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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Pyo Dec 22. 2015

서퍼들의 아침

매일 아침에 뭐들 하십니까?

what's up buddy?


데릭은 하와이안이다. 와이키키 해변의 관광단지에서 좀 떨어진 로컬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살며, 모쿠(Moku)라는 와이키키 해변 바로 앞의 서핑 샵에서 일하는 친구다. 매일 아침 데릭은 샵에 출근하기 전, 금발의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해변가에 서서 오늘 파도가 어떠한지 살펴본다. 지금은 하와이의 북쪽을 파도가 강하게 내리치는 겨울 시즌이라 남쪽 해변을 바라보는 와이키키의 파도는 상대적으로 잔잔하다. 오늘은 그래도 눈짐작으로 보건대 타 볼만한 파도가 5분에  한 번씩은 줄지어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간은 7시. 샵 오픈 시간은 9시이니 한 시간 정도 타고 오픈 준비를 하면 되겠다. 이내 보드에 190cm의 키에 근육으로 무장한 육중한 몸을 싣는다. 보통 사이즈의 보드를 타면 가라앉을 것만 같겠지만, 10ft의 - 약 3미터가량의 - 보드는 등위에 누가 올라왔냐는 듯이 데릭의 물질에 그저 바다를 향해 물살을 가를 뿐이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여기저기에 서퍼들이 동동 떠있다. 도서관의 좋은 자리를 잡듯 파도 잡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러 달려갈 법도 하건만, 다른 서퍼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지나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카페에 모여 어제 있었던 일을 속삭이듯이, 서퍼들도 보드 위에 앉아 파도를 기다리며 서로의 안부와 어제 마트에서 있었던 멍청한 사건 이야기 등 사소한 잡담을 나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멀리에서 젤리처럼 물컹대는 듯한 모양으로 파도 너울이 들어온다. 낮시간에는 관광객 서퍼들이 혼자 다 타 버리겠다고 룰을 지키지 않고 파도를 독식해버린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이곳에 사는 로컬 서퍼들이기에 서로 파도를 양보하고 룰을 지키며 하나씩 파도를 잡아타고 해변으로 떠난다. 데릭도 마지막 파도를 타고 백사장까지 나와서는 샵으로 출근한다.


9시, 아침에 탄 파도의 전율이 아직까지도 온몸에 남아있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아침 스크럼 해요~


스크럼은 아침에 먹는 시리얼 이름이 아니다. 빅뱅이론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일할법한 IT 회사에서 매일 아침 레너드, 쉘던이 외계어를 발사하는 시간이며 회의 이름이자 일하는 방법론 중 하나이다. 사실 이름만 스크럼이지 내용은 일반 회사로 치자면 일간 오전 보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스크럼 하자고 하면 좀 더 멋나긴 하다.



방안, 와이키키, 하와이



회사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노트북에 시동을 걸고, 온갖 업무에 필요한 인터넷 창과 각종 프로그램들 - 이메일, 캘린더, 메모장, 카카오톡 - 을 켠다. 어제의 업무들을 정리하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려고 하는 찰나. 아침 스크럼을 하자는 카카오톡 알림에 맥이 끊겨버린다. 노트를 들고 스크럼을 하러 가는 길에 문득 하와이에서의 아침 일상이 생각난다.



발코니1, 와이키키, 하와이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강한 햇볕에 잠이 깨어 발코니에 서서 파도를 살펴본다. 닭장 같은 사무실이 아니라는 점과, 머리를 염색한  사람들보다 자연 탈색으로 보이는 머리의 사람들이 많은 점이 회사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회사에서는 누가 휴가를 내면 업무에 지장이 있다. 하지만 바다 위에 떠있는 서퍼들의 수가 적을수록, 누군가가 결석을 하면 할수록, 아 오늘은 내혼자 신나게 타는 날이다.


발코니에 서서 바다를 응시한지 5분 정도 되었을까. 배가 고프다. 냉장고에서 어제 밤에 사둔 무수비 - 일본식의 뭉친 밥 위에 스팸과 김을 얹은 식사 대용 음식 - 두어 개를 꺼내어 다시 발코니로 향한다. 이번에는 의자에 앉아 아침 막장드라마에서 물컵 쏟는 꼴이 아닌, 해변가의 관광객들과 바다 위의 서퍼들을 구경하며 식사를 한다.



발코니2, 와이키키, 하와이



우적우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다. 조금 더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을 딱 알아챈 어제 먹다 남은 차가운 커피잔을 놓지 못하고 한동안 더 앉아 있는다. 아침 스크럼은 더도 덜도 말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늦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질까 걱정되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서핑을 하고 씻을 요량으로 샤워도 하지 않은 채 대충 스냅백을 머리 위에 걸치고 쪼리를 끌며 문을 나선다. 미리 알아봐둔 와이키키 해변 바로 앞의 모쿠(Moku)라는 서핑 샵으로 향한다.


데릭의 아침 서핑이던, 나의 발코니 시간이던, 세상이 그저 그런 하루로 만들지 못하게 누구에게나 평온한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ritual)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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