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부터 암은 더 이상 우리 가족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서울의 제일 큰 병원도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아빠가 간암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놀랐지만 받아들였다. 수술하고 치료받으면 될 거니 마음을 다잡았다.
간암 수술 후 항암치료에 아빠 머리가 홀랑 다 빠졌고 손발의 피부가 벗겨졌다. 그래도 우리는 비극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고난이라고 생각했고 힘차게 물리쳤다.
드라마를 보면 "암입니다."라는 선고가 마치 사망신고인 듯 표현한다. 세상이 끝나고 슬픔이 가득 찬다. 나는 암을 비극 소재로 삼아서 사람이 당장 죽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들에서 심한 반항심이 생긴다. 암으로 죽긴 하지만 비극이라는 극을 위한 도구로 삼는 드라마가 못마땅했다. 아니 암을, 누군가는 그것으로 힘들어하고, 때론 잘 이겨내며 치유해내고 있는데 암은 곧 불행이라는 잘못된 방정식으로 드라마에서 단순 소재로 삼는 것이 매우 매우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리고 힘내서 이겨내려는데 힘 빠지게 하는 짓이다.
아는 동생의 아내가. 우리 막내 삼촌이 암으로 하늘에 가셨어도 암은 곧 불행이라는 드라마 공식은 여전히 불편하다. 암이 내 주위에 흔해서 그런 것일까. 암은 '상대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인가?
치매는 일부 드라마에서 너무 미화하여 표현한다. 최근 보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할머니가 치매다. 그런데 귀엽다. 치매 할머니는 장난치고 보호자는 웃으며 우쭈쭈 다 받아준다.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들을 보면 매우 화가 난다. 실제 치매는 아름답지도 귀엽지도 않고 보호자를 바짝 말라가게 하는 최악의 병이기 때문이다. 치매의 실상은 최소화하고 희화하는 데에만 써먹는 장면들이 실제 치매 환자와 보호자를 외면하고 시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드라마에서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피곤에 지치고 피폐해진 정신은 표현되지 않는다. 치매 환자 집 안의 쩌든 지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치매환자와 가족들이 항상 울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행동에 웃기도 하고 정신이 맑게 게인 어떤 날은 이야기도 하면서 옛 생각도 하게 되곤 하지만 그런 나날들은 점점 줄어든다. 악다구니 쓰는 하루가 쌓여가고 냄새와 고통이 따르며 밤 잠 이루지 못하고 살얼음판에 사는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하루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이 년이 되면서 점점 바닥을 드러낸다. 버티어내는 삶 말이다.
미래가 결코 나아질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은 비극일 수밖에 없을까?라고 다시 생각해보고 누군가의 치매는 비극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나는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비극으로 다가온다. 먼 훗날 치매라도 아빠가 계신 나날들을 그리워할 것이리라는 생각 한다. 아빠를 보는 하루라도 더 많이 사랑한다 말을 해드리지만 치매가 비극이 아니라는 생각은 못할 것이다.
뉴스 기사를 봤다. 치매 노모(80대)를 모시던 딸이(50대 후반) 엄마를 목 졸라 살해했다는 비극이었다. 치매는 구질구질 현실이다. 아름다운 치매 따위는 없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픽션에서는 병을 극을 위한 소재로서만 다룬다는 느낌을 받을 때 매우 못마땅하다. 그것에 걸린 당사자와 보호자의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고, 그 현실을 극으로만 접해본 다른 사람들의 공감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곧 그 병을 앓는 모두를 외면하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일을 겪을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모두 희극이라고 했던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진창이다. 그 진창에는 아름다운 보석도 있고 더러운 타르도 있다. 모두 섞이고 숨고 드러나고 악다구니 쓰는 진흙탕이다.
그래서 내 삶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비극인 순간이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비극인 순간이 있고 희극인 순간이 있고 그 순간들이 어우러지면서 나아가는 게 삶인가 생각한다. 아빠가 치매로 점점 나빠지고 계시고, 엄마는 아빠를 챙기면서 점점 야위어 가는 상황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못난 딸로 비극이다. 하지만 귀여운 두 어린 아들이 있고 성실한 남편이 있고 편안한 내 집이 있으니 그 건 또 희극이다. 비극과 희극이 뒤엉켜 나는 때론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기도 하다.
삶이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진창 이래도 삶에서 비극인 순간이, 그 횟수가 적기를 바란다. 그 순간이 적고, 찰나이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 우리 가족, 우리 사람들, 우리 모두에게 어쩔 수 없이 와야 하는 비극이라면 그 순간이 짧고 조금이길 바라고 또 바란다.
인생에서 겪는 경험들 중에 겪지 말아야 할 것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경험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면 좋겠다. 그런 아픔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