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내가 일하던 곳은 취리히 공항에서 더 가까운 남부 독일 시골마을이었는데, 베를린으로 가는 직행이 없어 뮌헨에 하루 묵고 베를린으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타는 일정이었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도시로 가서 느낀건 길빵을 사람들이 그렇게나 한다는거다. 아니 길빵하지 말라는 법은 독일에 없는 것인가?
지하철 출구 표지판에 여기서는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계속 피어대고, 식당에서 밥먹으면서 담배를 피었다. 흡연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유로이 필 수 있다면 여기서라도 담배를 한번 시작해보고 싶었다.
아침에 농산물 시장에서 사왈마shawarma를 먹는데, 독일에서 내 돈으로 사먹은 첫 음식이 중동음식이라는게 참 묘하긴 하지만 사왈마가 그동안 너무 먹고 싶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먹었다.
먹다가 앞에서 두 남자가 담배를 피우는데 한 남자가 일행에게 우리 자리 옮기자라고 어딘지 모르는 외국어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뒤에 나한테 자그맣고 수줍게 "Sorry"라고 하는데 기분이 정말 다 풀렸다.
배변 훈련
유럽의 공중화장실이 유료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찾기가 어렵고 숨어있는지 몰랐다. 나의 여행의 8할은 화장실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화장실을 찾아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골목 사이 사이에 멋진 곳을 알아가는게 내 여행의 포인트였달까.
어쨌든 변의가 생기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가장 화장실이 안전하게 확보된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들어갔다. 나중에는 미술관만 봐도 변의가 생기는 이상한 행동 학습이 되어버렸다.
언제 어디서든 화장실을 갈 수 있었던 남부 시골에서의 11일은 알고보니 에덴 동산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배변 훈련이 되어있길래 이렇게 참고 살 수 있는 것인가.
관광객
이 동네 사람들은 나를 관광객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뭐 독일어로 말 거는거는 그렇다 쳐, 근데 길을 자꾸 물어본다. 독일어로 "영국정원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가는 길이라 알려주긴 했는데…너무 거지같이 하고 다니나 반성하게 된다. 옷이 아니라 좀 생활에 찌든 티가 나나? 어쨌든 소매치기도 나를 관광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털어가지 않겠지.
야간열차
뮌헨에서 저녁 10시에 타서 베를린에 아침 7시에 도착하는 야간 열차를 탔다. 야간 열차 한번 타보고 싶기도 해서 탔는데 아니.. 침대가 없잖아? 그냥 좌석이었다. 그것도 뒤로 아주 조금 젖힐 수 있을 뿐이었다. 일부러 1등석을 예매했는데 이럴 수가;; 하지만 나는 뮌헨에서 3만 보를 걸으며 구시가를 걸어다녔고, 맥주도 두 잔 마셨고, 혹시 몰라 졸피뎀(수면제)도 먹었기 때문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내 간.. 미안해 간아.
장보기
숙소에 짐풀고 장봤는데 납작한 복숭아와 마카롱이 정말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그냥 하나에 300원 정도 하는 마카롱이었는데 하나에 2000원 하는 한국 디저트가게 마카롱보다 맛있었다. 와.. 진짜.. 말도 안된다. 납작 복숭아는 켐벨 포도 맛이 나는데 정말 별미였다. 토마토, 당근, 양상추, 체리 등등 장바구니 두 개에 가득 담는다고 담았는데도 28유로, 한 4만원 정도 나왔다. 이거면 일주일 거뜬히 먹지.
샤를부르텐 궁전 피크닉
집 앞 궁전에 도시락을 가지고 갔다. 젊은 이들이 모여 앉아 핸드폰으로 함께 EDM을 듣는다. 여긴 EDM 음악이 그렇게 인기라는게 실감이 난다. 처음 보는 개들을 구경하고, 숲 속을 구경하고.. 그리고 여긴 호수에 특이하게 백조가 그렇게 다닌다. 그리고 새끼 백조도 봤는데 정말 '미운오리새끼'는 고증이 잘 된 동화였다. 새끼 백조는 회색에 털이 북실북실한 미운 오리처럼 생겼다 정말.
> 음악 리스트 (1) 공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들었던 노래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집에 돌아와서는 독일 관련된 영상을 싶어서 넷플릭스를 틀었다. 뮌헨.. 어디서 많이 들어본 도시라 했더니 근현대사의 뮌헨 조약,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랑 같이 매번 나오던 그 도시였다. 오.. 내가 이런 역사적인 도시를 다녀왔단 말이지.. 하면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1년 전 시대극 영화를 보았다.
민수와 영수, 소진된 여행자
꿈에서 나는 집단 상담을 하고 있었고, 내가 집단에서 확신을 얻는 그런 꿈을 꿨다. 새벽부터 비가 와서 빗소리에 깨어나 느릿느릿 일어나 씻고 토스트와 과일을 올린 요거트를 해먹었다. 내가 지내는 곳은 티베트 절인데, 큐피드가 프시케를 데리고 간 궁전같은 느낌이다. 너무 예쁘고 잘 정돈되어 있지만 사람을 마주칠 수가 없다.
오늘은 그래도 사람들을 좀 볼 수 있었는데, 아침에 식당에서 미국인 민수와 영국인 영수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신분 보호를 위한 가명인데 민수, 영수처럼 고전적이고 흔한 이름이다. 민수는 여기서 지낸지 거의 9개월이 다 되었고, 영수는 온지 6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숙소가 좋아 4개월 정도는 더 있을 거라고 한다. 전직 프로 축구선수였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나는 축구는 문외한이라 그가 뛴 FC를 들었는데 생소한 클럽이었다.
민수, 영수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올라와서 한 숨 잤다. 일정이 계속 되어서인지, 아니면 출장이 끝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이 끝없이 온다. 박물관을 가고 싶지도 않고, 미술관을 가고 싶지도 않고 어딜 나가고 싶지도 않다.
오늘은 딱 두 가지만 하고 집에 와야지. 출장에서 만난 독일인 할아버지가 강력 추천한 소시지만 맛보고 베를린 장벽만 보고 와야지.
베를린 프라이드
그렇게 집을 나섰다. 브란덴부르크문-> 홀로코스트 추모비 -> 찰리 포인트 박물관을 가는데 가는 곳마다 베를린 프라이드 행진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오늘이 축제 당일이었다. 코로나에 3년 만에 열린 축제일테니 다들 얼마나 신나겠는가 싶었다. 나도 코로나 시국만 아니면 행진을 같이 더 구경했겠지만 남쪽 시골에서만 지내다가 갑자기 바글바글한 사람들에 놀라 내 길을 가기에 바빴다.
우리나라 프라이드 행진과 다른 점은 교회 반대 시위가 없다는 거다. 베를린 도심 전체에 경찰, 소방관, 그리고 참여자들만 있었다. 무지개 팔찌를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나도 하나 받았다.
그제서야 떠오른 것은 바로 베를린은 헤드윅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스위스는 그냥 리정혁과 윤세리가 만난 곳이었다면, 베를린은 헤드윅이 태어나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곳이었다. 낯선 도시가 반가워지는 순간이었다.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어쨌든 그렇게 걸어 도착한 홀로코스트 추모 공원에서는 공항에서처럼 철저하게 짐 검사를 했다. 테러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추모 기록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돋보였다. 들어갈때는 뭐지 이 공간은 싶었는데, 점점 깊어지는 추모공간과 끝없이 반복되는 추모비 사이에서 길을 잃으며 어떤 느낌을 주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삥 뜯긴 분? 여기요.
추모 공원 전시에서 홀로코스트 잔혹사를 보며 한창 가슴이 아픈 상태에서 체크포인트 찰리에 갔다. 전시 내용은 냉전 시대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동독에서 몰래 탈출한 사람들이 사용한 기상천외하고 위험한 방법에 대해서도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22년 3월에부터 기증되기 시작한 물품들이 있었는데,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하.. 뭐 이런 저런 세상의 어두운 면들에 가슴이 아파오고 다리도 아파와서 잠깐 앉았는데, 한 분이 다가와 기부를 요청했다.
5유로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리 저리 계속 삥을 뜯어가셨고 그냥 뜯겼다. 좀 정서적으로 피로하기도 하고 연민도 들고 계속 뜯어가시니 화도 나고 그러면서 그냥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뜯긴 것 같다. 물론 나가서 벤츠를 몰고 다닐지도 모르지만, 약간에 삥뜯김이 남은 독일 여행의 액땜이 되길 바라면서. 불교 철학에 의하면 너와 나는 하나기 때문에 내가 너한테 돈을 준건 어떻게 보면 내가 나한테 돈을 준거라고 볼 수 있지 뭐. 삥 뜯긴 걸로 부처님까지 거론하다니 참... 나도 내가 한심하다 가끔.
커리 36
복잡한 심경으로 독일 할아버지가 추천한 맛집 CURRY 36에서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받아 길거리에서 먹고 있었다. 오.. 맛있어.. 이러고 있는데 옆에 낯선 이가 말했다.
"굳 어페티트(맛나게 먹으렴)"
- “당케 쉔(고마워여)”
기분 좋은 친절함에 삥 뜯긴 찝찝함이 사라지며 맛있게 먹었던 순간이었다.
베를린 신드롬
집에와서 빨래하고 베를린 신드롬을 봤다. 당연히 베를린이 들어있기 때문에 보기 시작한 영화다. 작품 설명에 "낯선 도시에서 원나잇 스탠드~" 까지만 읽고 당연히 로맨스인줄 알았는데 스릴러였다... 후.... 내 눈.. 내 눈.. 이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생각나는 주인공의 연기 어쩔꺼냐고.
꿈에서 나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아직 출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어제부터 발바닥 통증이 있어서 조금만 걸어야지 싶었다. 일요일인 오늘, 사람 많은 곳도 피하려면 도심(미떼)에 가지 않고 집 근처에서 지내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발바닥 통증이 왜이리 심한가 봤더니 남부 시골 흙바닥을 생각하고 걸으면 이 도시의 돌바닥에서는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천천히 살살 걸어다녀야지.
빵집 테라스에서
집 앞 제빵 장인이 한다는 곳에서 크로와상과 피자와 딸기타르트, 아이스 라떼를 시켰다. 주문을 받아서 오는데 커다란 개가 내 자리에 묶여 있었다. 뭐 그럴수 있지. 그리고 아저씨가 유모차를 맡기면서 뭐라뭐라해서. "네, 괜찮아요 유모차 여기 두셔도 됩니다"라고 그냥 대충 대답했다.
갑자기 한 할머니가 커피와 빵을 들고 독일어로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저랑 같은 테이블 앉으셔도 돼요" 라고 했다. 어차피 할 말이라는게 여기 앉겠다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내 자리에는 지금 유모차와 개가 묶여있는 거다.
할머니가 "그 아이가 당신 아인가요?"라고 물어보길래
'그럴리가요. 이 아이는 코케이시안 이잖아요 딱봐도.. '
"아뇨, 이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고, 이 개도 제 개가 아닙니다." 무슨 기본 회화 교과서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했다.
그 개는 알고보니 할머니 개였다. 그러니까.. 지금 자기 자리를 개로 맡아놨다는 거지? 허허.. 개 이름은 모모였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생각나는 생김새긴 했다.
어쨌든 나도 먹고, 할머니도 먹고 그러고 있는데 다 드시더니 갑자기 담배를 뙇.. 그래.. 왜 안피나 했다;; 피셔야지 뭐. 여기서 나치와 냉전과 금융위기를 겪으셨는데 담배 좀 피우셔도 되지 뭐.. 그렇게 사람들이 내 앞에 앉았다가 이리저러지 지나가는 것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신호등
여기 신호등은 정말 짧다. 내 다리가 짧은 것인가. 이 사람들이 이 시간동안 건널 수가 있다고 이 횡단보도를? 매번 신호등 건널 때마다 조마조마한 느낌이다. 물론 빨간 불이라고 해서 차가 나를 치고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외국에서 한국에서 못느끼는 감정들을 느낄 때가 바로 이런 때다. 내가 조그만 키가 아닌데 여기에서는 너무 작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L을 입는 내가 여기선 S를 입는다니까.
택시
한국에서 한 번도 못 타본 좋은 차들을 여기서는 택시로 다 탄다. 폭스 바겐, 벤츠, BMW... 택시로는 벤츠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니까.. 이게 국산차인거지 이 분들은. 절약하기 위해 국내 생산된 차를 산 걸테다. 여행은 이런 상대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장이다. 나는 큰 편인가, 작은편인가, 어떤 차가 좋은 차인가도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