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과 HR
나의 처음 인사업무는 진료비 지원 업무였다.
우리회사의 복지제도 중 하나로 직원 및 직계가족이 병원에 다녀오면 일부 진료비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내 업무는 서류를 확인해서 진료비 지원을 받을 가족을 등재하고, 개인별 신청한 진료비 내역이 맞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가 반쯤 벗겨져, 소갈머리만 남은 아저씨가 씩씩대며 내 앞으로 찾아왔다.
“왜 등본이 안되냐고? 등본에 세대원으로 나와 있잖아.”
“아니… 대리님. 회사규정이 가족관계증명서만 제출하게 되어 있어서요.”
“뭐, 왜이리 융통성이 없어. 그게 그거지. 그럼 그걸 떼러 내가 다시 동사무소에 가란말이야?”
“(떨리는 목소리로) 규정..대로 처리하는게 제 일인데요….”
“뭐야, 지금 우는거야? 울어?”
만년 대리 소갈머리 아저씨는 잘못된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신청을 반려 당하자, 따지려고 직접 사무실에 찾아온 것이었다.
입사하고 2개월차, 아직 업무파악에 어리버리하던 나는, 다다다다 자신의 할말만 하는 민원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저씨가 화가 난 이유는, 아들의 진료비 지원을 받기 위해 “등본”서류를 냈는데, 규정 상 “가족관계증명서”만 등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관련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아저씨는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이 1도 없었다. 계속해서 1시간 동안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 판단했는지, 내일 ㅇㅇ대리 오면 얘기하겠다며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