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상대성에 대하여
세계 행복도 조사를 하면 늘 상위권으로 나오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북유럽 나라들입니다.
이들 나라들이 워낙에 여러 행복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해 왔기에 한국사람들은 북유럽을 지상낙원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나라들은 높은 복지 수준으로도 유명하고 성평등 지수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무상으로 교육이나 의료 등을 누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세계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늘 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복지수준이나 성평등 지수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을 비교한 지표에서 한국의 순위는 그렇게 높지 않죠. 이를 근거로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우리 생각만큼 행복할까요?
행복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죠.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나 대니얼 길버트 같은 분들은, 개인의 행복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행복은 그가 살아온 사회의 문화와 개인적 경험에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조건과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북유럽은 북위 60도 이상의 매우 북쪽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일조량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북유럽의 약국에서는 멜라토닌을 팝니다. 멜라토닌은 햇빛을 받으면 분비되는 물질입니다. 멜라토닌이 일정량 이상 있어야 밤에 잠이 오게 되죠.
일년에 반은 낮, 반은 밤이 계속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평소에 그렇게 활기차고 즐거울 일이 없습니다. 해가 일찍 지고 나면 밖에서 활동을 할 수도 없고요. 일찌감치 난롯가에 모여 앉아 보드게임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정도일 겁니다. 북유럽의 휘게(Hygge)란 이럴 때 느끼는 행복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북위 35도 정도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조량이 긴 편이죠. 한국인들은 훨씬 고자극, 고각성 정서를 추구합니다. 술을 마시면 2차, 3차를 가고 노래방까지 달려야 '논 거 같다'고 하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부터 나오는 유서깊은 한국인들의 놀이문화입니다.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정서는 기본적으로 고각성 정서입니다. 슬픈 감정을 느낄 때는 '나라 잃은 만큼' 슬퍼야 하고 기쁜 감정을 느낄 때는 '머리가 날아갈 정도'여야 만족합니다. 청소년기에는 놀이동산에 가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밤늦게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pc방에서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2차, 3차 부어라 마셔라 하얗게 불태우는 한국사람들이 북유럽식에서 과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얀테의 법칙'입니다.
얀테의 법칙은 오랫동안 북유럽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해 온 암묵적인 규칙으로, 요약하자면 '잘난 척 하지 말라'는 겁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뭘 잘 해도 자랑하지 말고, 남들보다 좋은 걸 가져도,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해도 그것을 드러내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떨까요? 한국인들은 자신을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게 생기면 자랑하고, 남들이 가진 좋은 것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뭐가 없는 사람들도 '허세'라도 부려서 남들 앞에서 우쭐거리고 싶어합니다. 그러고 싶으니까요.
가끔 이런 한국 문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옳지 않은 인식입니다. 우리가 원래 이런 사람들인데 어쩌라구요.
한국인은 한국인인 채로 행복하면 됩니다. 한국인의 흥(興)과 신명은 나를 남들 앞에 드러내고 그것을 이해받을 때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저열하게 자신의 우월함만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공감하며 공동체의 가치로 바꾸어서 성숙하게 즐기는 것이죠.
남들보다 낫길 바라는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조건을 낫게 바꾸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전에 없었던 것들을 갖게 되었고 많은 부분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쭐거림과 흥겨움이야말로 K-pop과 K-culture의 본질인 것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행복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마음 습관입니다. 다음은 범죄피해와 주관적 불안감에 대한 조사 결과입니다. 핀란드(북유럽)인들은 100명 중 범죄 피해 경험이 있다는 비율이 26.72%에 달했지만 불안하다는 비율은 6.77%로 낮은 반면, 한국인들은 실제 범죄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1.49%에 불과했지만 범죄를 당할까봐 불안하다는 비율은 22.07%로 매우 높았습니다.
저는 북유럽과 한국의 행복을 이것만큼 더 잘 보여주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의 객관적인 현실보다 자신들의 삶을 훨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한국인들은 그 반대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북유럽과 한국의 행복 차이는 마음의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입니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습관은 현대 한국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해 왔고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부분에서 발전을 이루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때로부터는 많이 나아졌지만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들, 혹은 더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다그쳐왔습니다.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요?
답은 '행복하다'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그들의 환경과 문화에서 자신들이 행복한 방식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과연 불행할까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스스로를 불행하다 생각하고 있는 한 한국인들의 불행을 계속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한 점은 북유럽의 행복을 따라한다고 우리가 행복해지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