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못하면 비극이 찾아온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젊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모를 위화감을 느낀지 꽤 됐다. 몸은 늙는데 마음은 늙지를 않는게 인간의 비극 중 하나다. 거울 속 나는 찌그러지고 있는데 마음과 욕구는 20대에 머물러 있다면 주관의 입장에서 그것 만큼 비극은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마음을 젊게 먹으라는 이야기는 젊은이처럼 굴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유연성을 가지라는 것이다-라고. 근데 그 말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열림과 유연성은 그냥 독립된 특성이 아니다. 내 마음을 열어놓고 유연하게 생각한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새롭게’ 얻고 달성하겠다는 욕심과 한쌍이 된다. 하나를 택하고 하나만 버릴 수는 없다. 나이 들고 남을 괴롭히는 권력자들도 본인의 젊은 마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와인이니 영포티니 중년 남성들의 끊어지지 않는 지독한 젊음 중독을 봐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두가지 생각이 이어진다. 하나는 젊음이라는 특성에 너무 많은 것들이 종속돼 있다는 것이다. 유연성. 열린 마음 등등…젊음의 특성에서 분리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결국 마음도 적절한 시기에 고통받고 늙어야 하는 게 아닐까. 유연과 열림보다는 초탈함으로-이를 테면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방향으로 마음이 늙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어떤 시점에는 했던 것들도 내려놔야 하고. 퇴장해야 하고. 쫒겨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젊음의 마음 자체가 어찌됐건 존재의 고통을 유발한다.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어서는 안된다. 이 괴리를 그냥 놓아두면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늙은이는 젊은이가 아니기에 괴롭고. 젊은이는 자신의 몫을 늙은이와 경쟁해야 하니 괴롭다.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고 관계 속의 존재이니까 몸이 늙고 그로 인해 관계가 바뀌었다면 마음도 늙어야지.
같이 늙지 못하면 남은 생을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와의 고통 속에 살 뿐인데. 정작 이런 말을 하는 나 조차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걱정이다. 나이가 들 수록 죽음과 고통에 대해서 더 많이 다뤄야만 역으로 그 중차대한 문제들을 잘 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만 든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요즘 내가 자주 생각하는 말은 이제는 우리 누구도 남 탓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누구 땜에 우리가 이렇게 됐어요 하기엔 이제는 너무 어른이 되었다. 그 말은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의 기준이나 참고 혹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내가 좀만 더 맘을 가다듬고 행동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남의 눈을 더더욱 신경써야 하는’ 나이가 됐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