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Nov 07. 2022

유산

영양제를 먹을 때면 어김없이 목이 턱 막히는 것 같다. 원체 알약을 잘 못 먹긴 하지만, 각종 비타민을 볼 때면 가끔 ‘정말 다들 이렇게 커다란 걸 아무런 겁 없이 삼키는 걸까?’라는 의문과 함께 사람들이 조금 무서워진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알약을 삼키기 전 나에겐 일종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두 눈 꾹 감아 집어삼켰다 하더라도, 약이 내 목구멍을 통과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오만가지 불행한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퍽퍽 가슴을 두드린다. 물론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상력은 비단 영양제를 삼키는 순간에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종종 일상의 순간에서 불쑥불쑥 끔찍한 생각이 들곤 한다. 복도형 아파트에서 산 지 3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매번 누군가 복도 밖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추락하는 상상이 들고,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초조해진다. 매일 평화롭게 잠들어있는 우리 집 고양이도 꼭 한 번씩은 흔들어 깨워봐야 마음이 편하다. 이런 나의 ‘불행에 특화된 상상력’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져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 쓸데없는 불안감은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 아니 동물들까지도 숨 막히게 했고, 나는 이 불안의 뿌리를 찾아 없애고 싶었다. 그 일련의 노력으로 찾았던 상담가는 내 삶의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내 경험은 대부분이 이십 대의 것이었고, 그것들이 내 불안을 형성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을 그리는 점들은 모두 어린 시절에 몰려있었다. 잊고 살았지만, 깊게 들여다보니 날 이 모양으로 깎아온 바람은 모두 그때의 것이었다. 요동치는 어린 시절의 곡선을 꾸준히 더듬어 따라가다가, 그 끝 무렵에서 나는 할머니의 죽음과 마주하였다.  


 나의 삶이 시작하는 날부터 할머니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와 할머니는 같은 방에서 삶을 함께했다. 우린 전혀 다른 삶의 지점을 지나고 있었지만, 침대에 누워 발가락으로 서로를 꼬집으며 웃고, 함께 내일 낮에 먹을 부침개 재료에 대해 의논하는 쿵짝이 잘 맞는 룸메이트였다. 지금의 나처럼 사진 찍히는 걸 즐기지 않으셨던 할머니와의 사진은 정말 몇 장 남아있지 않다. 석 장 남짓 남은 사진들 속에서, 할머니는 늘 나의 등 뒤에서 내 매무새를 가다듬고 계신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할머니는 아주 정갈한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불가능할 정도로 꼿꼿한 자세를 가지고 계셨고, 늘 자신의 머리와 몸 주변 또한 단정히 하셨던 기억이 난다. 흔한 할머니들의 파마머리 대신 긴 머리를 말아 올려 쪽진머리를 만드셨고, 그것을 매일 해낼 기운이 없어지셨을 때도 짧은 생머리를 매일 정성껏 빗어 귀 뒤로 넘기셨다. 


어린 시절 매일 아침 할머니는 거실 베란다 문을 마주 보고 나를 앉혀 머리를 땋아주셨다. 우리 집은 고소공포증이 있던 아빠 덕에 늘 일 층이었는데, 이때 살던 집 베란다 너머로는 꽤 넓고 멋지게 녹색빛이 돌았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여름날이면, 할머니는 나에게 머리를 땋는 동안 창 너머 장미꽃밭에서 가장 예쁜 꽃을 골라보라 하셨다. 내가 꽃구경하는 동안 할머니는 정갈한 성격만큼이나 내 뒤통수를 정확히 반 갈래로 나눠 머리를 땋아주셨고, 그 시간을 인고한 대가로 내가 고른 꽃을 가져다주셨다. 내가 장난스러운 마음에 생기도 없고 한참 못생긴 꽃을 골라도 할머니는 가장 예쁜 꽃 대신 내가 고른 꽃을 가져다 어린 내 품에 안겨주셨다. 막상 창밖으로만 보던 꽃이 손에 쥐어질 때의 황홀한 향과 촉감은 잊기 힘든 것이었다. 반들반들한 잎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할머니는 어떤 감정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것 말고 줄기가 튼튼하고 붉은색이 선명한 게 예쁜 장미야.” 라든가 “빨간색이 정열적으로 느껴지지?” 라든가 하는 말씀은 일절 없으셨다. 그저 내가 꽃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쓸어 담아 정리하실 뿐이었다. 이것은 할머니가 그해 여름의 빛을 내게 선물해주시는 방법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 여름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 방식대로 기억한다. 이마를 덥히던 그 뜨거운 여름의 빛과 반바지 아래로 닿던 시원한 마룻바닥, 할머니를 닮아 아주 촘촘하고 빳빳한 참빗이 내 뒤통수를 시원하게 긁던 힘, 눈앞에 펼쳐졌던 붉은 빛들과 장미 향보다 진하던 할머니의 흰옷에서 나던 냄새까지도 생생하다. 


 학교에 다닌 후로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머리가 커버린 탓에 나는 여느 집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할머니보단 친구들이 좋아졌고, 참빗으로 꽉 당겨 땋은 머리보다는 엄마가 드라이기로 살짝 말아 올려준 세련된 생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할머니를 홀로 두고 밖에 나가 놀기 일쑤였다. 매일 밤 침대 모서리를 둘러 세워주던, 꿈자리를 지켜주는 인형들을 더 이상 원치 않는 손녀 덕에 소일거리를 또 하나 잃으신 할머니의 꼿꼿했던 자세는 날이 다르게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잠결에 어떤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어떤 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은 확실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아빠는 거실 바닥에 누워 계신 할머니 옆에 허망한 어깨로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양발을 가지런히 그리고 꼿꼿하게 세우고 계셨다. 조금은 컸던 오빠는 울었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죽음이 무엇인지, 오늘부터 혼자 방을 써야 한다는 것이, 어젯밤에 내가 잠결에 들은 것이 무슨 소리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장례식에서 돌아와 내 방에서 할머니 침대가 사라진 한참 뒤까지도 할머니는 대체 어디를 가신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침개를 먹을 때, 혼자 잠들었다가 악몽을 꿨을 때, 발가락으로 꼬집을 것이 이불밖에는 없을 때, 문득 그리움과 상실감이 나를 덮쳐오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했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그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 살펴보지 못한 죄책감은 덩치를 키워가며 나를 괴롭혔다. 이 마음들은 결국 내 삶을 관통해 늘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죽음을 상상하게 하는 마음의 짐을 지게 했던 것이다. 이 부정적인 마음들의 뿌리가 할머니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는 걸 직면하고 나니, 더욱 빨리 떨쳐버리고 싶어졌다. 할머니가 내게 남기고 싶었던 마음의 조각들은 봄, 여름, 가을과 겨울의 아름다움 그뿐이었지, 이런 무거운 짐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의 밭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가시느라 당신의 말년, 마지막 힘을 다 바치셨던 분이었다. 이제 네가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는 놓아주라는 할머니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너무 어릴 때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좋아하시던 커피 한 잔 함께 마셔보지도 못한 채로 떠나셨다. 나 또한 할머니의 나이가 되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하는 꽃 한 송이만 가져가 품에 안겨드리며 말하고 싶다. 내가 이 팍팍한 삶을 살며 그래도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알고, 그에 느낀 바가 있어 펜을 들 수 있었던 마음은 팔 할이 당신이 내 품에 안겨주었던 빛의 조각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당신이 나에게 남긴 것은 역시 불행에 특화된 상상력보다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었다고. 


마지막까지 정갈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마음의 불안도 단정히 가다듬고, 깊이 잠든 고양이는 스스로 하품하며 깨어날 때까지 건드리지 말자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