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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24. 2023

바보들의 시대가 온다

바뀌고 있는 '똑똑'의 정의

한국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다.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IQ조사에서 늘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역시 OECD 1~3위 내에 꼭 들 정도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똑똑한 것은 우선 교육열 때문일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 교육은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도 공부만 잘 하면 성공할 수 있었고 또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목격해 왔다. 나는 힘들게 살아도 자식만은 공부를 시킨 이유다.


또 하나는 경쟁이다.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다보니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똑똑해야 한다. 특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똑똑해져야만 했다.


때문에 한국에는 이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삶의 표준들이 존재한다. 대학은 나와야 한다, 무슨 직장을 다녀야 한다, 몇 살에는 돈이 얼만큼은 있어야 한다, 어디에 살아야 성공한 거다,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 지침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살아야 할지까지 세세하다.

그리고 이러한 표준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압력도 크다.


집단의 압력에 대한 동조는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무리 생활을 해 왔고 경험을 통해 무리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테니까.


그러나 한국 사회의 동조 압력은 독특한 면이 있다. 타인의 삶에 간섭하고 영향을 미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들이 정해놓은 삶의 표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웃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변화의 흐름에서 뒤떨어지기 싫어서 집단에 동조하는 행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난과 조소는 전혀 다른 기제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자신이 가는 길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을 비웃음으로써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똑똑한 사람들의 길을 따르고 그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한국에는 의외의 현상이 존재한다. 바로 바보 캐릭터가 상당히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바보 캐릭터 역사는 깊다. 심형래의 “영구 없~다”로 유명해진 영구는 1972년 TV드라마 '여로'에서 정욱제가 연기한 캐릭터에서 출발했다. 떡진 머리 한 가운데의 버짐, 휘날리는 콧물, 과장된 표정, 우스꽝스런 몸동작 등 심형래가 재창조한 영구는 이후 바보 캐릭터들의 전형이 될 만큼 영향력있는 캐릭터가 된다.


바보 캐릭터가 코미디 프로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2005년 개봉한 '말아톤'의 초원이, 2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2006)'의 기봉이, 강풀의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바보(2008)'의 승룡이, '수퍼맨이었던 사나이(2008)'의 황정민, '7번방의 선물(2013)'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용구 등 영화에서도 바보 캐릭터는 꾸준하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바보 캐릭터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사람들이 그들을 비웃거나 놀리려는 목적으로 바보를 등장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바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어떤 것을 찾으려는 듯 보인다.

<바보>의 승룡이

바보들은 순수하다. 돈이 되는 것도 명예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지만 순수하게 뭔가를 하고, 순수하게 그것을 지켜낸다. 마라톤에 대한 때묻지 않은 열정을 가진 초원이가, 어머니, 여자친구, 딸에 대한 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기봉이가, 승룡이가, 용구가 그러하다.


즉, 바보는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현대 한국사회에서 잃어버린 순수와 열정을 상징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바보 캐릭터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순수와 열정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약빠르게 살아오면서 한국인들은 바보 같아 보일지언정, 남에게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묵묵하고 우직하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제 세상은 다시금 변하고 있다. 한시도 변화를 멈춘 적이 없는 세상은 최근 더욱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한 마디로 불확실성의 시대다. 닥쳐오는 기후재난, 불안한 경제,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산업구조, 일촉즉발의 국제정세, 치솟는 물가... 이 말인즉 과거의 정답이 이제는 정답이 아니라는 뜻이다.


과거 어느 시기까지는 분명 똑똑한 이들의 방법이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학 진학률이 90%를 넘는 마당에 대학에 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일 리가 없으며, 오랫동안 불패를 자랑했던 부동산 신화에도 이제는 균열이 보인다. 주식이나 코인이 대안이 되기에는 그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마약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삶의 이유, 즐거움의 원천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근원적인 불안을 약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새로운 삶의 목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새 시대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우리가 바보라고 불렀던 이들일 것이다.


바보의 강점을 꾸준함에 있다. 바보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또는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을 끈기 있게 해낸다. 이러한 꾸준함은 전문성과 연결된다. 사회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할 것은 당연하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똑똑한 이들이 뭐라 하건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는 바보들이야말로 천변만화하는 지금 시대에 진정 필요한 사람들이다.

돈도 안 되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거 해서 뭐하겠느냐고 자기들처럼 사는 게 똑똑한 거라고 바보들을 비웃던 이들은 이제 똑똑함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똑똑한 사람은 이 혼돈의 시대에 자기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다.



이 글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2024년 1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표지사진은 네이버 블로그 '예천농부'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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