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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06. 2023

한국인은 감정 인식에 취약한가?

일부 정신과 전문의들의 그런 오해에 관하여

"난 그러면 막 혼내잖아"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 중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자기 마음 상태를 잘 모른답니다. 정신과까지 와서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어보는 의사에게 십중팔구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며 하신 말씀입니다. 


어떻게 '독립적 성인'이 자기 마음 상태를 잘 모를 수 있냐며 분개분개 하시는 그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건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어느 정신과 의사의 영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도 십여년 전 그 선생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감정 인식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감정 인식에 취약하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니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정신의학계(?)에서는 한국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로 감정 표현에 억압적인 문화를 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개인의 자율성과 표현을 억압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직장에서는 조직과 윗사람에 치이고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한다며 '울분을 토합니다'. 

그렇습니다. 울분을 토한다는 말은 감정표현을 매우 격하게 한다는 뜻인데요. 한국에는 감정 표현이 제한된 나라 치고는 꽤나 감정표현이 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위 분노조절장애..를 보이는 분들을 비롯해서 사소한 불편도 참지 못하는 프로불편러,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없이 쏟아내는 갑질러..


한국의 시그니처 공연문화가 된 떼창과 세계적 문화 현상이 된 K-pop 가수들의 퍼포먼스, K-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표현들.. 한국문화가 개인의 표현에 억압적이고 한국인들이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일들이 가능할까요?

스걸파

문화심리학자로서, 저는 한국인들이 감정에 취약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한국문화와 한국인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인들은 강한 표현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체성 자기에서 발현하는, 나의 영향력을 미치려는 욕구와 관련되는데요. "내가 누군지 알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정표현도 매우 섬세하고 적극적이죠.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구분되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확연합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나의 표현이 제한/억압되는' 상황을 가장 꺼려합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될 정도죠. 산 사람의 표현이 제한되면 화병에 걸립니다. 화병은 한국의 대표적 문화의존증후군입니다. 

사또, 내 말 좀 들어보소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화와 같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화병에 걸리기 때문에 한국문화가 표현을 제한한다고 보시는 모양인데, 그 전에 강한 표현 욕구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생각입니다.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고픈 사람이 표현을 못할 때 걸리는 병이 화병이지 그런 욕구 자체가 없다면 표현이 제한된다고 병에 걸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전근대 시대에 민초들의 표현이 엄청나게 자유로운 나라가 있었을까요? 화병이 한국의 문화적 정신질환이라는 의미는 세상에서 한국인들만 억울하게 핍박받고 살아왔다는 사실보다는 한국인들이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가와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을 잘 표현하는 한국인들은 왜 정신과 의사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는 한국인들의 감정교류 방식에 기인합니다. 한국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 같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소통을 이상적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친하고 가까운 사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일수록 그렇죠. 


한국인들은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그것을 기대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일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구차스럽다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감정교류 방식 때문에 한국에는 눈치라는 비언어적 소통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의 표정, 눈빛, 기색만 보고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에 맞추어 행동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비언어적 단서로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죠. 이런 과정들은 모두 부지불식간에,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환자들은 의사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시선으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자세로, 어조로, 목소리의 떨림과 머뭇거림 등으로 말이죠. 그것을 못 알아챈 쪽은 의사 선생님들입니다.

물론 의사의 진단은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환자는 의사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 자신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죠. 하지만 아직 정신과 진료라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전문가 선생님이 내 상태를 잘 읽어내 주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정신과 의사는 마음 전문가 아닙니까. 


마음이 아픈 분들이 늘어나고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지금, 정신과 및 상담소를 찾는 분들도 진료 장면에서의 마음 표현에 익숙해질 필요는 있습니다. 이심전심으로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내담자들의 마음을 살펴야 하는 분들도 내가 진료/상담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야 합니다. 


책상 너머에 앉아 어떻게 다 큰 어른이 자기 감정도 모르냐며 혼내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은 단언컨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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