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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캐처 Nov 25. 2024

분노의 힘

안하던 짓도 해 낼 용기

세상 모든 분노가

쓸모 없는 감정인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참아보려고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사건이 있는데, 소중한 내 일상의 평화를 깨는 것도 모자라, 아무 때나 자주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고 있었던 바로 그 것은 '윗 층에서 울려 퍼지는 쿵쿵 소음'이었다.


나름대로 서로 안 좋은 일로 마주해서 불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불쾌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이게 그렇게까지 고민해야할 그럴 일인가 싶지만' 꽤 오래 실체도 없는 인내심을 박박 다 긁어다 쓴 뒤였다.


어떤 나이 즈음이 되면, 그런 것들을 그냥 그럴수도 있지 넘길 수 없는 신체의 민감도가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가만히 살다간 조용히 앓다 죽을 것 같다고 느끼는 마음과 틀림없이 예고없이 어느 때고 사정없이 울릴 불청객 소음은 확률 높은 미래라는 것이 지내온 기간을 봤을 때 명확해서 평소의 나답지 않게 '마주할 용기'를 내버리고 말았다.


어느 일요일 오전, 쿵쿵 쿵쿵쿵이 내내 울리던 소음이 그칠 기색이 없었고, 내 머리도 같이 울리고, 뭘 할래야 할 수가 없어서 잠시 '처음 보는 분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어떻게 이 불편한 상황에 대한 말을 해야할지' 머릿 속으로 꺼내서 나열해 보고, 내가 하면 안 되는 표정과 윗집 아랫집 사이에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몇 가지 극단적인 장면을 생각해 본 다음 상대에 대해 아주 희박한 정보도 없다는 것에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전에 없던 용기로 계단을 빠르게 올라 벨을 눌렀다.


그 뒤에 이어진 장면과 대화들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결론을 요약하면,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한 상황 정보를 대화를 나누며 얻었고,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듣고 나름 그 간의 소소한 노력에 대한 어필을 반복한 다음, 윗 집에는 좀 더 불편할지 모를 '조심'을 부탁드리고 왔다. 여기서 조심하라는 단어는 내가 직접쓰면 안 된다.


앞으로 몇 년은 그 집과 이 집 사는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없다면 계속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아랫집에 피해를 일으킬 수 있어 조심하기도 해야하고, 좋은데 다 편하지도 않고, 꼭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닌 공동생활 공간이다.


 예전에 꽤 오래 살던 아파트는 윗 집에 어르신 두 분이 사셨는데, 새벽 즈음에 어르신들이 안마매트로 정기적으로 공간을 울리는 것 말고, 일상적으로 불편할만한 소음은 없었다.  

딱 한 번 부득이하게 부탁 드린 날은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깨발랄한 달리기 꿈나무 시기의 손자손녀가 에너지를 뿜어내느라 몇 시간동안 계속 소음이 있었는데, 내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날 하필 열감기에 두통이 있어서 침대에 누워서 조금 쉬어야 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폰으로 부탁을 드렸다.


그 뒤에도 주말이면 이 집에 손자 손녀가 놀러 왔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인터폰을 했던 그 날 만큼은 아니었고, 나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태여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은 곧 자라고, 할아버지 할머니 자주 찾아오는 자녀의 가족은 두 분께는 그저 좋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일 것이고, 저녁이면 그 들도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니 그 정도는 소소한 이벤트로 볼 수 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윗 집 사시는 분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간을 보니, 아파트 문 열고 들어와서 일상 생활하시는 시간대가 나와 비슷한 편이었고, 일관성있게 체중이 실리는 말망치가 울렸는데, 이 건 제발 사는 동안 겪지 않길 바라고 평생 모르길 바라는 그런 류의 조용한 고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이 종종 있어도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 공간으로 이사갈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정말 고맙게도 대화를 나눈 뒤 조금 더 조심해 주시고, 불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신 윗 층 주민님 덕분이다. 내 바람과 기대일 뿐 그 분께 의무라고 그 누구라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윗 집에 누가 살아도 될지 내가 지정하거나 고를 수도 없고 말이다.


어느 날 아침에 만난 미화선생님 손에 생파 흔적이 담긴 케이크 통과 폭죽 등이 양 손 가득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인사하며 여쭤보니, 생일파티 친구들끼리 계단에 흥겨운 파티의 모든 흔적을 버리고 어디로 튄 모양이었다. 즐거운 파티 끝에 이런 흔적 남기면 낯 모르는 사람들이 생일 당사자와 친구들에게 깔끔하게 행복과 행운을 기원할 수가 없으니 알아서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아파트 술게임은 아파트 말고 부디 술집에서 하시길. 술에 취해 즐거운 사람만 즐겁고, 그 외 나머지는 고통이다.


조용한 듯하면서도 분쟁의 작은 불씨가 이따금 떨어지고, 밀집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내내 시끌시끌 시끌벅적한 것이 리얼 아파트먼트 라이프다.



https://youtu.be/dgGqD28J6aQ?si=lolnY2sKSH0PJZ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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