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Kim Jan 26. 2021

장녀 이야기 2

엄마 이야기는 누가 들어줄까



아빠 생신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생일일 수 있어서 우리는 모두 모였다. 언니는 친정에 오자마자 분주한 엄마에게 속사포처럼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바빴다. 그 날 낮에는 이모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는 한 참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전화 끊고는 "네 이모는 언제 철든다니"라고 얘기하셨다. 들어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불평불만을 엄마에게 가득 쏟아부은 듯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 엄마는 서울로 젓갈 장사를 하러 다니셨다. 엄마는 몇십 킬로는 족히 넘을듯한 무거운 젓갈을 이고 끌고 서울의 지하철 계단을 다니며 시장을 찾아다니고 장사를 하셨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를 키웠다. 밤늦은 시간 막차 무궁화호를 타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다시 다음날 장사를 하기 위해 젓갈을 준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때 어린 나는 일하는 엄마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내었다. 엄마는 바쁘고 피곤할 텐데도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냥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귀담아듣고 종종 반문도 하면서.


그렇게 엄마는 항상 들어주는 '귀' 역할을 했다. 엄마는 장녀로 동생들 얘기 들어주고, 집에서는 엄마니까 자식들 얘기 들어주고, 포장마차 할 때는 손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정작 엄마 이야기는 누가 들어줄까? 누구보다도 힘들게 살아온 세월인데 그 이야기보따리만 해도 장편 소설을 넘을진대 누가 들어줄까?


엄마에게 통화하면서 물어보았더니, 자기 얘기는 해봐야 뻔하니까 잘 안 한단다.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만 들어주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는 못하고 묵혀두고 묵혀두다가 그게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통화에서 엄마는 예전에 술 한 잔 먹고 옛 이야기했던 얘기를 한다. 술을 조금 먹으니 술술 나오더라며 그래서 더 술 마시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고. 엄마에게 이야기는 아픔이고 슬픔이니까 말이다.








아직 아빠가 치매에 걸리기 전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에 여행 간 적이 있었다. 그 날 중 하루 밤, 술 한 모금 못 드시는 엄마인데 어쩐 일인지 드시겠다 하여 반 잔 따라드리고 '짠'하고 잔을 부딪혔다. 엄마는 시원하게 한 잔 드시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옛이야기를 하셨다. 


40대 중반인 언니가 아직 업혀 다니던 시절,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 엄마 아빠는 먹고 살 방법이 없어서 언니를 업고 사과를 팔러 기차 타고 갔다가 하나도 못 팔고 다시 돌아왔다. 그날 밤을 얘기하셨다. 벌써 사십 년도 더 전인 이야기인데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나도 못 판 사과를 이고 지고, 뒤에는 아이를 업고 피곤한 몸으로 역에 내리니 소복이 쌓인 눈이 맞아주었다고. 엄마가 막막함을 안고 내린 그 길에는 눈이 쌓여 고요함만 가득했다.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고 안아주지도 않는 무정한 세상의 고요함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그때는 이십 대였는데 얼마나 막막하고 고단했을까? 이십 대는 비교하자면 어린 나이인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에 업힌 아이도 안쓰러웠을 테고 말이다. 엄마는 사십 년이 넘은 그 이야기를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다가는 발개진 얼굴에 안 되겠다고 방에 들어가셨다. 그날 밤 엄마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에게 나는 글이나 일기 쓰시라고 권했다. 우리 안에는 내 이야기가 눈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다. 처음엔 고요히 차곡차곡 쌓일 것인데 그 얘기는 언젠가는 밖으로 토해내지 않으면 탈이 난다. 눈사태가 날 수 있다. 계속 조금씩이라도 비워내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다. 무거우면 움직일 수 없다. 생명인 우리가 움직이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본인도 놀라게 폭발 할 수도 있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병으로 올 수도 있다.


얘기가 안 되거든, 못하겠거든 일기라도 써야 한다고 말해드렸다. 뱉어 내야 가벼워진다고. 나는 사실 옛이야기를 쓰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과거의 상처들을 끄집어내기에는 엄마가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서 얘기하지 못했다. 아픈 상처는 내가 바로 직시할 때 더 이상 그 정도로 아프지 않게 되지만 그러기엔 처음 겪었을 때의 아픔을 다시 한번 감당해야 한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기력이 빠지는 일이다. 엄마는 에너지가 밑바닥인데 그 상처를 건드렸다가는 소금 뿌리는 짓이 될 테니 권하지는 못했다. 


엄마에게 일기가 아니라도 하루 기록하듯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해 드렸다. 나도 첫째가 아파서 입원했을 때 그렇게 하니 조금이라도 마음이 나아졌다고 말해드리며 괜스레 눈물이 나 목소리가 떨렸다. 내 떨린 목소리로 내 마음을 알아채셨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숨결이 바람 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