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모토리 Mar 15. 2020

에필로그. 시내버스 오딧세이 1차 여정을 마치며

Epilogue

의외로 보고 느낄게 많았던 삼랑진에서 아름다운 낙동강 지류를 따라 김해로 넘어와 127번과 1004번 직행을 연달아 갈아타고 드디어 부산으로 들어간다. 부산역은 다모토리 버스오딧세이 1차 여정의 마지막 종점이다. 2차 여정은 부산을 출발해 남도와 서해를 거쳐 파주와 문산까지 올라갔다가 서울의 북쪽으로 귀환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이 여정을 한번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인생 뭐 별거 있냐? 그냥 한번 떠나 보는 거지’          


지루한 일상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던 오래전 어느 날. 지금은 폐선이 되어서 없어진 19번 버스를 탔었다. 도봉에서 동대문과 왕십리를 거쳐 중곡동에서 면목동 그리고 청량리로 이어지는 복잡 난해한 코스의 노선이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어디를 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목적으로 버스를 타 본 적이 있는가? 서울이라는 동네가 신기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잠실 성내에서 무작정 21번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서울을 돌아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때의 뭉클한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시간이 지났다. 당시의 무작정 버스 기행이 문득 심장 속에서 꿈틀거렸다. 어느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내가 좋아할 만한 멋진 여행 아이템을 찾았다고 침을 튀기며 자랑을 했다. 일행들은 그게 '대체 뭐 길래?'라며 은근히 나를 떠보았다. 술기운이었던지 자랑거리를 끝내 참지 못하고 내가 훅 하고 불어버렸다.


‘나는 시내버스로 전국을 유람하는 여행을 갈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아니고, KTX도 아니고, 고작 시내버스라고? 하며 지인들이 크게 웃었다.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거 갑자기 뭔가 재미나겠구나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충무로 뒷골목 조그만 고깃집에서 친한 친구들을 모아 삼겹살에 침까지 튀겨가며 석 달간의 시내버스 답사기를 설명했다. 나름 계획적인 펀딩이었다. 조그만 시골길로 다니는 시내버스 여행에 관한 이야기지만 경비는 수월찮게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얘기들은 마치 손자 녀석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젖꼭지를 만지면서 이불속에서 듣는 달콤 쌉싸름한 옛날 얘기 수준을 능히 대적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홀릴만한 가치가 있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비록 샌님들한테 돈을 투자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는 또다시 달콤한 유혹에 빠졌다. 그래, 기회는 늘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지. 하긴 몇 번의 기회를 놓치고 한참 삭은 나이에 이런 기회를 다시 잡은 나는 서두를 필요를 느꼈다. 곧바로 부리나케 일정을 잡고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시내버스 여행은 나에게 있어 그리 낯선 여행은 아니다. 운전면허가 없는 데다, 학창 시절부터 언제나 내 교통편은 버스였다. 하지만 뭔가 그럴듯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장기간 혼자서 이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첫째는 물론 경비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하루를 꼬박 돌며 삼시 세 끼를 먹고 적당한 속소에서 자야 하고 지인을 만나면 술도 한 잔 해야 한다. 이런 일정을 몇 달간 하고, 또다시 몇 달간 해야 하는 비용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경비를 지출한다. 둘째는 만들어진 콘텐츠를 팔아야 하는 부담감이었다. 책으로 내건 전시회를 하건 다 내 마음이지만 콧바람 여행 삼아 몇 달을 시내버스 타고 전국을 누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 콘텐츠를 이용해 책을 만들기로 했다. 글재주가 없었지만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면 누군가는 재미 삼아 읽어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지막은 가족이었다. 당시 나이 마흔의 끝을 달리고 있었고, 직업은 시간이 돈인 프리랜서. 나는 대학생 애가 둘 딸린 현역 가장이었다. 물 좋은 클럽에서 퇴짜를 맞고 이젠 노래방에서 얼쩡거려야 하는 비극적 신세를 시내버스 여행으로 만회해 보려는 독기마저 품고 있는 386 마지막 세대의 초인적 발악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 이럴 때 안 가면 언제 가보겠냐? 인생 뭐 별거 있나? 그렇게 손바닥을 치며 애들처럼 좋아하던 나는 여기저기 손을 벌려 스폰서를 구하고 힘들게 경비를 마련해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짐을 잔뜩 꾸리고 새벽에 처음 올라 탄 시내버스는 내가 그렇게도 많이 이용했던 그 버스가 아니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그 거친 바다에 몸을 실었던 이단노 갤리선의 뱃속이었다. 이젠 더 이상 돌아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모험의 선단에 몸을 실은 것이 뼈 속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아, 드디어 시작한 건가?”      


그렇게 시작해서 이제 정확하게 반을 돌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물리적 수치로의 반은 더욱 그 의미가 크다. 옛 길을 떠올리며 시내버스로 그 길 위를 달렸다. 버스만 타고 전국을 한적하게 유람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한 이 기획은 글쓰기에서 난관이 있었다. 버스여행이 그다지 재미있는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엄청난 호기심을 유발했다. 남들에게 재미난 여행담을 전해주려고 기를 써서 에피소드를 만들기보다 지나가는 우리네 풍경들이 훨씬 더 알차게 다가왔다. 



물론 여행기는 계속 쓸 예정이다. 문화유산 답사 수준에서 벗어나 조금씩 더 가볍게 써보고자 노력 중이다. 글빨이 많이 딸린다는 것을 인지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한두 번 전국투어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골백번은 더 투어를 다녀야 한다. 적어도 2~3년 정도 더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녀 보면 자연스레 글을 쓸 주제들이 등장하리라 믿는다. 더불어 버스에서 바라본 우리네 풍경들도 손에 잡힐 듯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이 여행이 늘 실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니 수많은 이야기들이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먼지처럼 살아올라 영상으로, 활자로 변했다. 그것을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벅찼다. 지리학자도, 고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 내가 그 길에서 얻어낸 것은 지나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때론 설화가 되고, 때론 유적이 되고, 때론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것을 조금씩 발견하며 느끼는 재미와 쾌감은 이 여행의 백미였다. 주마간산 인문학이라 깊게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내게는 외려 잘 된 설정이다. 이제 부산에서 서해 루트로 집까지 돌아가는 2부의 여정이 남아있다. 경상도와 달리 전라도의 길들은 지리와 역사문화의 맛이 전혀 다르다. 다음 여정이 기대되는 이유다.                   

      


2020년 3월 달맞이고개에서 다모토리

www.damotori.com




<2차 투어 플랜>


2_부산에서 서울까지 (서해 루트)     


Chapter 7 / 털레털레 걸어야 제 맛인 동네길  <부산진주>

19 | [부산-시락 정곡] 앗! 버스길이 사라지다

20 | [시락-배둔/도보] 가끔은 걸어야 하는 길이 있다. (그린로드#12) 

21 | [배둔-통영] 충무김밥 먹고 돌벅수를 노래하다 

22 | [통영-진주-완사] 진주냉면과 완사 장날의 최고 한우     


Chapter 8 / 내가 삼천포로 빠지고 싶었던 까닭은 <진주보성>

23 | [완사-하동] 삼천포로 빠져서 하동을 알다 (그린로드#13) 

24 | [하동-남해-벌교] 전라도는 왜 역적의 땅이 되었나

25 | [벌교-보성] 태백산맥과 파르티잔의 역사     


Chapter 9 / 시골장터에서 남도의 맛을 탐하다 <보성목포>

26 | [보성-강진-해남] 우수영에서 만난 충무공과 해창막걸리    

27 | [해남-목포-무안] 초의선사와 품바의 땅 

28 | [무안-광주] 나주에 밀리고 목포에 밀리고      


Chapter 10 / 전통이 서린 옛길을 따라 <광주강경>

29 | [광주-고창-정읍] 우암, 길에서 사약을 받다 (그린로드#14) 

30 | [정읍-전주-임실] 전주에서 만난 3가지 맛 

31 | [전주-군산-강경] 채만식의 탁류를 읽다       


Chapter 11 /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 <군산평택>

32 | [강경-부여-청주] 세월을 가로지르는 천년의 고도 (그린로드#15)  

33 | [청주-천안-평택] 병천순대를 먹으며 경기 옛길을 걷다      


Chapter 12 / 슬픈 역사를 뒤로하고 다시 걷다 <평택-광화문>

34 | [평택-수원-소래] 왕,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35 | [소래-강화-파주] 경순왕은 도라산에서 무엇을 보았나?

36 | [파주-전곡] 속절없이 흐르는 한탄강을 바라보며 (그린로드#16)  

37 | [전곡-광화문] 다시 서울로 돌아오며     


Epilogue / 시내버스 유람기 아름다운 길 17코스





매거진의 이전글 115. 부산역_시내버스가 환경오염의 주범은 아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