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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Kim Jan 21. 2021

"대학병원은 남의 얘긴 줄 알았는데......"

마흔이 되니까


처음으로 CT를 찍었다. 아빠 CT 찍는 건 봤지만 직접 찍자니 긴장되고 배고팠다. 바늘구멍 세 군데(피검사, 조영제 알레르기 검사, 조영제 투입)에 만들고 원통에 내 몸을 넣었다. 그전에 발포제 같이 거품 나는 거 먹고.


조영제가 몸에 들어가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화 판타스틱 4의 스톰이 불을 뿜을 때 이런 느낌일까 생각나다가 어어? 하니 몸이 식고 끝났다. 끝내고 일어서는데 어지럽고 배가 아파서 허리가 펴지질 않았다. 부축받아 의자에 앉고 따뜻한 물을 마시니 서서히 나아졌다. 너무 굶었고 긴장한 탓이리라. 좀 어이없기도 했다. 이런  거 하나로 이렇게 긴장하다니 싶고 또 내가 전보다 약해졌다 싶었다. 신랑도 불과 몇 주 전에 시티를 찍었고 아빠는 자주 찍었던 건데 막상 내 일이 되자 긴장해서 손발이 차갑게 식었다.








20대에는 대학병원 하면 큰 병 걸린 사람만 가는,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일이라 생각했다. 당시엔 내 주위에 대학병원을 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큰 병에 걸린 사람도 없었다. 나도 동네 작은 병원도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였다.


30대가 되자마자 아빠 간암이 확인됐다. 아빠 수술 때 처음으로 대학병원을 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은 으리으리했다. 아빠는 긴 수술을 했고 우리 가족은 아빠의 떨어져 나간 검붉은 간과 그 사이에 박힌 종양 덩어리를 맨 눈으로 확인했다. 그 후 십 년이 넘게 아빠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들락날락했고 결국은 더 이상 대학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후에야 그만 가게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된 30대 중반부터는 아이들 때문에 지역 내 대학병원을 가게 됐다. 아이들은 때때로 유리잔 같았다. 잔병치레도 잦았고 대학병원 가보라는 얘기도 잦았다. 작디작은 아이와 함께 대학병원을 다닐 때면,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할 때면 나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큰 아이가 조금 크고 대학병원도 드믄드믄 다니게 되어 좋다 했더니 내 나이 마흔에 내 몸이 원인이 되어 대학병원을 가게 됐다. 나이 들어서인가 싶어 CT를 찍고 나자 괜스레 울적해졌다.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나왔건만 앞으로 남은 절반을 이 몸뚱이를 어떻게 잘 끌고 나갈 수 있을까. 나이 들어 아프면 그것보다 서러운 것도 없는데 말이다. 젊어서는 시간이 없고 나이 들어서는 시간은 많은데 몸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평생 하고 싶은 거 할 여력이 없는 것이니 이 얼마나 억울한가.


마흔이 되면 몸이 한 번 크게 아프다고 했다. 누군가는 마흔이 넘으면 몸이 늙는 게 보인다고도 했다. 직접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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