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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트 공장

by 월산


주말, 본가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얼마전 본가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날


엄마가 아침으로 그릭 요거트에 블루베리를 올리고 꿀을 한 바퀴 둘러 주셨습니다. 아침밥은 원래 잘 안먹는다며 늘 손사래를 치는 제게도 꽤나 유혹적인 메뉴였죠.


“오! 이거 맛있는데?”

무미건조한 감탄사 한마디에, 엄마의 신이 난 두 손은 이미 요거트통 포장을 마쳤습니다.


“이거 들고 가면 돼. 한나절 상온에 두면 이게 다 요거트가 되는거야.”


엄마가 건넨 통에 담긴 건 오늘 아침을 퍼내고 남은 요거트 조금과 지금 막 따라낸 우유였어요.


‘이게 된다고? 흠’

미심쩍음과 함께 상경했지만, 서울에 도착해 열어본 건 분명 신선한 요거트였습니다.


‘이게.. 진짜 되네!’

끝없이 자라나는 파처럼, 요거트도 뿌리만 가지면 계속 먹을 수 있는 건가?!


요거트 테크의 부푼 꿈을 안고 찾아보니 발효균이 우유를 요거트로 만들어주는 거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균의 힘이 약해지기에 영원한 요거트 분수를 바라던 제 꿈은 사라졌지만, 이 기특한 탄생을 지켜보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 안의 발효균은 뭘까’



나라는 인간이 푹푹 없어져 갈 때, (요거트마냥 누군가 퍼먹을 때도 많죠)

그 잘려나간 자리들은 무엇이 재생시켜 줄 수 있는지 말이죠.


어쩌면 발효균만큼 중요한 건, ‘나’로 발효될 수 있는 우유 같은 재료인지도 모르겠어요.

가족, 친구들, 동물들, 여행, 커피 ..

지금보다 더 많은 ‘우유’를 곁에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들을 발효시켜 나로 만들어주는 건 이 글이 아닐까요.

되새기지 않은 경험들은 내 안에 정착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공허히 날아가 버렸거든요.



그래서 오늘 두 가지 다짐이 생겼습니다.

- 언제든 퍼다 쓸 수 있는 우유를 넉넉히 확보할 것

- 밤마다 나만의 요거트 공장을 정성껏 가동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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