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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nett Aug 29. 2023

02. 해외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8월의 후쿠오카 여행기 에피소드 2

어느덧 여행을 다녀온 지 2주가 넘은 지금, 처음엔 여행 에피소드를 정리하여 빠르게 브런치에 올리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브런치 작가분들이 그렇듯 몸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글 쓸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첫 에피소드를 작성하고 열흘이 지나고 더 이상 여행의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두 번째 여행 에피소드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글의 제목처럼, 해외여행을 떠나 지갑을 잃어버리고 난 뒤 벌어졌던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입니다. 

  

* 01. 관광객만을 위한 곳, 다자이후 - 1편 먼저 보고 오기 




일본의 여름은 매우 덥기로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사실 꽤 선선할 줄 알았다. 갈지(之) 자로 대한민국을 관통했던 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보통 태풍이 지나간 직후에는 며칠 가량 폭염이 가라앉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나의 망상이었고, 일본의 매서운 더위에 질려버린 우리는 다자이후에 방문한 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숙소 근처의 식료품점에 들렀다. 둘 다 더위에 약했기에 간단히 즉석요리로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일찍 휴식을 취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먹을 것을 구매하고 계산을 하려던 찰나, 나의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끼던 지갑'을 '해외'에서, 그것도 사람이 북적거리는 '관광지'에서 잃어버렸음을 자각한 순간 그야말로 사색이 됐다. 지갑 안에는 환전해 갔던 대부분의 엔화와 신용카드가 있었기에 나는 그대로 멘붕이 왔다. 


아내도 한국에서 신용카드를 안 가져왔고, 소액의 엔화만 들고 있던 우리는 우선 비상금으로 먹을 것들을 구매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며 생각에 잠겼다. 최악의 경우에는 여행 일정이 대폭 축소되거나, 후쿠오카 외곽에 살고 있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아내의 친척분을 찾아가서 급전을 빌려야 할 참이었다. 


다자이후 역 광장. 꽤나 아담하다.


'어디서 잃어버린 거지?'


무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우리의 여행 브이로그를 찍어보겠다고 촬영을 병행하며 이동해서 정신이 없던 나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여행 중에는 교통카드만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녔기에 지갑을 잃어버린 장소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게 숙소까지 걸어오며 기억을 되짚어보니 마지막으로 지갑을 꺼낸 장소가 다자이후의 스타벅스 매장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스타벅스 매장에서 샀던 머그컵도 분실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마 그 머그컵을 구매했던 종이백에 잠깐 지갑을 넣어둔 것 같았다. 아내에게 이러한 내용을 이야기하며 호텔 로비 직원분께 스타벅스 다자이후점에 전화를 부탁드려 보자고 제안했다.


구글은 신이야...


구글링을 통해 미리 매장의 번호를 확인한 뒤 로비에 있던 일본인 직원에게 이야기를 했고, 다소 난처한 고객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스타벅스에 전화를 대신 걸어주었다. 몇 분 간의 통화 끝에 해당 매장에는 나의 분실물이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호텔 직원의 위로를 뒤로하고 풀이 잔뜩 죽어 숙소에 올라온 나였다. 이미 여행 기분은 다 사라진 참이어서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다 아까 사 왔던 저녁을 입에 밀어 넣고 있을 때 와이프가 말을 꺼냈다.


"다자이후 역에 한번 전화를 해볼까?'


그러고 보니 스타벅스에서 머그컵을 구매하고 나와 잠깐 앉아서 쉬고 있던 곳이 다자이후 역 광장 앞 의자였다. 8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객실 내 외부 전화를 통해 다자이후 역에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내 지갑과 머그컵은 없었다. 하지만 다자이후 역 직원이 우리에게 다자이후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관할 경찰서의 경찰 분은 외국인의 전화에도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었고, 다자이후 역 앞에 있는 파출소에 연락을 취해 나의 분실물들이 그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해당 파출소에는 우리가 몇 시쯤 방문할 예정인지도 시간을 알려주셨다.



다자이후에 다시 돌아가는 데는 50분 정도 걸리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지갑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의 시간은 다시 가기 시작했다. 기쁜 나머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 택시라도 타고 갈 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8시가 넘은 밤, 다시 다자이후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밤에 방문한 다자이후는 사람이 너무 많아 북적거리던 낮과 달리 매우 조용했다. 늦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몇 대와 적막을 깨는 광고판, 그리고 일본 여학생처럼 보이는 2명이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였던 역 광장 바로 건너편에 있던 작은 파출소에 들어가 2분의 경찰분들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상황과 어떻게 파출소에 찾아올 수 있었는지를 경찰분들께 설명 한 뒤 우리는 지갑과 머그컵을 찾아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에 지갑을 가져다주신 분께 사례라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분의 말로는 가져다주신 분께서 절대로 사례를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며 그저 좋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전해달라고 했단다.


사례를 안 받으면 성의라도 받아주세요!


여기서 이제 친절함에 감동받은 우리 부부는, 최소한 경찰관분들께 마실 것이라도 사다 드리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와 드링크, 약간(?)의 간식을 구매해 다시 파출소에 방문했다.


그런데 5~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파출소는 문이 열린 채 비어있었다. 안쪽에 계신가 하고 불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고, 생각해 보니 입구에 있던 순찰차가 사라졌다. 그랬다. 외국인이 분실물을 찾기 위해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순찰 일정을 미루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직접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메모에다 마음을 전하고 파출소를 돌아 나왔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의 풍경은 꽤나 아름다웠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기차,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 역무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따뜻해진 마음과 함께 숙소에 돌아왔다.


지갑을 찾고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 역무원들의 뒷모습도 가벼워보인다.


저녁에 다자이후에 오기까지는 마음이 우울했지만,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다자이후는 참 마음이 따뜻했다.

낯선 타지에서 지갑을 잃어버렸지만 신용카드는 물론 현금까지도 모두 그대로였고, 사례도 받지 않고 외국인 관광객을 업무 일정까지 미뤄가면서 기다려준 그 모습에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일본어를 직접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국에 돌아와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아직은 소통하려면 멀었지만, 언젠간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직접 글과 대화로 감사함을 표할 수 있는 순간이 되길 바라며.

아내와 내가 텅 빈 경찰서에 남긴 메모.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일본인과 일본 경찰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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