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정말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
"우리 딸 행복해야 해"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누구보다 결혼을 고심한 사람이다. 20살부터 이성을 만날 때 내 남편감으로, 내 아이의 아빠로 좋은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최근 2년간은 결혼, 부부관계에 대한 책이나 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의사 결정 과정이 누구보다 복잡한 나는 사랑에 흠뻑 빠져 "이 사람이다!" 하는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한 지금의 남자친구도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어려워 부모님께 데려가 부모님의 판단을 묻기도 했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한다니 스스로도 신기하고, 부모님도 신기해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결혼식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나는 애초부터 결혼식 로망 따위는 없었다. 한두 시간의 행사에 그렇게 큰돈을 쓰는 것도 비합리적이라고 느껴졌고, 차라리 내가 평생 곁에 두고 싶은 사람과 소규모로 만나 깊은 이야기를 하며 내 소중한 소식을 정하고 남편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아니면 내 본가가 있는 부산과 남자친구의 본가가 있는 대전에서 각각 피로연을 하고 서울에서는 정말 작게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돌아가며 각각 축하의 말을 하고 듣는 그런 결혼식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소규모 결혼식이 더 고민할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다소 평범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식장을 잡았고 스드메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어서 플래너님을 통해 후다닥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결혼식보다 결혼 후 잘 사는 것을 위한 준비가 더 중요했다. 내가 새롭게 꾸리는 가족과의 챕터 2를 잘 준비하는 한편,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나의 가족과의 챕터 1을 잘 돌아보고 싶었다. 얼마 전 나는 동생 집에 가서 주말을 보냈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동생과 잠깐 같이 살다가 나는 교환학생을 떠나고 동생은 군대에 갔다. 같이 사는 동안 우리는 힘들었다. 서로 많이 달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동생, 나, 아빠는 서로 자기주장이 강했고 항상 바빴다. 서로의 말에 힘들어하면서도 왜 서로가 힘이 들까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엄마도 우리 셋 사이에서 힘들었지만 왜 우리가 힘들어야 할까, 어떻게 힘듦을 풀어가야 할까 들춰볼 여유가 없었다. 동생과 주말을 온전히 같이 보내며 나는 동생을 이해해 보려고 처음으로 노력했다. 예전에 미안했던 일들을 사과했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 행동을 하는 생각과정을 이해해보고자 많이 대화를 했다. 이 과정에서 동생은 조금은 더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마음을 열었다. 동생이 마음을 열자 아빠도 마음을 조금 열었다. 말투도 부드러워졌고 동생과 더 대화를 해보려고 아빠도 도력했다. 엄마는 그날 주말 우리에게 생긴 변화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엄마가 많이 행복해했다. 나는 항상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감정이 종속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내가 하루가 좋다고 하면 엄마의 하루가 좋았고, 내가 힘들다고 하면 엄마는 힘들어했다. 내가 무엇을 제안하면 엄마는 '동생의 일이 정리되고 나면', '동생의 무엇이 끝나면' 하는 식으로 항상 자신을 챙기는 것을 미뤘다. 식당에 가도 엄마는 메뉴를 먼저 고르는 법이 없다. 엄마는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음식 모험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먹어보고 싶은 메뉴 두 개를 시키자고 한다. 엄마가 새로운 음식 시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내 취향을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좋으면 엄마의 하루가 좋은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내가 동생에게, 우리 가족의 문제에 한 발짝 다가간 것에 많이 행복해했다.
나는 항상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갤럽 강점검사에서도 나의 주요한 강점은 미래지향과 발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였는지 가족이 내 행복의 원천이라고 하면서 가족을 돌볼 마음의 여유를 만들지 못했다. 집은 항상 내가 지치면 쉬러 가는 곳이고, 나는 엄마의 밥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고 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집에 가면 아빠와 동생의 갈등,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충전보다는 방전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마저도 나는 엄마에게 불만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문제를 엄마가 짊어질 짐이라고 생각했고 나 보고는 훨훨 날아가라고 했다. 가족은 언제나 내 에너지의 원천이고 나와 함께할 대상이다. 나는 내가 몇 달 후 결혼하게 되면 동생 집에 가서 하루이틀을 자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엄마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할 기회가 줄어들까 봐 문득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결혼 전 몇 달 동안 가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지내고 싶어졌다.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사랑을 전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주고받은 기쁨과 슬픔을 다시 펼쳐놓고 서로를 더 안아주고 싶다.
"엄마 내가 정말로 결혼을 하나 봐.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우리 엄마, 행복해야 해. 이젠 엄마의 행복을 내가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