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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상품기획자의 원칙

상품기획할 때 생각해봐야 할 점

by 뱅디


상품기획의 본질은 하나

저는 지난 10년 간 화장품-가구-패브릭-가전-생활용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상품기획을 해왔습니다. 카테고리를 바꿀 때마다 주위에서 겁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문성이 없이 커리어가 꼬일 것이라는 우려도 많이 받았죠. 흔히들 상품기획자는 특정 분야(화장품)에서 작은 브랜드에서 일을 하다가, 큰 브랜드(아모레/LG생건)로 이직하는 것을 좋은 커리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카테고리 이동이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상품기획의 성공 방정식(=머니코드)은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든다”입니다. 당연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면 매출로 나타나고, 매출로 보이면 제 몸값도 올라가기 마련이죠.


상품기획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 이 당연한 소리에 대해 이제부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든다

이 상품기획 대원칙의 요소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1) 소비자

2) 원하는 것

3) 만든다


1) 소비자: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가?

많은 상품기획자들은 ‘나’와 ‘소비자’를 동일시하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공급자와 소비자는 절대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없습니다. 분리해서 관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와이즐리는 mass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대부분 제품군의 opinion leader를 타깃으로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이 opinion leader를 단순히 2040 여성, 이런 식의 demographic을 정의하는 것을 넘어서서, 정말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해당 타겟층을 잘 관찰하면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더 뾰족하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3040 여성 주부]여도 생필품을 살 때의 기준과, 사치품을 살 때 원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생필품을 살 때는 가족을 위해 사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고, 사치품을 살 때는 본인을 위해 사고 싶은 마음이 우선시되기 마련이죠. “가격”에 방점을 둬야 하는 제품은 생필품에 가깝고, “성능”에 방점을 둬야 하는 제품은 사치품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현재 기획하는 제품이 opinion leader들에게 생필품인지, 사치품인지 생각보다 깊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이에 따라 디자인(레퍼런스), 스펙, 고객 커뮤니케이션 등 모든 게 달라지거든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드라이기 → 긴 머리 고객 → 사치품


모두들 머리카락은 있기 때문에 드라이기는 생필품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실제로 쿠팡에서 판매량 순으로 보면 필립스, 유닉스, JMW 등 저렴한 브랜드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습니다.

쿠팡 판매량 상위권 top 8

하지만 드라이기는 긴 머리 고객들이 더 민감하게 제품을 봅니다. 머리 말리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길거나 머리숱이 많은 이들이 드라이기를 전전하고, 이들이 시장의 opinion leader들이 되어 있죠. 괜히 드라이기가 긴 머리 모델을 쓰는 게 아니겠죠? 그리고 이 고객들은 필립스, 유닉스가 아닌 다이슨을 갖고 싶어 합니다. 즉, 드라이기는 생필품으로 위장하고 있는 사치품이죠.

그런데 이 고관여 고객들에게 다이슨을 필립스 가격에 제공한다? 안 살 이유가 없겠죠.


주방세제 → 팍팍 쓰는 고객 → 생필품


맘가이드 같은 플랫폼에서 주방세제를 분석하는 고관여자도 있지만, 드라이기와 달리 고관여자들이 주방세제계의 opinion leader는 아닙니다. 주방세제의 opinion leader들은 그냥 절대적으로 많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팍팍 쓰기 때문에, 자주 구매하게 되고, 가격 탄력성도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가격 탄력성이 높은 제품일수록 “충격적인 가격”을 줘야 합니다. 이런 생필품은 “얼마나 낮은 가격으로 제공해야 충격을 줄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공급망을 접근했습니다. 저는 이걸 2,000원/1L 수준으로 가설을 세웠고, 이전 버전(2,990원 / 500ml)보다 50% 이상의 매출을 보였습니다. 판매량이 3배 정도 튄 거죠.

물론 주방세제도 기획 시 아주 디테일하게 들어가다 보면 계면활성제의 종류에 따라 퀄리티나 단가가 차이 납니다. 하지만 조사해 보니 고객들은 화장품처럼 주방세제를 공부하기 위해 추가적인 리소스를 투자할 의사는 없었습니다.



조금 이론적이긴 하지만 저는 종종 extreme user를 생각하면서 타깃을 설정합니다. Extreme User Theory란 전혀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사용자나, 통계적으로 극단적인 이용 행태를 보이는 사용자를 인터뷰해서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인데요. ‘BCG 전략이론’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등장합니다.


*어떤 살충제 회사에서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 시장조사를 하던 중에 일주일에 살충제를 두 통이나 쓰는 할머니가 있다는 통계를 찾아냈다. 일주일에 두 통은 한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 회사는 그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실제 할머니를 찾아가서 이유를 묻자 엉뚱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살충제를 뿌려도 바퀴벌레가 계속 꿈틀거렸기 때문에 바퀴벌레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살충제를 뿌리다 보니 ‘일주일에 두통’이나 살충제를 썼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퀴벌레는 살충제를 뿌린 뒤 몇 초 안 있어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 후 2분가량 바퀴벌레가 꿈틀거린 것은 죽은 상태에서 보이는 발작일 뿐이었는데, 할머니는 이것을 아직 살아있다고 오해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살충제 회사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기존의 살충제에 마취제를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살충제는 뿌리자마자 바퀴벌레를 죽이는 것은 물론 (마취제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미 정체기에 이른 살충제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며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습니다.*

(출처: https://blog.rightbrain.co.kr/?p=746)


극단적으로 드라이기는 한 대가 아닌 10대 넘게 써본 사람(eg. 헤어 디자이너)이 쓰고 싶어 할 제품이 무엇일지, 주방세제는 한 번에 10통씩 구매하시는 분들(eg. 식당 사장님)이 쓰고 싶어 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레퍼런싱 해야 할 제품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지죠.



2) 원하는 것: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공급자와 소비자는 절대 같은 관점에서 시장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과 데이터 둘 다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감과 데이터는 무엇일까요?

감: 고객이 원하는 것을 짐승의 감각으로 캐치하는 것

데이터: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며 일을 하는 것


저는 이 두 가지가 잘 밸런스가 이룰 때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례를 들어 볼까요?


드라이기

고객들은 다이슨을 갖고 싶어 할 뿐, 잘 사지는 못하기 때문에 데이터로는 판매량이 다이슨 보다 훨씬 아래 있습니다. 필립스, 유닉스, JMW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랜드들이 상위권에 있죠.

하지만 왜 저는 와이슨을 출시했을까요? 우리는 데이터 저변에 있는 소비자들의 뜻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품의 특성은 물론, 인간 본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일종의 돈을 버는 감이죠.

저는 “드라이기는 생필품이기 때문에 고객들은 이미 집에 다들 드라이기는 있을 것이고, 와이즐리에서 추가로 구매를 일으키려면 사치품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이슨을 레퍼런싱할 경우 잘 팔릴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필립스가 집에 있어도 다이슨을 갖고 싶어 함 → 감


감으로 가설이 설립된 후로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네이버 리뷰수를 판매량(Q)이라고 가정할 때, 다이슨과 JMW를 판매가(P)를 곱하면 매출(P x Q)의 크기는 JMW의 매출보다 큽니다. 네이버 리뷰 수는 검색량 등으로 대체도 가능합니다. 리뷰 수나 검색량은 정확한 매출 데이터는 아니기 때문에 오차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다이슨보다 JMW가 우월하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만 증명하면 됩니다.

시장 베스트셀러는 필립스, 유닉스, JMW지만 매출은 다이슨 → 데이터

P x Q framework : 사치템을 데이터로 찾아내는 법
위 P x Q framework는 제 나름의 [사치템을 데이터로 찾아내는 법]으로, 절대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나의 감을 설명하기 위해 데이터를 근거로 삼을 줄 아는 습관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이것저것 그려보면서 시각화도 해보는데요, 감을 데이터로 증명하려는 습관을 들어야 상황에 따라 다양한 framework를 만들어 본인의 주장을 더 탄탄하게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가격이 높을수록 매출이 유리한 거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제품군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클렌징폼은 6,600원짜리 센카 퍼펙트휩이 34,000원짜리 비디비치 클렌징폼보다 우월한 레퍼런스입니다. 비디비치의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센카의 인지도와 판매량을 극복할 수 없거든요.


결과적으로 [다이슨으로 레퍼런싱 할 경우 더 잘 팔릴 것이다]라는 가설은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출시 첫 달에는 5일 만에 초도주문량을 완판 시켰고, 지난 1년 동안 평균 2천 대정도의 판매량을 꾸준히 올려왔습니다.


향수

향수는 시장 데이터로도 규모가 9,000억 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매출 예상치가 작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스킨케어는 10조, 영양제는 6조, 바디/헤어는 2조입니다.


하지만 이 9,000억 중 90% 이상이 니치 향수였습니다. 좋은 말로 하면 부가가치가 높고, 나쁜 말로 하면 허세가 가득한 시장이죠. 게다가 향수는 심지어 집에서 혼자 뿌립니다. 쿠션이나 립스틱처럼 남들에게 용기를 보여줄 상황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향수는 와이즐리의 카피캣 전략이 특히 더 잘 먹힐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죠.


향수는 집에서 혼자 뿌림. 쿠션이나 립스틱처럼 남들에게 용기를 보여줄 상황도 없음 → 감

향수 전체 시장 9000억 원 중 90% 이상이 니치 향수 → 데이터



그 결과 2024년 하반기에 론칭한 향수는 와이즐리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출시 6개월 만에 뷰티 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 만든다: 무질서, 불확실성과 싸운다

따로 제품을 만드는 공급망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이 부분이야 말로 경력 즉, 카테고리 전문성이 높을수록 유리하거든요. 다만 저는 여기서는 우리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 즉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는 좋은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 보려고 합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무질서, 불확실성과의 싸움입니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이 무질서에 대한 강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무질서를 따라가기 급급할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것을 질서 정연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관리는 [구조화]에서 시작하며, 작은 부분에서부터 훈련한 [구조적인 사고력]이 개인 → 스쿼드 → 사일로 → 비즈니스까지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조화]가 결국 [밀도] 있는 업무, 더 나아가 업무의 [자유]를 부여합니다.


저는 회사에서 멋있는 사람은 “저 사람은 일이 분명히 많은데, 왜 이렇게 여유로워 보이지?”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본인이 바쁘긴 한데, 프로젝트 진행되는 게 없다? 그러면 일하는 방식에서 개선이 필요합니다. 보통치고 들어오는 오퍼레이션 업무가 많아 근무 시간에는 이 업무들을 쳐내기 바쁘고, 본업을 하려니 이미 퇴근 시간인 경우가 꽤 있으셨을 겁니다. 이게 지속되면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요. 제 경험 상 기획 업무와 오퍼레이션 업무는 발산과 수렴 양극단에 있는 업무 특성이라 멀티태스킹하기가 어렵습니다. switching cost도 큽니다. 그래서 우린 이걸 잘 분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는 리소스를 만들기 위해선 오퍼레이션을 위한 자동화, 프로세스화가 되어야 합니다. 즉,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고 싶다면, 본인의 업무부터 매니징이 가능해야 합니다. 지금 본인의 리소스를 얼마나 효율화시키고 있는지, 어떤 업무에 얼마나 할당하고 있는지 체크가 되고 있는지 불분명하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집중할 수 있는 업무 환경 스스로 만들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론이 있는데요, 이건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무리: 상품기획자의 기초체력

자, 제가 상품기획할 때 중요시 하는 몇 가지 관점을 말씀드렸지만 사실 절대적인 원칙은 없습니다. 어떤 방법을 쓰던 PM은 그저 좋은 제품을 보고 만들어낼 줄 알면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저는 크게 2가지를 조언합니다.

돈을 쓰세요.


돈을 많이 써본 사람이 돈을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들 줄 압니다. 본인은 미니멀리스트인데, 상품기획자다? 자랑이 아닙니다. 상품기획자는 일반 소비자보다 더 많은 제품을 써보고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치를 캐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경험이 쌓여서 본인만의 빅데이터, 즉 감이 쌓이는 것입니다.


저는 비즈니스 세계에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티스트가 아니니까요. 다만, 어떤 분야의 유(有)에서 다른 분야의 유(有)로 다시 태어날 때 창의력이 발현된다고 봅니다. 쇼핑, 여행 등 직접 경험이면 좋지만, 영상이나 책 등 간접경험도 좋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여 문제해결력이 생기고, 창의력이 향상된다고 믿습니다.


글을 쓰세요.


저는 ppt보다 노션 글로 제 주장을 펼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bulletpoint와 이미지로 이뤄져 있는 슬라이드는 논리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말로 무마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줄글을 작성하고 검수하면 본인의 논리적 비약을 찾아내고 수정하는데 용이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제 논리를 탄탄하게 만드는 연습을 했고, 결과적으로 제 주장(감)을 데이터로 해석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는 글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아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요, 글을 잘 쓰는데 지름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많이 써보고 수정하는 수밖에요. 그래도 어느 순간 본인의 실력이 쑥 늘었다 싶은 순간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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