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모던 키친>
요기요와 박찬용 작가가 진행했던 <요기레터>라는 콘텐츠가 있다. 식품의 생산 과정을 다룬 르포물이다. 요거트. 햇반. 도넛과 같은 대공장 생산 식품부터 만두. 명란젓 같은 조금 더 손을 많이 타는 중소 규모. 그리고 딸기 밤 미나리 와사비 같은 농장까지 다룬다. 매 화 너무 재밌게 읽었고 올해 초에 책으로 엮여져 나왔다 해서 얼른 구매했다.
요기레터를 다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건 미루고 있다 최근 완독했다. 다시 봐도 재밌다. 나는 이 분 글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로 좋아하냐면 트래바리 같은 활동에 시큰둥하고 책 같은건 그냥 혼자 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이 분의 트래바리 모임 개설을 보고 아묻따 결제를 했다. 그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연재때부터 좋아했던 시리즈라 <모던 키친>을 읽고 좀 더 생각해봤다. 이 분 글을 읽고 나면 정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된다. 허황된 말과 치장들에 대해서 면역주사를 맞는 느낌이 있다. 화려해보이지 않고. 장기간 습관처럼 반복되고. 딱히 주목하지 않는 노동 과정. 그러니까 반복되는 실무가 모여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만들고 지탱하게 한다는 걸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깨닫게 된다. <모던 키친>은 음식의 생산 과정을 깔끔하고 세세하게 묘사하다가, 이들을 엮어서 마음 찡해지는 마무리를 뽑아낸다. 그 글들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브랜딩이 품질의 상징이라면 가장 확실한 브랜딩은 결국 높은 품질이다. 덕화명란 공장은 그 면에서 브랜딩의 산실이고, 이 브랜드의 핵심은 결국 손에서 나온다. 우리가 잠든 오전 7시에 종종걸음으로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바닷가 바로 앞 암남동으로 향하시는 여사님들의 손으로부터. 20년간 포장을 해오신 구 여사님의 손으로부터. 구 여사님은 내년이 정년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 깨끗하고 싱싱한 미나리를 먹을 때마다 손들을 떠올린다. 퍼프 대디 노래 벨소리를 들으며 미나리를 씻고 다듬던 여성의 손, 김성기의 손, 우리 눈에 안 보일 뿐 어딘가에서 분명히 자기 역할을 해서 우리 눈 앞의 깨끗한 미나리를 가져다 준 사람들의 손들을. 그 손을 생각하면 또 미나리를 먹고 싶어진다. 돼지고기를 굽고 생긴 기름에 지져 먹고, 새우깡 길이로 썰어서 전으로 부쳐 먹고, 앤초비와 올리브오일을 둘둘 볶아 파스타로 먹고, 간장으로 간한 멸치 국물을 살살 끓이며 얇게 썬 고기와 함께 샤브샤브로 데쳐 먹고 싶어진다.”
“거의 텅 빈 임실의 도로를 달리며 생각했다. 모바일 디바이스가 등장해 온 세상 사람들이 이 신묘한 기계를 쓰게 된 후 신흥 기업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들의 ’브랜드 스토리‘는 똑같다.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문제를 해결한다‘. 무슨 세상을 바꾸어 어떤 세상을 만들까. 문제를 해결해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디디에 세스테벤스는 정말 모든 걸 바꿨다. 자신의 터전과 이름을 바꾸고 임실에 새로운 산업을 심었다. 치즈 만들 돈이 모자라 본가에서 지원을 받고도 그는 때가 되자 임실치즈에서 손을 떼고 장애인 복지에 힘썼다.”
세상이라는 곳이 참 야박해서 정말 가치가 있는 일들이 대체가능한 일로 저평가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취재와 깔끔한 문장들로 그런 고된 하루하루가 얼마나 우리 세상에 주요하고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모던 키친>도 그랬지만 전작들도 내게는 다 그런 기조로 다가왔다. 지샥이라는 시계를 다룰 때도. 좋은 물건 고르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할때도.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스펙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 그 스펙의 구현이 얼마나 고된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구현한 사람들의 손. 표정. 희노애락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이 책은 오히려 식문화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식품 생산을 소재로 한 실무의 위대함을 다루고 있는 책 같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몇가지 고정관념들을 깨는 소소한 즐거움도 좋았다. 오래오래 책 써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