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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플 Sep 05. 2023

결혼해서 퇴사하냐고요?

회사에 퇴사면담을 신청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작년 이맘때 나는 회사를 다니며 시험 준비를 했고, 시험 준비에 전념하고 싶어서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자 아빠가 목소리를 높였다. "결혼하고 퇴사하면 되잖아!" 아빠는 지금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에서 내게 잘 맞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가 항상 아등바등하는 것을 안타깝게 보는 아빠는 내가 좀 편하게 살았으면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의대에 갔어도 충분히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빠의 길을 따르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퇴사를 하더라도 그 시기가 무조건 결혼 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상대방 가족들에게 내가  안 좋게 보일까 걱정도 됐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 방황을 하게 됐나

나는 중고등학교 때 시험에 목숨 거는 아이였다. 예체능 과목의 실기 시험도 만점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밤에 나가 농구 연습을 하고,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며 아등바등했던 내가 안쓰럽다.

"엄마는 왜 그때 시험 점수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어?"

"노력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니까. 그리고 너가 그 과정에서 애쓴 걸 아니까 같이 마음을 쓴 거지."

이렇게 나는 그냥 무식하게 정말 공부만 열심히 했다. 대학진학 전까진 좋은 대학만 가면 뭐가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의 직장에 들어온 건 3년이 되었다. 남들은 신의 직장이라는 회사이지만 나는 입사 때부터 정말 잠깐만 거쳐갈 생각이었는데 진짜 어쩌다 보니 3년이 되었다. 3년간 나는 단 한 순간도 조직에 애정을 가진 적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이 불행했다. 언제나 탈출을 위해 고민하고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막상 내가 쥔 것을 포기하고 자리를 옮기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버티는 것은 힘이 들지만 변화에는 더 힘이 들기 마련이다.


예식장을 고를 때도 서울에 있는 식장을 거의 전수조사할 정도로 의사결정이 복잡한 나는 진로에 있어서도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내가 조직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서 가장 속상해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나를 낳고 일을 그만둔 엄마는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아무런 말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우리 딸은 뭘 해도 할 아인데 엄마가 조언을 못 해줘서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계속 사회생활을 해서 뭐라도 해줄 말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많이 된다."며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엄마에게 상처를 준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내가 지금의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초반에 회사에 대해 불평을 하자 엄마는 "다 그렇게 참으면서 회사생활을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나는 엄마에게 당시 너무 화가 나서 "엄마는 일반 회사 생활을 안 해봤잖아. 엄마는 안 참고 그만뒀잖아."라고 쏘아붙였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마음이 어땠을까. 두고두고 생각해도 내 마음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말이었다. 


엄마는 "엄마 나 행복해!"라고 내가 말하면 그게 제일 큰 행복이라고 한다. 퇴사면담을 한다는 나에게 엄마는 내가 퇴사 후 발리에 가서 행복하다고 할 것이 기대가 된다고 한다.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강요를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학생 때는 학원을 다 알아보고 보내주는 정보통 친구 엄마들를 부러워했고, 교대든 의대든 부모님이 진로를 정해주는 친구들이 부러웠을 만큼 나는 선택 앞에서 외로웠다. 엄마는 고등학생 때 시험을 앞두고 긴장한 나를 안아주며 딸인 나를 본인보다 더 믿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여전히 엄마는 내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게 항상 못마땅하지만. 그렇게 엄마는 내 퇴사 선언에도 내 행복을 빌어주었다.


공부나 진로를 강요한 적 없는 부모님이지만 내가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할 때면 행복해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교무실에 떡을 돌리고 모임에서 밥을 사고 하던 게 엄마 아빠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대학원까지 졸업하면서도 계속해서 방황하던 나는 내가 부모님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도 자식 자랑거리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이 시점에서의 퇴사가 제일 속상한 것은 나이다. 부모님, 남자친구, 남자친구의 가족 모두가 나를 소개할 때 그 소개 뒤에 뿌듯함, 자랑스러움, 사랑 등의 감정이 충만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결혼 전 마지막 여름휴가 마지막 밤 나는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나의 퇴사계획을 얘기했다. 한 번 아빠가 나의 퇴사에 강하게 반대한 경험이 있어 나도, 엄마도 많이 긴장한 밤이었다. 남자친구가 온전히 지지해 주고 둘이서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후에 내린 결정이라는 나의 이야기에 아빠는 "그래, 둘이서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라고 나의 결정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퇴사를 한다니

나의 짝꿍은 언제나 나의 지지자이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로 짜증 내며 퇴사한다고 하면 고생은 자기가 하겠다며 하루빨리 퇴사하라고 했다. 내가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면 본인은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일하면서, 내 시간을 아껴준다며 집 앞까지 와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며 수험생 뒷바라지를 해줬다. 내가 자존감이 바닥일 때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많아 선택이 어려운 거라며 누구보다 나의 잠재력을 믿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대책 없이 "앞으로 뭘 할진 모르겠어. 그냥 나 갭이어를 좀 가지면서 생각해 볼래."라고 하자 그는 아무런 반대나 더 이상의 질문 없이 “찬성!”이라고 했다.


이렇게 나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회사에서 퇴사면담을 잡아 나의 의사를 밝혔다. "저 퇴사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를 위해 3년이 걸렸다. 나의 또렷한 대책 없는 퇴사가 분명히 남자친구에게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만약 그가 결혼반지를 끼고는 갑자기 퇴사를 선언하면 그의 잠재력을 믿고 내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회사에 퇴사를 선언한 그날, 그에게 내가 무임승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행복을 품은 사람이 되어 너를 더 행복으로 감싸주려고 도전하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진짜 되었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셋이다. 결혼해서 퇴사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보다는 결혼하려고 퇴사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제 내 불행이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나는 내 행복의 농도를 더 짙게 가꿔볼 것이다. 행복의 요소를 차곡차곡 모아보면 뭐라도 되겠지 뭐. 중학교 시절 체육과목 실기시험 만점을 위해 농구 골대 앞에서 긴장하던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골대 따위를 보지 않고 눈을 감고 공을 멀리 던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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