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01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 sns는 물론 독후감이나 영화 감상평조차 남기기 어렵다고 했다. 어쩐지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였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 내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뒤통수를 싸늘하게 치고 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소비를 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던 날들을 흘러,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정량적으로 “나은 삶”을 살고 있는데도, 나를 표현하는 것에, 나에 대해 알아보는 것에 무심해지고 꺼려졌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나에 대해 충분히 알기 때문이라고, 삶에 무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내가 나와 멀어지고 있었다는 걸. 내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내 육체 안에 내 영혼이 내 의식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자존감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이고,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는지 모른다. 너무 지쳐서? 혹은 채우려고 했는데도, 찾으려고 했는데도 안될까 봐 두려워서?
인스타로 카톡으로 유튜브로 남들이 사는 삶을 지겹게 보며 산다. 장식된 삶의 단편. 진열된 행복. 찌질하지만 나 역시 그런 것들을 보며 나 자신의 그것과 끝없이 비교했고, 친구를 만나 그의 인스타 진열장 뒤를 보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어쉬고는 했다. 안도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불행해졌다. 타인의 행복에 진정으로 손뼉 칠 수 없는 방구석의 못난 인간으로 판정난 나란 인간에 대한 죄책감과 실망감이 심장을 짓누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텅 비어버린 내 존재를 채워내기 위해 무작정 걸었다. 마음은 생각보다 몸과 연관이 깊다. 우선 다리를 움직여 길을 걷고, 나뭇잎끼리 바람에 쓸리는 소리를 듣고, 햇빛에 따끔거리는 피부를 느껴야만 나란 존재가 실존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런 것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금 “내가 진짜 여기 발 디디고 서있구나"라고 느낀다. 자존감을 채우기 이전에 ‘자존’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길에서 전시된 삶이 아닌 진짜 삶을 본다. 기계가, 다른 사람들이 선별해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걷다가 마음이 끌리는 곳에 멈추어 본다. 나에 대해 느끼고, 그만큼의 내가 생겨난다. 길에서 타인의 행복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질투가 나기는커녕 같이 행복해진다. 난 사실은 그렇게 못된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은 내가 나를 조금 더 인정해주고 예뻐해 주도록 격려한다.
고백.
나는 그저 그렇게 관성처럼 살아가다가 나를 잃어버렸고, 꾸준히 산책하며 되찾으려 지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