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휴가 등록하고 가야 합니다.
1개월 안식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3년 일하면 1개월, 5년 일하면 3개월. 꿈에도 몰랐다. 입사할 때 혜택이라며 알려줬던 휴가 규정 중 안식 휴가를 내가 가게 될 줄은. 그것도 5년 3개월은 못 챙겨 먹고 4년째 되던 시점에 가게 될 줄은.
3개월 휴가를 가게 되면 파타고니아를 다녀오려 했다. 무궁무진한 대지에 신이 붓으로 그려놓은 말도 안 되는 그림체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파타고니아 옷을 사 입기는 하는데 그 로고 속의 그림을 한번 눈으로 보기는 해야 아 나는 더 적극적으로 파타고니아를 입어도 되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호주로 가서 집채만 한 픽업트럭을 빌린 후 롱보드를 뒤에 싣고선, 롱보드를 타는 서퍼들의 성지인 누사 비치를 목적지로 하고 가는 길 곳곳의 서핑 포인트를 섭렵하며 성지에 도착했을 때 더욱 신성해지고 충만해진 서퍼 소울을 만들어보려 했다. 한국에서 까면 큰일 날법한 웃통을 까고, 머리도 예수 간지가 나게 단발까지 기른 후, 햇볕에 자연 탈색을 시켜 히피 서퍼 간지를 내보려 했다.
하지만 둘 다 실패. 1개월 휴가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쉬고 싶었다. 이때쯤이면 쉬어가야 할 것 같았다. 퇴사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투쟁적인 대응 방법이고, 휴가를 내기에는 너무 짧아서 다음 날이면 또 힘들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개월 안식 휴가와 타협하기로 했다.
나중에 뒤돌아보며 깨달은 거지만 1개월 안식 휴가 후 회사에 복귀하는 느낌은, 빨간 연휴 날이 잘 풀린 해에 추석 연휴를 쉬고 회사에 출근한 느낌 정도였다. 별로 다를 거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와이로 안식 휴가를 다녀왔으며, 그 주목적은 서핑이었고, 한국에서 아프던 뒷목과 담이 걸려있던 어깨 그리고 안구 건조증은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전 예전에 1개월 안식 휴가로 하와이에 가서 서핑을 하고 왔어요"라고 말하면 쿨 해 보일까? 듣기와는 달리 특별한 일들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전에 눈을 뜨면 보드를 가지고 서핑을 하러 나갔으며, 낮에는 햄버거를 먹고, 낮잠을 자고, 오후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코난 쇼'를 보며 잠들었던 거밖에 없다. 그냥 '일상'이었다. 여느 클럽에 가서 논다던가 술을 흥청망청 마신다던가 하는 일탈은 전혀 없었다.
그냥 난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쉬고 싶을 땐 쉬어라. 지금도 3개월이 아닌 1개월 휴가를 다녀온 걸 후회 하지만, 그건 휴가 기간의 총량에 대한 후회일 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떠나게 될 것이다. 쉬어야 할 타이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