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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l 07. 2024

한국이 지옥인 이유류 中 1

그렇게 배웠으니까

한국인들이 인식하는 한국은 지옥입니다. 한창 유행했던 헬(hell)조선이라는 말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한국인들의 낮은 행복도와 높은 불안, 우울, 자살률 등 이어지는 여러 부정적 지표들..은 그러한 인식을 뒷받침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과연 그렇게까지 지옥일까요?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한국은 꽤 '좋은 나라'에 속합니다. 부침은 있지만 여전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에는 틀림이 없고, 문제는 많지만 교통, 의료, 통신, 교육 등 사회적 인프라 역시 뛰어납니다. K-culture로 대표되는 문화적 영향력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죠. 

뉴스에는 매일같이 흉악범죄가 보도되지만 한국의 치안은 세계적으로 안전한 편이고, 사상, 노사, 세대, 남녀갈등 등 사회갈등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그래서 테러나 내전이 일어나는 수준도 아닙니다. 


경제에 부침이 없고 사회 문제 없는 나라가 있을까요? 우리가 '선진국'이라 알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도 해만 넘어가면 여성과 노약자들은 외출을 할 수 없는 나라들이 부지기수고, 길거리에 총탄이 쏟아지거나 종교, 사상, 인종 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꾸준히 나아져 왔고 그 결과 성취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늘 바른 길로 걸어온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점은 바꾸려고 해 왔고 실제로 국민들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경험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을 이렇게까지 지옥이라고 인식하고 있을까요?


어른들에게 그렇게 보고 듣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나 50년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만, 부모님과 일가친척, 학교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을 포함해서 제가 만난 모든 어른들 중에 한국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씀하신 분들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경험상 10명 중 8,9명은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 한국은 이래서 안돼, 한국인 이런 게 문제야, 한국은 아직 멀었어, 한국은 왜 이런 것도 안될까, 한국은 왜 이렇게 못났을까. 


거기에는 해외 '선진국'에 대한 비교가 있습니다. 한국은 이런 것도 없는데 어느 나라에는 있더라. 한국은 이런게 문제다, 그런데 어느 나라는 이렇게 하더라. 그럼 한국은 왜 못할까. 한국인들이 못났고 한국문화가 미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달, 일년, 일 평생을 주위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삽니다. 어떻게 이 땅을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사는 게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제 기준으로) 어른들이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부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한국은 실제로 낙후했었고 뭐가 많이 없었고 제도와 인프라가 미비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동안 많이 바뀌었지 않습니까. 이러한 인식과 습관은 이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왜냐하면 이러한 인식이 확증편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지옥이니까 지옥이 아닌 거 같은 긍정적인 정보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여기가 지옥임을 입증하는 증거들만 수집을 해서, 결국 여기가 지옥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죠. 


공유된 실재(shared real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내용들이 그들의 실제 세계(reality)를 구성한다는 것이죠. 제가 걱정하는 부분이 이 지점입니다.

문화연구자로서 제가 공부하고 연구해서 알고 있는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져 왔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이 스스로를(엄밀히 말하면 스스로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면 답이 없는 것이죠.


내가 지옥에 산다고 믿는다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지옥이라고 믿으면 그곳은 실제 지옥이 됩니다.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우리나라가 지상낙원이라는 게 아닙니다. 비판을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와 문화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판은 현실에 대한 제대로 이해에 근거해서 현실을 개선하고 나아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지, 우린 어차피 안되고 여긴 이미 틀렸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 무조건 안되고, 어차피 안된다는 생각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지옥으로 만들고 내가 관계맺는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의 자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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