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이 들면 사는 게 편해진다 했던가. 출처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왔다. 나이 들면서 사는 게 조금은 나아지고 요령도 생기고 편안해지겠지 싶었다. 결혼하면 안정을 찾게 되고 아이 키우는 재미에 삶에 대한 여유로움도 생기는 줄 알았다.
사실 30대에는 좀 그랬다. 20대에는 뭘 모르고 방황하던 시절이었고, 30대가 되니 직장생활도 익숙하고 자리도 잡혀서 사회생활 요령도 알고 취미활동도 하고 돈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는 상황이었기에 30대 때에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이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하루하루 더 먹을수록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낙관은 와장창 깨졌다.
아이들은 자주 아팠다.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 다니고 입원하는 내내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무언가 놓칠까 봐. 사소하고 미세한 신호라도 알아채서 아이가 덜 아프게, 아프기 전에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부모님도 아프기 시작했고 이제는 치료가 안 되는 병환을 앓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나는 자주 내려가지도, 병원에 모시고 가지도 못하는 불효자가 되었다.
2019년 초에는 치매인 아빠 걱정에 엄마가 급히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 그런데 혼자 있어야 되는 아빠 걱정에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혼자 끙끙 앓다가 오후 늦게나우리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언니와 오빠의 활약으로 엄마는 입원하셨지만 나는 발동동 구르며 친정에는 가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었다. 아이가 가와사키병에 걸려 퇴원 후 회복기였는데 회복기에도 심장에 후유증이 올 수 있어 조심해야 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외부 바람만 쐐도 열이 났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이는 어려 내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부모님도 나이 들면서 우리의 손길이 필요하기 시작했다. 손길이 필요한 만큼 돈도 필요하기 시작했다. 외벌이 빚 인생에서 내가 무슨 돈이 있을까.
부모님을 위해 우리 삼 남매는 형제계를 하는데 그 곗돈 올리는 것도 예민해져서 나는 쏘아붙였다. 언니가 곗돈 올려야 되는 사정을 말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말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 언니와 아이 둘 키우는 우리가 같겠냐며 잔뜩 가시를 세웠다.
나는 부모님을 보며 내 노후의 예고편을 미리 보기 하고, 아이들을 보며 내 과거를 돌아본다.
내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부모님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른다. 예전의 모습에서 점점 노쇠함이 물들기 시작하는 부모님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누가 노년이 아름답다 하는가. 노년이 되면 은퇴자금이나 연금으로 편히 손주들 재롱보며 지내는 이미지는 드믄 얘기다. 엄마 주변 사람들 이야기만 들어도 그렇다. 여기저기 아픈건 예사고, 큰 병 하나 둘 안 겪는 집도 없으며, 노년이 되어 돈 문제도 사람 문제도 여전히 생긴다. 노년이라고 삶이 저절로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노쇠한 몸까지 더해지니 힘들다. 그래서 노인 우울증이 많은 것이겠지.
내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내 아이들도 빠르게 성장한다. 그런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허둥대다보면 어느덧 아이는 커있고 엄마인 나는 자책하곤 한다. 아이는 빠르게 성장하고 그에 따라가기 위해 정보를 알아보고 아이에게 맞는 학습, 훈육, 놀이, 환경을 찾고 나면 아이는 또 다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이의 가정보육이 지날즈음이면 어린이집, 그 후 유치원 경쟁이 시작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학원과 학습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 후에도 수 많은 단계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테다. 아이들은 내가 적응하기도 전에 벌써 저 멀리 커 있다. 따라가기 벅차다. 그러다보니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죄책감이라는 화살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엄마는 강하다는 표어가 진짜일까 항상 의심한다. 엄마가 된 지 5년 차임에도 말이다. 엄마가 되니 더 약해진다. 세상에 약자가 되고 더 고개를 숙여야 된다. 내가 잘못하면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 조리고 살아간다.
돈은 갈수록 더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지원은 더 줄어들고 남편의 월급 인상은 쥐꼬리만하니 나도 돈을 벌어야 한다. 일자릴 구할 생각하면서도 경단녀인 나를 써주는 곳이 어디 있겠나 싶다. 내가 일하면 저 어린아이들은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데 어쩌나 싶어 망설여진다.
아이는 잘 키우고 싶고, 부모님께도 척척 용돈 드리고 싶으나 내 처지는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붙박이장 신세.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고 챙겨야 될 것도 많아진다. 그러면서 몸도 점점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는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우울해지기도 한다.
책임질 아이가 있다는 것은 고꾸라지면 안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보니 바짝 조심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 말이다. 그러한 것이 어른인 것인가 싶기도 하다. 책임질 모든 것을 짊어지고 그럼에도 앞으로 한 발 한 발 떼면서 나아가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