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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흥만 Jan 01. 2016

여행자와 순례자 사이

아시시 

오늘 아침은 유난히 눈부셨다.

모두 당일치기나 1박 정도 묵고 가는 아시시, 나는 아시시에서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인이 되고 싶었다.

겁 많은 나는 늘 두꺼운 여행책자와 벽돌만 한 카메라와 두꺼운 다이어리, 그리고 잘 읽지도 않은 책 한 권을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러나 그날 아침, 나는 그저 그냥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냥 집 밖을 나섰다.

사람들이 안 다니는 길을 따라 갔다.

그곳에 성당이 있었다. 아시시에는 정말 커다란 대성당들도 5~6군데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성당들이 있었다.

난 그 이름 모를 성당으로 들어섰다.

청년들이 띄엄띄엄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지금껏 보아온 아시시의 대성당들과 분위기가 달리 침착하고, 아늑했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기도했다. 성호를 긋고, 순례자인척, 기도하는 척 앉아있었다.

마음은 조금 안정되었지만, 나는 아직 순례자이지 못했다. 나는 기도하는 순간에도 타인들을 의식했다.

난 그 때 다른 순례자들을 보며 알았다. 내가 여행자도 아니고, 순례자도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수도자도 아니고, 혼인성소를 가진 사람도 아니라 그 중간에 어쩡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집에 가니 다비드가 테라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왠지 마음에 드는 다비드 아저씨가 좋아 그와 함께 테라스 물청소를 했다.

20여 년간 헤드헌터로 밀라노에서 일해왔다는 다비드는 새 인생을 살고 싶어 대도시를 떠나 아시시로 왔다고 한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나는 다비드에게 함께 식사하고 싶다고 전했고, 다비드는 'No problum'라고 내게 말했다.

사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Airbnb의 이름 'A Casa Tua'는 한국말로 '너의 집'이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부부 내외는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다비드와 안나를 보면서 느낀것은 두 분이 만나지 30년이 넘었어도 배우자를 애뜻히 사랑하는 삶의 태도는 참 보기 좋았다.더불어 따뜻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해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아이는 이렇게 화목하고 포근한 가정 안에서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후 성 프란체스코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고, 키아라 성녀께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산 다미아노 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엔 작고 아담한 오래된 수도원이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내 눈엔 그냥 유럽식 2층건물이었다.

나는 오늘 산 다미아노 수도원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래된 서양건물 하나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도원에서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키아라 성당으로 보고 발길을 돌렸다.

50 유로센트를 주고 화장실을 갔다 온 다음 나는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곧이어 자리가 꽉 차고 겸손하고 투명한 얼굴의 프란치스코회 사제가 주례하는 미사에 참여했다. 여느 미사처럼 이탈리어 미사는 내게 큰 감응이 없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전례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바오로수사님의 말씀대로 단지 기도하는 것, 단지 미사 봉헌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말씀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미사 후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앉아 기도하는데, 옆 채플에서 글라라회수녀님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전례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 찬양 멜로디와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요셉아, 문제를 만들지 않으면 어떨까?

그저 지금 나와 함께하면 어떨까?

새로운 삶이 다가오면, 그 삶으로 투신하고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면, 그 대상을 사랑하면 어떨까?

아프지 마라. 아가야.

나는 네가 아픈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네가 지금까지 잘 해 온 것을 내가 안다.


아가야. 아프지 마라.

나의 아가야.

조급해하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나의 세상으로 오너라.

오늘 밤, 내가 찾아가거든 놀라지 말아라.

나의 아가야."


내가 잘 살아왔다는 것을 엄마께서 인정해 주셨을 때부터 눈물이 났다.


키아라성당 미사와 전례기도를 마치고 꼬무네광장을 지나 발길을 사로잡는 파니니집에 들렀다.

선택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나는 또 무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네덜란드에 온 예쁘지 않지만, 친근감 있어 보이는 에리카가 내 선택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곧이어 에리카와 이탈리아 두 가족과 함께 올해 마지막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좋은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 성 프란치스코성당에서 새해맞이 말씀 뽑기를 뽑았는데,

내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Visitare gli infermi

Basilica di S.Francesco (Assisi)


'이 말은 아픈사람을 만나라!'라는 뜻이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다.

내게 칭찬 한 번 제대로 해주시지 않았던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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