때 기억들이 떠올라 미소에 잠기곤 한다.
photo & journey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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